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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스님을 떠나보내면서

기자명 하림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6.04.05 10:49
  • 수정 2016.04.05 10:50
  • 댓글 0

오랜만에 서울에 왔습니다. 서울에는 삭막한 건물만 있겠거니 했는데 개나리가 노란 꽃잎들을 가득 피워서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빌딩숲들 사이사이에서 자연의 흐름을 알려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들마저 없다면 도심에서의 삶이 얼마나 삭막할지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요즘 건물들 사이로 공원이 들어서는 곳이 많아 다행이다 싶습니다.

정들었던 사제스님과 이별
서운함에 마음 고생했지만
편안히 보내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남아 미안함만 가득

요즘 절에서 새벽기도와 사시기도를 제가 직접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사중스님에게 부탁드리고 서울에 올라왔지만 새벽기도는 제 담당이 되었습니다. 우리 절에서 출가해 동국대를 졸업한 스님이 법당에서 기도를 전담하는 소임을 맡았지만 그 스님이 떠나게 됐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그 스님은 율원에서 공부를 하겠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 왔습니다. 처음에 가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좀 당황했습니다. 갑작스럽게 이별을 해야 한다니 아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제 마음을 잘 아는 스님이기에 얼마나 어렵게 그 이야기를 꺼냈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어디로 놀러가는 것도 아니고 스님이 수행의 길을 가고 싶어 하는데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학교 다닐 때에도 율원을 가고 싶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이 났습니다. 그동안 제가 그 스님의 마음을 잘 살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흔쾌히 잘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마음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저와 한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사제스님이지만 정이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떠나보내는 마음이 이런 것일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첫 정이 들어서 스님이 떠난 자리가 커보였습니다. 제가 사제스님을 많이 의지했었나 봅니다. 항아리에 밑이 빠진 것처럼 기운이 없고 힘이 나지 않습니다. 사제스님의 수행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잡을 수는 없었지만, 속으로는 좀 더 함께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사제스님은 스님의 길을 갔습니다. 아마 사제스님이 출가를 했을 때, 스님을 떠나보낸 부모님은 제가 느끼는 감정보다 100배는 더 아프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며칠 동안 계속됐습니다.

그러다가 기도를 하면서 아팠던 마음이 많이 편해졌습니다. 우연히 법당에서 부처님을 올려다봤습니다. 문득 부처님은 “거봐라, 있을 때 잘해주지 가고나니 서글프지?”하면서 빙그레 웃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부처님이 야속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그래, 부처님이 내 염불소리를 오랜만에 듣고 싶어 하셨을거야. 이번 기회에 열심히 들려드리지 뭐’라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마음도 편해졌습니다. 사제스님의 공부 길이 제겐 법당에서 기도할 기회가 됐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하림 스님
미타선원 주지
참 세상일은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옳은 것 같다가도 살아보면 그것이 아니고 분명히 이것은 잘못된 것 같은데 지나고 보면 그것이 괜찮은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를 늘 접하면서도 맨날 속고 또 속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섭섭했는데 이제는 기쁘게 보내드리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고 미안함만 남습니다.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짐이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분들과 마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어느 곳이든 신행하는 절에 가셔서 부처님께 예경하고 부처님의 얼굴을 보세요. 뭔가 들려주시는 이야기가 있을 겁니다. 마음을 편안히 하는데 분명 도움이 되시리라 믿습니다. 서울 도심 속에서 개나리꽃을 만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1338호 / 2016년 4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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