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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단식하며 피는 꽃에 관한 단상

기자명 김용규

보잘 것 없음 극복하려는 꽃들의 간절함을 보라

도처에서 꽃이 터지고 있다. 사방에서 답지하는 강연 호출도 이즈음부터 본격화된다. 설렘 때문이리라. 나도 설레기는 마찬가지다. 출장 중에 당장 차를 세우고 저 봄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지는 순간들이 넘친다. 암갈색 배경의 주변을 노란 빛깔로 채우고 있는 산수유 군락을 지나칠 때, 따스한 햇살 한껏 쏟아지는 벌판 어느 귀퉁이를 가득 채우고 있는 우윳빛 매화의 만개를 스쳐갈 때, 한낮을 밝히고 있는 별처럼 송이송이 피어나는 목련들의 군락을 마주할 때…, 나는 문득 차를 세우고 그 아름다운 빛깔과 향기 속으로 들어가 하릴없이 머물고 싶어진다.

이렇듯 이즈음에 피어나는 꽃들은 끌어당기는 힘이 특별히 강하다. 주변이 아직 무채색인 이때 홀로 개화한 꽃은 우리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게 마련이다. 당신은 어떠신가? 이 계절의 꽃 곁에 문득 걸음을 멈추고 잠시라도 무념무상(無念無想) 따뜻한 눈길 나누고 계시는가? 그러길 바란다. 그래야 좋은 삶이다. 날 좀 봐달라는 길 섶 꽃들의 손짓에 조건 없이 눈길을 빼앗길 수도 있어야 좋은 삶을 사는 인생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본 적 있으신가? 왜 이즈음의 꽃들은 잎도 내지 않고 꽃부터 피울까? 나뭇가지에 잎을 내고 난 뒤에야 피는 꽃이 대부분인데, 목련이며 산수유며 생강나무며 풍년화며 히어리며 올괴불나무며 이 시점에 개화하는 나무들은 모두 잎을 피우기 전에 꽃을 피운다. 알다시피 나무들은 주로 잎을 통해 광합성을 한다. 인간에 비유해 보면 광합성은 ‘식물이 밥을 만드는 일련의 활동과정’이다. 활엽수 대부분은 겨울 입구에서 낙엽을 만드는데, 그것은 겨울단식에 비유할 만하다. 그러니 봄에 잎도 없이 꽃을 피운다는 것은 결국 단식 중에 꽃을 피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저들이 단식을 하며 꽃을 피우는 까닭은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를 그들의 절박함에서 찾는다. 가지나 잎을 꺾으면 생강 향이 난다고 붙여진 이름의 생강나무 꽃을 대강 본 사람들은 그 노란 꽃을 종종 산수유와 혼동한다. 하지만 꽃 색만 같을 뿐 산수유는 잎과 꽃이 마주나고 생강나무는 어긋난다. 그 외에도 잎 모양도 다르고 서식지도 다르며 열매 모양도 서로 다르다. 하지만 모두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운다는 공통점이 있다. 목련과 히어리, 올괴불나무 등 이즈음 피는 꽃은 대부분 잎 없이 꽃을 피운다.

화석식물에 가까운 목련이야 조금 더 숲의 역사 속에서 들여다보아야 하겠지만, 나머지 예로 든 나무들은 그 꽃이 화려하지 않다. 올괴불나무는 1.5m도 되지 않는 작은 키의 나무인데 대개 반쯤 그늘진 자리에 살면서 겨우 1cm 남짓한 꽃을 두 송이씩 피운다. 그러니 숲 생태계에서는 상대적으로 보잘 것 없는 꽃이다. 큰 키의 나무들이 잎을 내고 꽃을 피우면 그 치열함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생강나무나 히어리 역시 큰 키 나무들에 비하면 작은 축에 속하는 나무들로 앞으로 우거질 숲의 그늘에 대비하려면 꽃이 향기라도 짙거나 산벚나무처럼 화사함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들 역시 비교적 수수한 모양의 꽃을 지녔다. 주변에 묻히지 않기 위한 그들의 전략은 절박하고 극적이다. 잎보다 꽃을 먼저 틔워내는 수가 바로 그것이다. 아직 채색이 시작되지 않은 암갈색 숲에서 일찌감치 움직이기 시작한 곤충들을 불러 모으기에 이 방법은 지극히 훌륭하다. 이렇듯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저들에게는 숲이라는 치열한 공간의 관계 속에서 제 보잘 것 없음을 극복해보려는 분투가 담겨있다.

기실 이즈음의 꽃만이 아니다. 사계의 숲을 이루는 모든 꽃에 저마다 다른 분투가 담겨 있다. 어느 계절이건 다퉈 피는 꽃들을 보며 나는 온 생명들에게 담긴 열망과 분투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하여 마침내 누군가의 열망을 틀렸다 말하지 않게 되었다. 그 다른 열망들이 찾아낸 조화의 지점이 숲을 이데올로기 없이도 그윽해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즈음의 꽃에는 그들의 간절함이 있고, 가을날의 꽃에는 그들의 간절함이 있음을 헤아리는 눈으로 타자를 대하게 되었다.

김용규 숲철학자 happyforest@empas.com
 

[1338호 / 2016년 4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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