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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이타를 자리에 앞세운 대승불교

기자명 김정빈

보살 정신 구현하는 대승불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세 위격으로 분별된다.

중생 곁 남아 공덕 쌓으며
부처님 이룬 수메다 수행자
나 자신부터 챙기기 보다는
남 위해 먼저 살 것 발원

① 무상정등각자(無上正等覺者, Samāsambuddha): 스스로의 힘으로 최고의 깨달음(아뇩다라삼먁삼보리, 阿耨多羅三藐三菩提, anuttarasamyaksambodhi)을 성취하신 부처님. 석가모니 부처님은 무상정등각자이시며, 석가모니 부처님께 기(記)를 주신[授記] 과거 부처님으로서의 연등불 또한 무상정등각자이시다. 연등불로부터 석가모니 부처님까지 모두 스물네 분의 무상정등각자가 계셨다. 즉, 무상정등각자가 출현한다는 것은 그에 앞선 부처님의 시대가 끝나 불법이 없는 상태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무상정등각자는 그 시대의 ‘첫 부처님’이신 것이다.

② 벽지불(辟支佛, 팔리어 pacceka buddha, 산스크리트어 pratyeka buddha): 자신의 힘으로 깨달음을 이룬 것은 무상정등각자와 같으나 전생에 쌓은 공덕이 상대적으로 부족하여 법을 펴는 지역이 좁고 시간이 짧은 부처님. 대승불교에서는 이 부처님을 연기법을 관조하여 깨달았다 하여 연각(緣覺)이라고 부르며, 남을 적극적으로 교화하지 않고 홀로 지내며 깨달음의 법열을 즐긴다 하여 독각(獨覺)이라고도 부른다.

③ 아라한(阿羅漢, arahat): 자신의 힘이 아닌, 무상정등각자에 의해 지도를 받아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님. 대승불교는 이 부처님을 부처님의 사성제 가르침을 들어 깨달은 것이라 하여 하여 성문(聲聞)이라 부른다.

대승불교 발흥 때의 불교(부파불교)는 세 위격의 부처님 중 ③을 목표삼고 있었는데 대승불교는 이를 비판하는 태도를 취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②와 ③은 ‘작은 부처님’, ①은 ‘큰 부처님’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에 착안하여 대승불교는 전자의 길을 소승(小乘, hirayana: 작은 탈것)이라 비판하고, 자신들이 가는 길은 대승(大乘, mahāyāna: 큰 탈것)이라 불렀다.

소승·대승이라 할 때의 승(乘)은 ‘승용차’라는 용례에서와 같은 의미, 즉 탈것을 의미한다. 승용차는 많은 사람이 타고 가는 큰 탈것과 혼자만 타고 가는 작은 탈것으로 나눌 수 있는데, 대승불교도들이 볼 때 당대의 불교 지도자들은 작은 탈것에 비유할 길을 가고 있었다. 대승불교도들의 눈에 비친 부파불교 시대의 승려들은 한편으로는 적정주의, 즉 깊은 선정에 들어 홀로 행복을 누리는 데만 몰두한 나머지 남들에게 행복을 나누어 주는 데는 관심이 적은 경향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적인 면이 너무 강한(난해한) 교리 연구에만 치중한 나머지 대중의 감성적인 경향을 반영하지 못하는 성향이 강한 불교였다.

부처님을 큰 부처님과 작은 부처님을 분별할 경우 두 부처님을 가르는 원인은 전생의 공덕이 큰가 작은가이다. 즉, 큰 부처님은 전생에 큰 공덕은 쌓았기 때문에 이승에 큰 부처님을 이루신 것이고, 작은 부처님은 전생에 작은 공덕을 쌓았기 때문에 작은 부처님을 이루신 것이다.

따라서 큰 부처님을 목표로 삼는다는 것은 큰 공덕을 짓겠다는 서원을 세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4아승지겁을 더한 십만 대겁 전에 수메다 수행자로서 연등 부처님을 만났던 바, 그때 연등 부처님의 회상에 출가하여 수행했으면 당장에 아라한이 되어 작은 부처님이 되실 수 있었다. 그런데도 수메다 수행자는 그 길을 포기하고 중생 곁에 보살로 남아 어마어마한 공덕을 쌓은 다음 큰 부처님을 이루셨다.

대승불교도들은 이 보살 정신에 감동하였고, 이를 출발의 기초로 삼았다. 즉,  대승불교는 ①자리(自利), ②이타(利他)의 불교를 ①이타, ②자리의 불교로 변화시키고자 하였다. 좀 더 세밀하게는 대승불교도들이 보기에 당대의 불교는 ①작은 목표의 자리, ②작은 이타의 불교였던 바, 자신들은 ①큰 목표의 이타, ②큰 부처님, ③큰 이타의 길을 가고자 했다.

이 큰 목표로부터 서원(誓願)이 요청되었다. 기원(祈願)이 자신을 위한 소승적 발원이라면 서원은 남을 위한 대승적 발원이다. 나보다 남을 먼저! 대승불교는 이 원대한 목표를 설정한 다음 장엄한 서원과 함께 이미 지적인 요소가 강한 불교에 감성적 요소를 풍부하게 도입하며 웅장하게 출발했다.

김정빈 밝은불교신행원장 jeongbin22@hanmail.net

[1338호 / 2016년 4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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