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신문이 ‘삼국유사 성지순례단’을 출범한다. 주지하다시피 ‘삼국유사’는 고대사를 살필 수 있는 대표 역사서다. 또한 설화와 전설, 민담도 담겨 있어 상상과 사유의 폭을 넓혀 주는 지혜의 샘이기도 하다. 따라서 ‘삼국유사’ 속 현장을 답사한다는 것은 옛 시공간으로 들어가 당시의 사람들이 전하고자 했던 가르침을 올곧이 받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혹자는 ‘삼국유사’를 정통 역사서로 보지 않으려 하는데 그 이유가 전설과 민담이 서술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자칫 전설이라는 단어에만 얽매여 역사적 사실을 놓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일례로 1400년 전 울주 영축산에서 매일 ‘법화경’을 독송하는 ‘낭지’라는 스님이 있었다. 낭지는 이 산에 주석하며 구름 타고 중국 청량산(현 오대산)에 날아가 그곳 대중과 함께 설법을 듣곤 했다고 한다. ‘사람이 구름 타고 날아다닐 수는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삼국유사’ 낭지승운 보현수편을 외면하는 순간 우리는 적어도 세 개의 유적지를 영영 찾지 못한다. 낭지를 만났다는 스님이 두 분 있다. 의상대사 10대 제장 중 한 명인 지통이 그 한 스님이고, 원효가 그 두 번째 스님이다. 특히 원효는 낭지를 만났을 때 논서를 지어보라는 권유도 받았다. 낭지가 머문 암자가 혁목암인데 영축사서 멀지 않다. 원효가 머문 사찰은 반고사다. 이들 사찰들은 모두 허구 속에만 존재했던 것일까?
아니다. 울주 청량면 영축마을에서 영축사지가 발견됐다. 2012년부터 2016년 4차 발굴까지 마친 울산박물관은 금당지, 탑지 등을 통해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쌍탑일금당식’ 가람배치임을 확인했다. 특히 ‘영축(靈鷲)’명 기와도 출토됐다. 영축사가 있었다면 혁목암과 반고사도 있었을 가능성이 높고, 나아가 낭지 스님도 존재했을 것으로 사료된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에 비해 역사적 사실을 좀 더 드라마틱하게 구성했다. 충효와 신의, 그리고 불심의 가치를 부각시키기 위한 일연 스님의 방편이었고, 그 방편이 있었기에 우리는 남매탑에 얽힌 이야기를 지금도 나누며 수행정진의 등불로 삼고 있다.
단언컨대 ‘삼국유사 성지순례단’은 이전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인문학적 사유의 세계로 대중을 안내할 것이다. 사부대중의 관심과 동참을 기대한다. 일연 스님이 전하는 일갈에 귀를 기울여 보기 바란다.
[1339호 / 2016년 4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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