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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재를 시작하며

기자명 최원형

숨 가쁜 일상에 쉼표 찍고 인과 살피기

작년 10월 달라이라마 존자는 전 세계인들과 특히 청년들에게 호소했다. 티베트 고원의 빙하가 해마다 엄청난 속도로 녹고 있으며 이를 늦출 방법을 함께 고민하자고 말이다. 달라이라마 존자는 왜 전 세계인들에게 티베트 고원이 녹는 문제를 호소한 걸까? 저 멀리 티베트 고원의 빙하가 녹는 것과 우리 삶은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조금 더 생각해보면 티베트 고원의 빙하와 우리 삶은 대단히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활의 편리를 위해 사용하는 전기에너지를 비롯해 온갖 풍요로움을 가져다주는 수많은 물질들은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그리고 그 온실가스는 비단 한 지역 하늘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구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내가 어제 자동차를 타고 편히 다니는 동안 배출한 탄소와 저기 캘리포니아에 사는 친구가 대서양 건너 스페인으로 가느라 탔던 비행기에서 배출된 탄소는 모두 지구의 온도를 올리는 일에 일조한다. 그렇게 해서 티베트 고원의 빙하는 더욱 빠른 속도로 녹는다. 오늘 우리는 빠르게 돌아가는 삶 속에서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다. 내 삶이 나와 함께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다른 생명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에 대해 살필 겨를도 없이 말이다.

성찰 없는 행동들 반복되면
뭇 생명·생태계 파멸 초래
관계 깨달을수록 삶도 신중
부처 씨앗 키우는 방법 모색

흐트러진 마음과 한없이 끓어오르는 번뇌를 가라앉히고자 참선을 하듯이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습관에도 참선이 필요하다. 나날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인과를 살피기 위해 잠시 쉼표를 찍고 성찰의 시간을 갖는 일은 그래서 유의미하다.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의도하지 않게 타자의 생명을 해칠 수도, 무수한 생명들이 지구에서 사라지는 결과를 이끌 수도, 그리하여 결국엔 우리 삶마저 파멸로 이끌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각자 바쁜 일로 얼굴볼 기회가 좀처럼 어렵던 터라 우리는 만나자마자 이야기꽃을 피웠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카페에는 음료를 주문하려는 사람들로 줄이 길었다. 줄 서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그간 쌓인 이야길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 차례가 되어 주문을 하고 잠시 기다린 뒤, 커피가 나왔을 때 ‘아차’ 싶었다. 이야기하느라 그만 ‘머그잔’에 달라는 말을 잊은 것이다. 설거지의 수고로움을 덜고, 야외 활동에 편리하다는 이유로 쓰이기 시작한 일회용 종이컵은 자판기가 생기면서 빠른 속도로 소비가 증가했다. 테이크아웃 가게들이 종이컵, 플라스틱 컵 등 일회용 컵을 이어 받았고, 이젠 거의 대부분의 카페에서 일회용 컵이 쓰이고 있다. 카페 안을 둘러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회용 컵을 앞에 놓고 있었다. 결국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떤 대가로 종이컵 두 개를 남겼다.

종이컵은 숲에서 나무를 베고, 펄프로 만드는 과정에서 수많은 화학 약품처리를 거쳤을 테고 만들어진 종이는 다시 종이컵 공장으로 가서 비닐코팅처리가 되고, 겉에 카페를 알리는 인쇄를 거쳐 카페에 왔을 것이다. 나무 한 그루가 종이컵이 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탄소가 배출되었을까? 우리가 마시고 버린 종이컵이 재생종이나 휴지 등으로 거듭나게 될지, 그냥 쓰레기로 매립이 될지 혹은 태워 없어질지는 알 수 없다. 설령 재활용이 된다 해도 적은 양이긴 하나 탄소가 배출될 것이며 쓰레기로 매립되거나 소각된다면 보다 많은 탄소가 배출될 것이다. 이렇게 배출된 탄소들이 쌓이고 쌓여 티베트 고원의 빙하는 빠르게 녹아내리게 될 것이다.

이 연재는 일상을 살아가며 인식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원인과 결과로 이어지는 다양한 관계들을 살펴보려 한다. 연결된 인과의 관계를 낱낱이 깨닫게 되면 될수록 우리 삶은 좀 더 신중해지고 ‘다음’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편안히 앉아 차 마실 시간조차 확보하지 못해 길을 걸으며 종이컵 속의 커피를 홀짝여야 하는 우리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나와 내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갖고자 한다. 이 글을 읽는 그 누군가는 일상에서 깨어있는 삶으로의 전환을 시도해 볼 거란 기대도 한다. 내가 쓰는 에너지가 티베트 고원의 빙하를 녹이는 일에 일조하는 이치, 별 생각 없이 사용하고 버린 페트병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는 바다생물들의 이야기 등을 통해 부처의 씨앗을 잘 키우는 방법을 함께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최원형 eaglet7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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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형 소장은 연세대를 졸업하고 EBS와 KBS 방송작가로 근무했다. (사)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활동했고, 지식 책 강의를 하고 있다. 현재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으로 생태·에너지·기후 변화와 관련해 강의 및 관련 콘텐츠 개발도 하고 있다. ‘10대와 통하는 환경과 생태 이야기’ ‘도시에서 생태 감수성 키우기’ 등 저서가 있다.

[1339호 / 2016년 4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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