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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벚꽃, 소박하게 즐기기

기자명 최원형

동네 벚꽃 호젓이 즐기는 것도 멋스런 일

봄이 오는 모습을 올해처럼 가까이에서 그리고 날마다 지켜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회갈색이던 숲이 조금씩 부드러운 기운을 띄더니 맨 먼저 숲 가장자리에 노란 별들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아마도 숲 어딘가에는 생강나무 꽃이 먼저 피었을 테고 그보다 먼저 개암나무 꽃이 피었을 테지만 내가 본 첫 꽃은 개나리였다. 개나리가 무리지어 피며 노란 물이 번지는가 싶더니 숲 안쪽으로는 진달래가 또 군데군데 무리 지어 보였다. 마치, ‘나도 여기 있어요’ 라고 말하듯이. 그냥 나무들이 잔뜩 모여 있는 숲이었는데 그곳에 알록달록 색이 드러나자 제각각의 존재들이 확연해졌다. 마른 나뭇가지에는 연둣빛 점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같은 하루여도 시간차를 두고 풍경이 달라졌다. 그러니까 오전에서 오후로 가면서 꽃봉오리는 더 부풀어 오르고, 잎눈도 열리면서 숲의 모습이 계속 바뀐다는 걸 올해 처음 실감했다. 자연의 시계가 움직이는 걸 지켜보는 일은 경이롭다.

벚꽃축제 장소마다 차량행렬
온실가스로 개화시기 빨라져

떠들썩하게 봄이 시작되면서 새들도 바빠지는 걸 느낀다. 아직 겨울이던 2월부터 까치는 둥지를 짓느라 바빴다. 둥지를 짓는다는 건 곧 알을 낳는다는 걸 의미한다. 새둥지에서 알을 깨고 새끼들이 나오면 성조들은 더욱 분주해진다. 이 무렵 나뭇가지에 여린 잎이 달리면 곤충들도 알을 낳고 그 알에서 애벌레들이 꼬물거리며 나온다. 부드러운 잎사귀를 갉아먹는 애벌레들이 늘어나는 시기와 맞물려 새끼 새들이 부화하는 것은 톱니바퀴 두 개가 맞물려 돌아가는 이치와 비견할 만하다. 왜냐하면 새끼 새들에게 애벌레는 요긴한 단백질 공급원이기 때문이다. 적절하게 애벌레 수를 조절해주니 새는 나무에 이롭고, 사실 곤충들에게도 새는 이로운 존재다. 지나치게 수가 늘어나면 오히려 곤충 생태계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먹고 먹히는 관계를 애달프다고만 할 일은 아니다.

정작 애달파하고 우려해야할 것은 때를 잊고 피어나는 꽃들이 아닐까 싶다. 지난 해 12월은 1973년 이래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뼈가 시리도록 춥다던 파리의 12월은 장미가 피고 벚꽃이 피는 등 봄날처럼 푸근한 날의 연속이었다. 올 1월에 추위가 대단한 날이 있긴 했어도 이제 겨울이 예전 같지 않다는 데에는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 따뜻한 겨울날씨 덕분에 봄꽃들이 평균 개화시기보다 일찍 피었다. 2014년에는 서울 여의도 벚꽃이 예상보다 2주일이나 앞당겨 피었다. 뿐만 아니라 시차를 두고 피어야할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거의 동시에 피어버렸다. 이런 혼란은 십수 년 전에도 있었다. 식물이 꽃을 피우는 것은 그들의 생존 때문이다. 많은 에너지를 쓰면서까지 꽃에 공을 들이는 까닭은 ‘수정’에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벌, 나비 등 곤충을 불러들여 식물들의 자손을 번식시키고자 화려한 꽃잎으로 유혹하고 꿀로 유인한다. 식물에게 꽃은 생존전략이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꽃은 무엇일까?

해마다 벚꽃 축제기간 동안 하동 십리 벚꽃 길은 주차장이 된다. 아무리 길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져도 결국, 사람들은 몰려든다. 긴 시간 동안 차를 타고 가서 벚꽃은 과연 얼마나 들여다볼까? 벚꽃을 맨눈으로 보는 것보다 사진기를 통해 벚꽃을 보는 시간이 더 많은 건 아닐까? 심지어 밤에도 벚꽃을 감상하라고 전등불까지 밝혀둔다. 벚나무는 사람들 등쌀에 축제기간에는 밤에도 잠들지 못한다. 오가며 배출하는 온실가스로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벚꽃은 해마다 철을 잊고 자꾸 일찍 핀다. 우리나라 어느 곳이든 동네마다 벚꽃 한두 그루 없는 데가 있을까? 사실 봄에는 꽃도 꽃이지만 잎도 꽃이다. 잎눈을 펼치고 나오는 어린잎을 들여다보면 그 신비로움 또한 충분히 감동적이다. 잎눈이 한두 개씩 열릴 즈음 무사히 봄이 온 것을 마을사람들과 함께 기뻐하는 건 어떨까? 멀리 가기보다는 내가 사는 동네 사람들과 벚꽃이 만개한 봄날, 삼삼오오 모여 벚꽃을 즐기며, 벚꽃이 건강하게 내년에도 꽃 피울 수 있기를 기원하는 작은 벚꽃놀이는 어떨까? 때로는 호젓하게 혼자 즐겨보는 건 또 어떨까? 달빛 환한 보름밤이라면 마을 전체가 잠시 전등불을 끄고 달빛 아래 벚꽃을 즐겨보는 것도 좋겠다. 꼭 ‘축제’여야 할까? 작고 소박한 놀이로는 벚꽃의 아름다움이 반감될까? 전문가들은 지금 추세대로라면 20년 뒤엔 2월부터 봄이 올 거라 내다본다. 조만간 이 땅에서 겨울이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내 삶과 연관된 자연의 변화를 주의 깊게 살필 수 있을 때 비로소 연기를 이해한 게 아닐까 싶다.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340호 / 2016년 4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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