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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위기에 처한 대승불교

기자명 김정빈

미래불교, 불교 안팎 고찰 요구

지난주에 대승불교에는 다양 다기한 사상이 있다는 것, 그것은 불교 사상이 찬란해졌다는 긍정적인 면과 함께 신자들이 마음을 한 사상에 오롯하게 집중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부정적인 면이 있음을 지적했다.

신도 감소, 신심 저하 등
북방불교 위기 처해
대승불교 문제 타개 위해
이웃종교 대한 검토 필요

이 두 면 중에서 전자에 의해 21세기 현재 북방불교가 보유하고 있는 성과물이 나오게 되었다. 그렇다면 현재 북방불교의 모습은 희망적인가? 필자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북방불교를 대표하는 나라는 중국, 한국, 일본, 티베트이다. 이 중 중국불교는 마오쩌둥 시절에 철저히 파괴되었다가 현재 복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 복원이 정치적인 영향을 받으며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중국불교가 과거의 영광을 부활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일본불교 또한 사정이 좋지 않다. 일본불교는 역사를 거쳐 오면서 일본의 전통 문화를 너무나 많이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지금 일본불교는(적어도 주류는) 장례 불교가 중심이 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점에서 한국불교는 중국 및 일본불교보다는 불교 본연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긴 하지만 한국불교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것,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필자가 처음에 지적한 대로 한국불교는 지금 신자의 수가 줄고 신심 또한 약해져가고 있다.

앞에서 예시한 북방불교를 대표하는 네 나라 중 불교만을 놓고 볼 때 티베트불교가 가장 자신의 정체성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 정부로부터 압력을 받는 형편에서도 티베트불교는 본토 및 망명지 인도에서, 또한 달라이라마 14세의 지도 아래 서구 및 세계 전역에서 나름대로 착실히 불교를 선양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티베트불교의 미래는 어떨까? 티베트불교의 앞날이 반드시 밝지는 않다. 먼저, 나라를 잃고 망명지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 티베트불교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에 더하여 티베트불교를 거의 혼자서 지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달라이라마 14세가 노령에 접어든 사실, 그분을 이어받을 다음 후계자가 누구인지 결정되어 있지 않은 상황을 고려할 때(달라이라마 제도를 고려할 때 달라이라마 15세는 어린아이일 것이고, 그나마 달라이라마 14세가 입적하고 난 수년 후에나 결정될 것이다) 티베트불교의 미래는 매우 불확실한 형편이라 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이를 결정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남방불교를 살펴보아야 하고, 그 다음으로는 기독교를, 그 다음으로는 종교 밖에서 인류가 이루어놓은 위대한 성과를 살펴보아야 한다. 종교를 바라보는 시각에 내재적인 시각과 외재적인 시각이 있음은 이미 말했거니와, 우리는 내재적인 시각을 보강하기 위해 남방불교를(포함한 근본불교를), 외재적인 시각을 보강하기 위해 기독교를(비롯한 타종교를), 나아가 종교 밖에서 일어난 인류의 발전을 살펴보아야만 하는 것이다.

먼저 남방불교부터 살펴보자. 그런데 남방불교를 살펴보기에 앞서 필자는 남방불교를 지칭하는 용어부터 정리할 필요를 느낀다.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로 대표되는 남방불교를 아직까지도 ‘소승불교’라 지칭하는 분들도 있는데, 이는 옳은 호칭이 아니다.

북방불교는 스스로를 ‘대승불교(Mahāyāna)’라 불러주기를 원하고 남들 또한 그렇게 부른다. 같은 이치로, 남방불교 또한 자신의 이름을 자신이 지을 권리가 있고, 우리는 그 이름으로 그들을 불러주어야 한다.
그들이 스스로 지은 자신의 이름은 ‘테라와다(Theravada)’이다. 테라와다에서 ‘테라’는 십 년 이상 출가자로 살아온 원로 승려를 의미하고, ‘와다’는 길을 의미하므로 테라와다는 ‘원로 승려들의 길’을 의미한다.

우리 말에서 상좌(上座)라는 말은 원로 승려를 의미하기도 하고, 원로 승려를 돕는 제자 승려를 의미한다. 이 중 전자를 사용하여 테라와다는 ‘상좌불교’로 번역되어 널리 사용되고 있으므로 본고에서는 ‘테라와다’와 ‘상좌불교’를 남방불교를 지칭하는 용어로 삼도록 하겠다.

김정빈 밝은불교신행원장 jeongbin22@hanmail.net
 

 [1340호 / 2016년 4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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