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지혜의 문은 지해로 열 수 없는 것
16. 지혜의 문은 지해로 열 수 없는 것
  • 성원 스님
  • 승인 2016.04.19 13: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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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 저절로 흩어지니 봄날은 가고야 만다

▲ 일러스트=강병호

깊고도 깊은 봄인가 봅니다. 봄꽃은 아름다운 제주의 길가에만 가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꽃 아름다움은 꽃 자체보다
마음속에서 모질게 결정돼

수행의 문 일단 들어섰다면
일체 ‘지해’ 다 내려놓아야
‘지혜’는 비울 때 더 빛나


보내오신 편지에 온통 봄꽃이 흐드러져 나부끼네요. 봄꽃 가득 묻은 편지를 보니 어린 시절 좋아했던 시조가 생각납니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 만은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들어 하노라’

정말 봄날 달밤, 배꽃 가득 핀 산언저리 밭에 하이얀 달빛이 배꽃에 쏟아질 때면 달빛 감싸 안은 배꽃을 향한 감탄보다도 한 편의 시구에 더 맘을 빼앗기곤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올해 유난히 화사한 벚꽃이 온 제주에 가득했습니다. 수차례 벚꽃아래를 지나다가 문득 느꼈습니다. 꽃의 아름다움은 꽃보다 내 맘에서 모질게 결정되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내 맘이 다급하고 생각이 많은 날은 궁전같이 찬란한 봄꽃 아래를 지나면서도 꽃이 피였는지조차 인식치 못하다가 맘에 콧노래라도 나오는 날에는 온통 흥취에 젖어 카메라 앵글을 잡느라 정신이 없으니 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내 맘의 작은 파장만도 못한 듯합니다.

봄꽃 소식과 함께 기분 좋은 소식이 들려와서 올해 봄날은 더없이 기분이 흥청입니다.

긴 시간 미국에서 거의 독학하다시피 대학공부를 해온 사제스님 한 분이 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원에 합격하였다는 소식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실 하버드 합격 소식보다 저를 더 고무시킨 것은 이국땅 사제스님이 망설임 없이 제게 전한 말이었습니다.

‘사실 공부하여 합격하고 보니, 지금까지 학벌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 같다. 이제 말끔히 없어진 것 같다’고 하면서 말을 이었습니다. ‘어서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 선원에 들어가서 대중들과 정진하고 싶다. 정말 미치도록 선원에서 묵묵히 앉아 수행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정말 최고의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학습하게 된 이 젊은 수행자를 목마르게 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지혜(智慧)의 문은 지해(知解)로 열 수 없는 것이 아닐까요. 다는 알 수 없지만 그 사제스님의 목마름은 지해가 아니라 글과 언어가 끊긴 마하반야를 향한 목마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해는 마치 소금물과 같아서 마셔도 마셔도 그 목마름은 다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일찍이 큰스님들께서는 저희들에게 대지혜를 증득하기 위한 지름길을 고구정녕하게 타일러 주셨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세존이 되신 존경받는 고타마 싯다르타께서 고뇌하신 종류와 고뇌의 방식을 완전 답습한다고 우리의 수행이 아름다울까? 한때 많이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에겐 위대한 스승이 있습니다. 스승은 자신의 길만을 고집하고 꼭 따르라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고타마의 고뇌를 우리들이 함께 해보는 것도 참으로 수행의 터전에 나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좀 더 지혜로운 제자라면, 스승의 이끌어 주심을 받아 보다 직설적인 위치에 올라 나머지 길을 치달려 가는 것이 청어람의 모습이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

우리들이 나아갈 열반의 길에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라면 훌륭한 스승은 엄격히 우리들에게 하지 말라 일러 주신다고 믿습니다. 수행의 문에 일단 들어섰다면 세상살이에 필요한 일체의 지해는 다 내려놓아야 할 것입니다.

지해는 얻어 더하는 데서 빛을 발하지만 참다운 지혜는 비우고 맑히는 데서 더욱 빛날 것입니다.

그제 온 비 탓인지 오늘은 온통 꽃잎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설령 우리들이 나르는 봄꽃의 정확한 이름이나 원산지, 식물학적 계통은 알지 못해도, 신통한 재주로 나르는 꽃잎을 다 헤아리진 못해도, 꽃잎은 저절로 다 흩어져 날아가고, 깊은 감상에 젖어 한 편의 멋진 시를 그려내지 못해도 봄날은 가고야 말 것입니다.

꽃에 대한 알음알이보다 꽃을 꽃으로 보고 아름다운 시 한 구절 쓰는 일이 꽃을 더욱 본질적으로 아는 일이 아닐까요? 꽃을 보고 정확한 계통과 학술적 자료를 분석하는 것보다 꽃을 있는 그대로 노래해주기를 꽃도 더 바라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봄꽃 아름다워 노래불러주지 못하고 봄을 다 보내고 마는 것 같습니다. 봄꽃을 볼 때마다 노래 지어 부른다면 그 해는 나이 한 살 더 먹지 않는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이렇듯 수행의 기치를 걸고 살아온 긴긴 날, 세속의 알음알이에서도 맑은 빛을 찾아보려는 불자님에게 더 이상 말이 필요 없고, 언어적 논점이 필요 없는, 맑은 수행의 향기로 흠뻑 적셔주지 못하는 일생의 모습이 자꾸 부끄럽게만 느껴집니다.

그림 한 장, 시 한 편 짓지 못하고 봄꽃을 보내버리고 마는 봄처럼, 말이 필요 없는 경지의 청아함을 전해 맑혀주지 못하는 것 같아 맘 아플 뿐입니다.

출가하여 한발 물러 세상을 바라보노라면 세상 모습이 우스울 때가 너무 많습니다. 어릴 때 들었던 이미자씨의 ‘동백아가씨’가 갑자기 금지곡이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일설에 그 이유가 뭐냐고 하니 가사 중에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라는 부분이 있는데 빨갛게 멍들었다는 말이 빨갱이가 되었다는 게 아니냐며 트집 잡아 금지 시켰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파랗게 멍이 들었소’라고 고치기도 했답니다.

총선이 끝났습니다. 한때 북쪽을 상징하던 색상인 빨강색이 보수정당의 색상으로 바뀌었으니 세상이 변해도 참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변화의 바람이 일어올지 궁금해집니다.

세상은 무상하다, 항상함이 없다고 하니 크든 작든 변화는 있겠지요. 늘 불만족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 대부분은 왕창 큰 변화를 바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바뀌고 또 바뀌어 봄바람에 꽃잎 떨어져 길가에 쌓이고, 푸르른 새순 솟아나듯 오늘 밤에 새로운 큰 변화의 바람을 꿈꾸고 싶은 것이 비단 나만은 아니겠지요.

선거 결과에 따라 봄 꽃잎 사뿐히 즈려밟고 사뿐한 걸음으로 나서는 분도 있겠고, 꽃잎 하나 떨구어진 쓰디쓴 술잔을 기울이며 통한의 눈시울을 붉힐 분들도 계시겠지요. 그래도 봄날은 가고 우리 맘속 그리움도 옅어져만 가겠지요.

늘 소란하지 않는 맑은 생각 가득하시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봄이 가는 제주에서 행복한 사문 성원드림.

성원 스님 sw0808@yahoo.com
 

 [1340호 / 2016년 4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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