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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세계인 위한 불타기념관-상

“필리핀 천주교인들도 순례하니 이곳이 바로 세계일화”

▲ 불광산 성운 대사와 조계종 전 총무원장 법장 스님이 2005년 7월21일 두 나라의 교류와 우의를 다짐하며 악수를 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천지신명도 성지를 순례하고 불타기념관에서 함께 만나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예수 등 세계의 일체 신들을 종교교류를 통해 불광산에서 세계평화를 기원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조성했습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부처님의 광명이 두루 비추고 불법의 법수가 오대주에 두루 뿌려지고 있습니다.”

불타기념관을 건설하던 기간 중에는 원숭이도 찾아와서 놀고 근처 고병계 하천의 백로도 날아와서 먹이를 찾기도 하고 심지어는 공사장 인부들이 먹던 음식을 얻어먹으려고 50여 마리가 넘는 유기견이 몰려들기도 하였습니다. 이곳은 불타기념관이지 빈승이 개를 키우려는 곳이 아닌데 하고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도 불타기념관이 완공된 이후 인부들이 철수하자 유기견도 몰려들지 않게 되었지만 대신해서 하늘에는 새들이 날고 개울에는 개구리 우는 소리가 나고 심지어 추운 겨울을 피해서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청둥오리도 이곳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면서 불타기념관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세상의 많은 생명이 모두 불타기념관과 함께 각자 필요로 하고 원하는 것을 취하게 되었으니 이러한 평등 발전을 우리가 어찌 즐거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과 동물이 즐거울 뿐만 아니라 불광산 창건 이래 불타기념관이 지어진 이후로 전체 대만의 민속신앙을 신봉하는 사당이나 신당 등에서 신명들을 모시고 성지순례를 와서 부처님께 예불하였는데 다들 신명께서 주신 점괘를 받고 온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불타기념관이 낙성된 이후로 매년 12월25일을 ‘신명 성지순례 친목회(神明朝山聯誼會)’의 날로 정하기로 뜻을 같이 하였습니다.

이날에는 마조(媽祖), 성황야(城隍爺), 현천상제(玄天上帝), 신농대제(神農大帝), 포공(包公), 여조선공(呂祖仙公), 중단원수(中壇元帥) 등 4000~5000위 신명들이 그들을 신봉하는 신도들에 의해서 가마를 타고 북과 꽹과리를 두드리면서 보무도 당당하게 부처님께 예를 올리러 성지순례를 옵니다. 불타기념관은 이날 찾아오는 수만 명의 음식을 간단하게 마련해 주는데 이를 준비하는 제자들과 봉사자들은 비록 바빠서 몸은 힘들지만 시방대중을 위하고 모든 신명을 위해서 봉사하느라 기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재는 중국 미주(湄洲)의 마조도 왔었고 심지어는 필리핀 천주교당의 아기예수(Santo Niño)조차도 왔었는데 모두들 종교가 다르다고 분별하지 않았습니다. 최근에는 산동성의 ‘지성선사(至聖先師)’ 공자님과 산서성의 ‘관성제군(關聖帝君)’ 관운장이 아주 좋은 인연으로 불타기념관에 오시게 되었습니다. 여덟 자 높이의 동으로 제작되어 불타기념관 본관의 양쪽에 세워져서 문무(文武) 호법신장이 되었습니다.

2015년 6월에는 ‘중화전통종교총회’가 내정부의 행정절차를 마치고 설립되었는데 입법원 원장(한국의 국회의장. 역자 주) 왕금평(王金平) 선생이 총회장을 맡고 부총회장으로 심보 스님, 입법위원 허첨재(許添財), 북항(北港 : 대만 중남부에 위치한 소도시. 역자 주) 조천궁(朝天宮) 이사장 채영득(蔡咏鍀), 행정원 정무위원 양추흥(楊秋興)이 각각 맡았으며 가오슝 시장 진국(陳菊)여사가 고문을 맡았습니다.

사람과 신이 화목하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인위적인 장애도 초월하게 될 것이니 그 초월함 속에서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불광산에서는 정말 매일 매일이 설날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설날이 되면 더욱 불가사의합니다.

선국새(單國璽) 추기경은 중국 사람으로서 전 세계 천주교에서 붉은 옷을 입은 소수 가운데 한 명입니다. 선국새 추기경은 저와 수십 년 우정을 나눈 사이로 섣달 그믐날 저녁에 성당에 있지 않고 불광산에서 저와 둘이서 국수 한 그릇을 먹으면서 묵은해를 보냈습니다.

그분께서 매번 우리들의 행사에 동참해주셨던 것을 마음에 두고 있던 빈승은 그분이 말년에 진복산(천주교 사회복지 문화교육센터. 역자 주)을 건설할 때 불광산의 경제사정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1억8500만원을 진복산 건축에 기증하였습니다. 심지어 천주교에서 주최하는 수천 명의 달리기 시합을 우리의 불타기념관을 출발점으로 하고 그들의 진복산을 도착점으로 하기도 하였습니다.

‘중화민국 건국 1백년-사랑과 평화의 종교기원대회’가 불광산 불타기념관에서 성대하게 거행되어서 십여개의 종교단체에서 연합하여 참가하였습니다. 천주교 대만지역주교단, 교회합작협회, 도교회, 중화이교(理敎)총회, 중국회교협회, 종교와 평화협진회, 중화천리교총회, 중화천제교(天帝敎)총회, 일관도총회, 천덕교(天德敎)총회, 중화불교거사회, 중화불교협회, 재단법인 헌원교(軒轅教) 등이 함께 세계를 위해서 평화를 기원하였습니다.

각 종교 간에는 서로 배척하거나 대립할 필요가 없습니다. 서로 포용하고 서로 존중하면서 단결하고 화합할 수 있어야 인간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기쁨일 것입니다.

빈승과 각 종교와의 왕래를 상세히 말할 수는 없기에 일일이 서술하지 않겠습니다. 어쨌든 평화는 입으로 떠든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고 교류를 통해서만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즐거움을 인간세상에서 펼쳐나가고자 합니다. ‘일필자’를 쓸 때 빈승은 ‘환희인간(歡喜人間)’이라는 글을 자주 씁니다. 우리가 인간 세상에 온 것은 번뇌에 휩싸이려고 온 것도 아니고 남과 싸우려고 온 것도 아니며 서로 대립하고 경쟁하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즐겁고 우애 있으며 모두가 화목하게 조화를 이루기 위해 온 것입니다. 이러한 즐거움과 기쁨은 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곳에서 필요로 하는 것으로, 우리가 인류의 한 구성원으로서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최근 가장 기쁜 일은 바로 불광산에서 불타기념관을 이어주는 불광대도가 완공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불광산을 찾아오는 방문객은 불광산 바깥으로 나가서 불타기념관으로 갈 필요없이 불광산 안에서 걸어서 곧바로 갈수 있게 되었습니다. 불광산은 법당과 법당이 이어져 있고 부처님과 부처님이 같이 이웃하고 있습니다.

불타기념관은 ‘불보(佛寶)’를 대표하며 불광대도에 위치하고 있는 장경루는 ‘법보’를 대표하고 불광산 안쪽은 총림학원과 승가대중이 머무는 곳으로서 이미 50년 역사의 불광산 도량으로 ‘승보(僧寶)’를 대표합니다. 그래서 불·법·승 삼보를 불광대로로 연결 지어서 하나로 이어주고 있는데 이는 일부러 그렇게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마찬가지로 불광산 도량 입구에 위치한 방생지 일직선 위쪽에 위치하고 있는 대웅보전 역시 그전에는 이 지역의 동서남북을 잘 모르는 상황 아래 방생지에서 불이문, 영산승경, 조산회관, 성불대도와 대웅보전으로 한군데 한군데씩 지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조산회관의 가운데로 길을 내고 나니 방생지에서 대웅보전에 이르는 길이 중심축이 되어 전체 불광산이 하나로 이어져 대중들이 다니기에 더욱 편리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풍수지리를 볼 줄 아느냐고 묻는 사람이 자주 있습니다. 사실 풍수지리는 우리들 마음 속에 있고 우리의 환희심과 선열(禪悅)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불광산을 삼보산(三寶山), 환희산, 난꽃잎산 혹은 사대명산 등 어떻게 부르던 간에 불광산은 정말 부처님의 광명이 환하게 비치고 있는 산입니다.

이런 것 외에도 불광산에는 영험함과 신기한 일들이 많이 있지만 우리들은 말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지장왕보살님께서 가려고 하지 않았던 일(불광산 앞을 지나던 차량에서 지장보살상이 굴러 떨어졌는데 운전자가 온갖 방법으로 다시 싣고 가려고 해도 움직일 수 없자 할 수 없이 불광산에 봉안. 역자 주), 관세음보살께서 대나무 끝에 현신하신 일, 아미타대불이 몸을 돌린 일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신기한 일들이 불자들의 증언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영험한 세계의 일로서 영험함을 직접 느낀 사람들 몫이기에 우리는 이를 떠벌리지 않습니다.

건축시설물로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 외에도 신도들과의 활동에서도 무한한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1992년 미국의 LA에서 국제불광회가 창립되고 나서 불광산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하룻밤 사이 전 세계로 비추어지게 되면서 불광산 분원이 전세계 오대주 여기저기에 세워졌습니다. 미국 서래사, 아프리카 남화사, 호주 남천사, 유럽 파리 법화사 등등 세계 각처의 대도시에 불광산의 거점이 마련 되었습니다.

물론 이는 저 개인의 힘이 아니라 백만, 천만이 넘는 불자들이 마음을 모으고 원력을 세워서 함께 이루어낸 것입니다. 그들은 2500년 전 부처님의 자비를 오늘날의 세상에 비추어 냈으며 부처님을 위해서 인도에서부터 행각하여 오늘날 오대주로 불법을 두루 비추게 하였으니 이는 개인의 기쁨을 더욱 확대하여 제불 보살께서도 우리와 함께 기뻐하실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불광회 이외에 제가 1953년 처음 대만 의란에 갔을 때를 되돌아보면 당시에는 절에 다니는 사람은 모두 노인들이고 청년들이 절에 오는 경우가 적었습니다. 저는 젊은 사람들이 불법을 배우게 하려는 마음에서 불교청년합창단을 만들었고 많은 청년 남녀들이 참가하였습니다. 일찍이 출가한 자장, 자혜, 자용 스님은 이미 80세가 넘는 고령이 되었습니다. 출가하지 않은 임청지, 장우량, 장조, 장강추, 장자련, 사자범, 임자송, 오보금, 양아주, 진연주, 주관량 등이 바로 당시의 청년들로 현재 70~80세 백발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몇년 전 이 사람들이 다시 ‘1953 불광합창단’을 결성하였는데 당시 60년 전에 그들이 참여했던 합창단을 기념하려는 의미입니다. 현재 이들은 필리핀, 말레이시아, 홍콩, 중국대륙 등 지역을 다니면서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불광산 여래전 대강당 무대에 오른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은 수천 명 관중 앞에서 60년 전에 불렀던 ‘홍법자의 노래’와 ‘불교청년의 노랫소리’를 예전처럼 기운차게 불렀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세월과 인연의 융화가 어우러지는 속에서 제가 기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1340호 / 2016년 4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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