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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지견 스님과 운문사 수제비

음식의 맛 숙성에 따라 달라…사찰음식은 세 가지 장에서 나와

▲ 일러스트=강병호 작가

법계사는 충남 논산 바랑산 자락에 위치한 사찰이다. 주지 지견 스님의 원력으로 개산한 법계사는 선방과 지대방을 비롯해 화엄동·금화원에 108개의 방사를 갖추고 있다. 특별히 조용한 곳에서 수행을 갈무리하려는 스님들을 위한 수행공간으로 많은 비구니스님들이 참선과 기도로 정진하고 있다.

학인시절 별미는 수제비
몇 시간 숙성이 맛의 비결

학인은 많고 절살림 가난해
반찬은 짜디짠 김치가 전부

삭발식엔 찰밥과 미역국
설엔 떡국과 유과 만들어

요즘 최고 별미 표고버섯
버섯 탕수이는 단연 인기

지견 스님은 24세에 출가했다. 뜻밖의 일이 계기가 됐다. 종종 도움을 드렸던 스님이 갑자기 입적을 하자, 그 스님이 못 다한 공부를 대신 마쳐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입산을 결심했다. 천성산 내원사에서 자광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스님은 이후 운문사 강원에서 5년간 공부를 했다. 이후 제방선원에서 화두를 들었다. 그러나 득도는 요원해보였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법계사 불사였다. 부처님과 시주자들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후학들의 공부를 돕는 것이라 생각했다. 세납 50세가 넘어 시작한 불사가 우여곡절 끝에 23년만인 올해 10월 낙성을 앞두고 있다.

1960년대, 스님이 학인시절을 보냈던 운문사는 법당 하나에 강원으로 쓰는 요사 하나가 전부였을 만큼 가난한 절이었다. 스님이 6회 졸업생인데 당시 대중은 40명 정도였다. 명성 스님이 학장 소임을 맡고 계셨는데 매사에 어김이 없어서 학인들 사이에 밀리미터(mm) 스님이라는 별호가 있을 정도였다. 하나가 잘못되면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될 때까지 다시하게 했다. 당시는 섭섭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렇게 훈련받은 게 훗날 공부를 하고, 불사를 하는데 어려움을 극복하는 바탕이 됐다.

모든 게 부족했던 시절, 학인들도 소임을 맡아야했다. 공부는 주로 새벽에 했는데 호롱불을 밝혀 공부하다보면 그을음에 콧속은 항상 새까매졌다. 공양간 역시 호롱불에 의지해 공양을 준비했다. 먹는 것이 늘 같았으니 공양간에 특별한 조리기구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했다.

“모두 발우공양을 했는데 늘 배가 고팠어요. 하루는 김치라도 배불리 먹어보자며 몰래 장독대에 갔다가 장독뚜껑을 밟아 깨뜨리는 사고가 발생했어요. 지금이야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는 큰일을 낸 것이라 쫓겨나지 않으려고 죽을 힘을 다해 도망갔습니다. 다행히 잡히지 않아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겁니다.”

지견 스님도 운문사에서 원주, 채공, 공양주 등의 소임을 경험했다. 조리법은 선배스님들이 하는 것을 보고 어깨너머로 배웠다. 당시는 된장 하나면 만사형통이었다. 다만 어떤 음식이든 숙성을 시켜야 맛이 배가 된다는 게 경험으로 터득한 비법 아닌 비법이었다. 시래기 된장국만 하더라도 시래기를 어떻게 숙성시키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졌다. 저녁에 된장을 무쳐 놨다가 이튿날 아침에 끓이면 밤에 숙성이 돼 더 맛있었다. 

학인시절 별미 중에 별미로 꼽혔던 수제비도 마찬가지다. 밀가루를 반죽해 바로 만드는 수제비와 몇 시간 숙성시킨 것과는 맛에서 큰 차이가 났다. 맛있는 수제비를 만드는 또 다른 비법은 밀가루에 간장과 기름, 말차를 넣고, 가죽나무 우린 물을 넣어 반죽을 하되 여러 번 치대는 것이다. 이렇게 마련한 반죽을 손으로 잡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나눠 하루 저녁 재우고, 다음날 요즘 감자칩처럼 아주 얇게 떼서 끓이면 정말 맛있는 수제비가 된다.

반찬은 김치가 전부였다. 배추 속은 찹쌀 풀에 다시 마물을 넣고 고춧가루, 생강, 청각을 넣어 준비했다. 특히 다른 반찬이 필요 없어도 될 만큼 짜게 만드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그 외 삭발식에는 찰밥과 미역국을 먹었고, 책거리 때는 학인들이 돈을 모아 대중공양을 올렸다. 설에는 떡국과 유과를 만들고, 동지에는 팥죽을, 추석은 송편을 빚었는데 늘 양이 부족해 조금씩 얻어먹을 뿐이었다.

옛 시절의 특식은 아니지만 스님이 꼽는 요즘 최고 별미는 ‘표고버섯’이다. 법계사 주변은 봄·가을에 표고버섯이 많이 나는데 표고를 수확하면 버섯밥, 버섯탕수이, 버섯탕 등을 양껏 해 해 먹는다. 그 중에서도 최고 인기 메뉴는 단연 ‘버섯탕수이’다. 고기 대신 버섯을 이용하기 때문에 버섯 이()자를 써서 ‘탕수이’라 부른다. 만드는 방법은 먼저 표고버섯을 불린 후 간장, 후추, 참기름 등으로 밑간을 한다. 재워둔 표고에 전분 가루를 살짝 묻혀 튀김옷을 입힌 후 기름에 바삭하게 튀겨내면 된다.

“예전에도 이런 음식을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비싸서도 마음껏 먹지 못했을 것입니다. 법계사는 공부하는 스님들을 위해 표고버섯탕수이를 자주 공양 올립니다. 버섯은 맛이 좋을 뿐 아니라 단백질이 풍부해 기운이 부족한 스님들에겐 더없이 좋은 보양식입니다.”

스님은 음식에 대해 좀 까다로운 편이다. 맛에 대한 탐착이 아니라 그만큼 음식에 정성을 다한다는 의미다. 몸을 유지하는 기본인 음식을 소중히 다뤄야 다른 일에도 소홀하지 않는다고 스님은 확신한다. 특히 사찰음식은 된장과 간장, 고추장 세 가지를 저버려선 안 된다는 게 스님의 확고한 음식철학이다. 아무리 현대화되더라도 우리의 문화는 우리가 지켜야지 절집마저 이를 저버리면 고유의 전통을 영영 잃어버릴 수 있다고 경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리=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지견 스님은

1968년 양산 천성산 내원사에서 자광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운문사 강원을 졸업하고 제방선원에서 정진해오다 법계사를 창건해 납자들을 후원하고 있다.

 

 

 

  [1340호 / 2016년 4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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