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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텔레비전 없는 일상

기자명 최원형

텔레비전 없애니 집안 분위기도 확 바뀌어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고, 10여년 전에 고장이 나면서 자연스레 없어졌다. 정확한 사이즈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28인치쯤 되는 텔레비전이었는데 뚱뚱한 브라운관이 붙어 있어서 부피가 상당히 컸다. 텔레비전을 폐기 처분하고 공간이 여유로워지자 새롭게 그 자리에 텔레비전을 놓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쌓여있던 책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고, 그렇게 해서 자연스레 텔레비전 없이 지내게 되었다.

거실 중앙에 TV 대신 소파
음악·법문 듣는 시간 늘어
무차별적 광고에서도 자유
가족·이웃에 관심 더 커져

텔레비전이 집에 있을 때도 우리 집은 티브이 시청 시간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텔레비전은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시작하는 시간에 켜서 보고나면 꺼야한다는 것을 알려줬고, 어른과 달리 그걸 잘 지켰다. 텔레비전이 고장 났을 때 서비스센터 직원이 와서, “기계는 자주 돌려줘야하는데, 너무 텔레비전을 안 보셨나 봐요”라고 했다. 텔레비전이 없어서 처음 아쉬웠던 것은 월드컵 시즌에 아파트 전체가 떠나가라 환호성 지르는 걸 듣고만 있어야했을 때였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텔레비전을 실시간 볼 수 있으니 상관없긴 하다.

텔레비전이 없는 우리 집 거실에는 소파가 한쪽 벽면이 아닌 거실 중앙에서 창 쪽을 보고 놓여 있다. 소파에 앉아 내다 볼 풍경이 있어 가능한 것이기도 하지만 일단 텔레비전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밖을 내다볼 수 있게 되었다. 가끔 우리 집엘 찾아오는 사람들은 독특한 구조라며 부러워한다. 그러면서 “아, 텔레비전이 없으니까 가능하구나”하는 이야기를 더러 한다.

텔레비전이 없어도 사실 요즘은 미디어 홍수 시대에 살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 그럼에도 집에 필수라 생각했던 물건을 하나 없앰으로 해서, 집안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집에 가족들이 있을 때는 음악을 켜놓기도 하고 혼자 집안일을 할 때는 귀로 법문을 듣기도 한다. 다른 일을 하면서도 귀만 열려있으면 가능한 일이다.

텔레비전이 없어서 좋은 점은 꽤 있는데 그 중에서도 단연코 첫째는 광고에서 해방이 되었다는 거다. 물론 인터넷 창을 열면 쏟아지는 배너, 팝업 광고들을 만나게 되지만 일단 텔레비전에서 무차별 쏟아지는 광고로부터는 자유로워졌다는 사실이 장점 중의 장점이다. 텔레비전을 보게 되면 피할 수 없는 게 광고다. 내가 보려고 하는 프로그램이 드라마든 다큐든 뉴스든 종류를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광고에 알게 모르게 세뇌된다. 정말 요긴한 광고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광고는 욕망을 자극하고 열등한 부분을 자극해서 물건을 소비하도록 한다.

광고란 어떤 걸까? 새로 차를 구입하려는 사람이 있다 치자. 어떤 차를 살까 계산기를 두드리다보니 경차가 여러모로 요긴할 것 같았다. 경차는 톨게이트 비용, 주차비용, 자동차세금, 보험료 등 모든 면에서 경제적인데다 기름도 적게 드니 환경에도 해를 덜 끼칠 듯해 어느 정도 마음을 굳힌다. 그런데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광고는 ‘당신의 품격…’을 들먹이며 중형세단을 권한다. 경제적으로 깨알같이 따졌던 모든 것들은 광고 카피에 세뇌되어 물거품 되고 결국 ‘품격’을 선택한다. 자동차를 가격대비 기능과 유지비를 따져보고 고르는 게 합리적일까, 내가 소유한 자동차로 인해 내가 얻게 될(사실은 얻을지 어떨지도 알 수 없는) 품격을 생각해 고르는 게 합리적일까?

그렇게 해서 다소 무리하게 구입한 품격의 대가는 매달 할부금을 갚느라 허리가 휘청거린다. 늘어난 카드대금으로 바깥 풍경이 바뀌는 것에 마음 둘 여유조차 없어진다. 광고가 폐해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공익광고의 경우, 함께 사는 공동체를 쾌적하게 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광고는 자본주의의 꽃이다. 지속적으로 광고에 노출되다보면 필요에 의한 소비가 아닌 소비를 위한 소비, 합리적인 소비가 아니라 관념적인 소비를 하게 된다. 광고하는 제품의 주 소비층이 집중적으로 많이 시청하는 시간대에 광고를 배치해 그들로 하여금 지금 생활에 도저히 만족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게 광고라고 나는 감히 말한다. 지금 만족할 수 없는 그 욕망에 끝이 있을까?

텔레비전이 없어서 개그맨들의 유행어에 뒤처지는 나는 가끔 원시인 취급을 받지만, 온전히 텔레비전에 붙잡혀 있는 시간에서 해방되었다. 꼭 필요한 정보는 결국 내게 오겠지만 몰라도 되는 정보로 인해, 쓸데없이 소유할까 말까를 고민할 필요가 사라졌으니 좋다. 텔레비전이 없어 얻어지는 시간에 계절이 바뀌는 것을 한 번 더 즐길 수 있고, 나와 이웃의 삶에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되고, 순간순간 깨어있는 삶을 조금이라도 더 누릴 수 있어 좋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341호 / 2016년 4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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