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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향(香)을 먹는 신, 간다르바(乾達婆)

기자명 심재관

윤회 과정에서 업을 매개하는 중간적 존재로 불교에 등장

▲ A. D. 6∼7 세기경. 간다르바와 압사라스. 델리국립박물관.

언젠가, 영화배우 최민식이 한 영화 속에 나와 건달의 본래 의미를 설명하는 장면이 있었다. ‘건달’의 본래 의미가 하릴 없이 빈둥대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향(香)을 먹고 사는 고상한 신이라는 점을 건달에게 일러주는 장면이었다. 그 때 이후로 건달의 본래 말 뜻이 대중에게 급속하게 회자되었던 기억이 난다.

‘중아함경’ 비롯 ‘밀린다왕문경’
‘구사론’ 등 많은 경전서 언급

우리나라 석탑·탱화서도 발견
석탑 기단부 팔부중 중 하나로
사자가죽 쓰고 손에 공후 들어

고대 인도선 압사라스와 함께
천신으로 음악·노래 관장한 신
하늘 날아가는 연인으로 표현

맞다. 우리가 쓰는 건달이라는 말은 건달바(乾闥婆)에서 왔으며 이는 산스크리트 ‘gandharva’를 한문으로 음사한 것이다. 간다르바를 ‘향기를 먹는 신’인 식향(食香), 향을 찾아가는 신이라고 해서 심향(尋香), 또는 심향행(尋香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단어로만 상상하면 이는 향처럼 허공을 떠다녔다가 사라지는 어떤 존재를 상상하도록 만든다.

본래 ‘gandharva’라는 단어의 정확한 어원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는 학자들도 다소 의문이다. 고대 인도사람들도 옛 문헌 속에 이 단어의 뜻을 정의하려고 노력했던 흔적이 보인다. 5세기의 불교철학자 세친(世親, vasubandhu)은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에서 ‘gandharva’를 ‘gandhaṃ’(香)과 ‘arvati’가 결합한 형태로 보고 ‘향을 먹는’ 자로 해석한 적이 있다. 그러나 ‘arvati’를 이렇게 해석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통상 ‘죽인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런 유사(類似) 어원론도 당대 인도에서는 낯선 것이 아니었다.

간다르바의 뜻은 따라서 ‘향을 먹는’다는 뜻을 담고 있지 않다. 아마도 당대의 옛 인도사람들은 간다르바가 향을 먹고 산다는 더 오랜 전설에 기대어 이러한 해석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다. 베다 문헌들 속에 향을 취하는 간다르바의 모습이 단편적으로 나타날 뿐이다.

간다르바는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인다.

현재 음악의 달인을 인도에서는 간다르바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기원은 아마도 인도의 고대 서사시인 ‘마하바라타’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하바라타’에 따르면, 주인공 아르주나(Arjuna)가 산에서 수행을 할 때 기연(奇緣)에 의해 인드라를 만나 무기를 얻고 그것을 다루는 법을 배우게 된다. 여기서 아르주나는 인드라가 사는 도리천(忉利天)에 올라가 5년간 머무르면서 여러 가지 무예를 배우게 되는데, 무술을 다 배운 아르주나에게 음악도 겸비해야 한다며 음악선생을 소개한다. 그 음악선생이 바로 간다르바의 왕 치트라세나(citrasena)였다. 이 간다르바는 인드라 즉 제석천(帝釋天)의 마부이기도 하면서 때로는 간다르바 군대를 이끌어 전쟁을 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간다르바는 음악의 신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전투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신이기도 하다. 언젠가 아르주나에게 흉계를 가지고 있었던 아르주나 사촌들과 간다르바가 전쟁을 벌이기도 했는데 이 때 아르주나가 사촌을 풀어달라고 간다르바에게 요청하는 장면이 있다. 전투하는 간다르바는 우리에게 다소 낯선 모습이기는 하다.

▲ A. D. 6∼7 세기경. 바다미(Badami) 제1석굴의 천정에 조각된 간다르바와 압사라스.

그러니까, 적어도 고대 인도인의 관점에서 간다르바는 압사라스(Apsaras)와 짝을 이루는 천신으로 천계에 머물며 음악과 노래를 관장하는 신들로 등장한다. 때로는 최고 신의 수행자(음악과 마차를 몰며)로 등장하기도 한다.

한편 이 말은 결혼의 형태를 이르는 말로도 쓰는데, 남자와 여자가 성적인 욕망에 의해서 성교를 하고 그렇게 해서 맺어진 결혼을 간다르바라고 불렀다. 서로의 자유의지에 따라서, 양가 집안의 의중과는 관계없이 남녀가 서로 눈이 맞아 결혼하는 형태를 이렇게 불렀다. 요즘 말로 연애결혼인 셈이다. 인도나 네팔에서는 여전히 이러한 연애결혼이 흔하지 않다.

그런데 왜 이러한 결혼 형태에 간다르바라는 신의 이름을 갖다 붙인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은 고전 속에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간다르바와 그의 여성 짝 압사라스 두 신의 애정과 사랑은 ‘리그베다’의 은유적 표현을 통해 지속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두 신의 애정 관계를 인간적 결혼 방식에 투영한 것이 아닐까 짐작하게 한다.

불교로 힌두교의 간다르바가 유입되어 경전에 등장하는 경우는, 음악의 천신으로 등장하는 경우와, 인간의 윤회 과정을 설명하면서 차용된 ‘중간적’ 존재로 나타날 때다. 힌두적인 맥락과 유사하게, 음악의 천신으로서 긴나라 등과 함께 부처님의 설법을 찬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 신이 불교로 유입되면서 맞이한 가장 중요한 발전은 윤회의 과정에서 업을 매개하는 중간적 존재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중아함경’ ‘아섭화경(阿攝和經)’이나 ‘구사론(俱舍論)’의 ‘세간품(世間品)’, 또는 ‘밀린다왕문경’을 비롯해 상당히 많은 경전에서 이를 언급한다. 간다르바 자체가 윤회의 주체로 그려지는 법은 거의 없기 때문에, 아마도 간다르바의 의미를 훨씬 진전시킨 것은 윤회과정을 설명하는 불교의 관점이다. 불교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기 위해서 수태를 하고 세상 밖으로 다시 나오기 이전까지 중유(中有, antarābhava)의 존재를 설정하고 있는데, 이 중유의 존재가 바로 간다르바다. 자궁 속에서 난자와 정자가 결합하여 수정체가 만들어지면 그대로 생명체가 되어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에서는 식(識)의 관념을 여기에 더 덧붙이게 된다. 바로 이 식(識)을 간다르바라고 명명하고 있다. 이러한 존재를 상정해야 전생의 의식적 관습과 행위의 결과가 다음 생애에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윤회전생의 주체가 되어 전생의 죽음으로부터 다음 생애를 받아 태어날 때까지 있다가 자궁 속의 새로운 수정체에 훈착(熏着)되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마치 미세하고 보이지 않는 향이나 연기처럼 말이다.

이러한 간다르바의 관념은 ‘전이(傳移)’의 매개나 주체 정도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설명은 불경 내부에 상당수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가 완전히 불교만의 새로운 창안이었다고는 보기 힘들다. 간다르바가 이러한 매개 또는 전이의 주체로 등장하는 경우는 ‘리그베다’나 후기 베다 문헌들 여러 곳에서 등장한다. 물론 시적인 은유를 통해서 그려지고 있지만, 간다르바의 역할이 때로는 자궁 속에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또 다른 문헌에서 간다르바는 갓 결혼한 부부의 첫날밤에 신부를 취하게 되는 신으로 그려진다. 이는 신들이 갖는 신성한 본질을 잉태할 아이에게, 또는 신랑과 신부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수정체에 신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상징적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간다르바가 ‘귀신을 씌우는’ 주체가 되기도 한다. 이는 간다르바가 꼭 선량한 신으로 등장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도의 민간신앙에서 간다르바는 언어와 노래를 관장하는 신이기도 한데, 이 간다르바 신이 씌운 사람은 말이나 만트라, 노래 등을 잊기도 한다고 전한다.

한편 간다르바는 집단명사로 아수라, 긴나라, 야차 등과 같이 어떤 신들의 집단을 통칭하는 말이며 어떤 개별적 신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이 집단명사들이 구분되기도 하고 때로는 어떤 집단이 다른 집단의 하위 개념으로 사용되는 것처럼 쓰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마하바라타’에서 긴나라(緊那羅 Kimnara)는 간다르바의 하위 무리로 구분되기도 한다.

▲ 내소사 신중탱화의 일부. 위태천 옆에 사자 가죽을 뒤집어 쓴 간다르바.

간다르바의 도상은 한국의 석탑이나 탱화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석탑에서는 기단부에 조각되는 팔부중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는데, 보통 사자(또는 호랑이)가죽을 뒤집어쓰고 손에는 공후(箜篌)를 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사자 가죽을 뒤집어 쓴 모습은 간혹 바즈라파니의 모습이 와전(訛傳)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바즈라파니도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이 신은 이 연재에서 이미 다루었다). 비파 혹은 공후는 음악의 신으로서 간다르바의 모습을 잘 반영하는 것이지만, 간다르바가 입고 있는 사자 가죽의 의상은 필시 중국으로 들어오기 이전에 바즈라파니의 복장에서 전이된 것이다. 중국으로 들어오면서 바즈라파니의 위상이 위축되면서 그의 복장이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투르판 석굴이나 유림석굴(榆林石窟) 등 당대의 탱화 속에는 벌써 사자 가죽을 뒤집어 쓴 간다르바의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들의 모습은 대부분 호위무사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며, 인도에서 보여주듯 비천(飛天)의 형태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인도 조각상에서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인도에서는 거의 대부분 간다르바가 압사라스와 함께 하늘을 날아가는 모습이 조각되며 천정이나 상인방 위쪽에 조각된다. 무장(武裝)을 했다기보다는 하늘을 날아가는 연인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심재관 상지대 교양과 외래교수 phaidrus@empas.com

[1341호 / 2016년 4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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