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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전부라 믿던 고시생에 부처님 자비 온정 전하다

무주상 인재불사 도량, 부산 천불정사

▲ 천불정사에는 고시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물어물어 찾아온 이들이다. 새벽 5시 아침예불은 물론이고, 사중행사에 필요한 운력도 100% 동참한다. 자비의 쌀 전달식을 도운 이들을 격려하는 주지 고담 스님의 미소처럼 고시생들도 싱글벙글이다.

건장한 청년들이 20kg 크기 쌀 포대를 한쪽 어깨에 짊어지고 성큼성큼 옮겼다. 눈 깜짝할 사이에 부산 천불정사 절 마당에 50포대가 가지런히 놓였다. 건물 지하에 있는 법당에서 도량 1층 마당까지 쌀을 옮기고,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쌀을 전달받는 기관의 차량으로 싣기까지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물론 그 잠깐 사이에도 이마에 땀방울이 송송 맺힌 청년들의 어깨를 천불정사 주지 고담 스님이 넉넉하게 토닥였다. 청년들의 두 손이 연꽃 봉오리처럼 가슴 앞에 모였다.

인재불사 원력 지극 고담 스님
2006년 기숙사 ‘고담정’ 열며
사시생 무상 지원해 세간 화제

새벽 5시 아침예불 전원 동참
사중 행사 운력 그들 몫이지만
오히려 고시생 발길 끊임없어

공부만 강조하는 것이 아닌
무주상 나눔 온정 전파 나서

사회 나눔의 원력도 지극해
교도소 등에 자비 등불 밝혀

▲ 부산 천불정사 주지 고담 스님.

4월26일, 부산 천불정사(주지 고담 스님)에서는 정초기도에 이어지는 유무무주 고혼을 위한 49일 천도법회의 회향일 마지막 순서로 자비 나눔이 진행됐다. 생명나눔실천 부산지역본부(본부장 원범 스님)에 난치병 환자들을 위한 쌀 20포대, 금정구 장전3동 동사무소에 지역 저소득 가정을 위한 30포대 등 총 50포대 1000kg을 전달하는 장이었다.

이 자리에서 쌀을 옮긴 청년들은 천불정사에 머물며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이른바 고시생들이다. 과거에는 사법고시, 행정고시 응시자들만 고시생이라고 통칭했다면 최근에는 각 분야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도 고시생이라 부를 정도로 공공기관 취업의 관문은 좁고 아득하기만 하다. 이 같은 현실에서 산중 도량을 찾아 고시 준비를 하는 모습을 이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도심 속 유명 학원과 기숙사, 고시원에서 최신 인터넷 강의를 선호하는 이들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 자비의 쌀은 해마다 다섯 차례 이상 전달식을 갖는다.

그런데 천불정사는 다르다. 부산대 바로 앞, 캠퍼스와 인접한 장점이 있는 이 도량에는 오히려 고시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별히 모집하는 것도 아니다.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물어물어 찾아온 이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고시생들에게 주는 부담은 특별히 없다. 단 새벽 5시 아침예불에는 이유를 막론하고 전원 동참이다. 사중 행사에 필요한 운력도 그들의 몫이다. 그런데도 천불정사 고시생들은 싱글벙글이다. 이날도 약속이라도 한 듯 현재 천불정사에 머무는 고시생 4명이 모두 동참했다. 각자 다른 분야의 시험을 준비하고 있기에 공부 방식도 내용도 다 다르단다. 하지만 이들에는 ‘일심동체’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다 같이 도와서 일이 더 빨리 끝났다. 이렇게 도와드릴 수 있어서 오히려 감사하다”는 한 청년의 이야기에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공덕을 쌓는 일이라고 들었습니다. 공부만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이곳에 와서 배웠어요. 처음에는 예불도 운력도 ‘꼭 해야 하는가’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게 아니었어요. 흥미 있는 점은 기도와 공부를 병행하면서 마음이 훨씬 편안해졌다는 사실입니다. 불교 공부를 함께할 수 있다는 점은 큰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천불정사 고시생 가운데 제일 막내이며 관세사 시험을 준비 중인 전승열(26)씨의 설명이다. 2년 전 토목 공무원의 길을 발원하며 천불정사와 인연을 맺은 김진보(27)씨도 공부할 곳을 찾던 중 우연히 천불정사를 발견했다. 그는 “매일 아침 예불하는 시간이 참 좋다. 일찍 일어날 수 있어서 좋고 절을 하면서 복잡한 생각도 비울 수 있어서 더욱 소중하게 생각한다”며 미소 지었다.

▲ 2007년부터 해마다 1000만원씩 부산대 고시반을 지원해왔다.

농촌지도사를 준비 중인 박성철(32)씨는 얼마 전 허리를 심하게 다쳤다. 고통보다 수술비 걱정으로 속이 탈 때 천불정사 주지 고담 스님은 말없이 수술비 전액을 지원했다. 알고 보니 스님은 이미 만일의 경우 고시생들이 다치거나 아플 상황을 우려해 보험까지 가입해 두었다. 주위의 만류에도 쌀 옮기는 일을 도운 박씨는 “움직임이 많이 편안해졌다. 병원에서 회복도 빠르다고 한다. 하루빨리 나아서 좋은 결과로 스님께 보답하고 싶다”고 밝혔다.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이상훈씨는 “절에서 먹는 밥이 제일 맛있다. 다른 식당을 찾아갈 필요가 없다. 스님과 신도님들의 배려 덕분에 공양주 보살님께서 일부러 고기반찬, 생선구이를 만들어 주신다”며 “이 지역 관할 경찰이나 우편배달하시는 분들도 자주 절에서 공양하신다. 고시생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도 넉넉한 불심을 열어 놓은 절”이라고 자랑했다.

이 같은 천불정사의 배려는 단순히 절을 찾아오는 고시생들만을 위한 일로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2006년부터 8년 동안 부산대 캠퍼스에 인접한 건물에 부산대 행정고시, 사법고시생을 위한 기숙사 ‘고담정’을 무상 제공해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도량이 바로 천불정사다. 또 2007년부터 매년 1000만원씩 지금까지 1억원의 발전기금을 부산대 고시생들을 위한 지원금으로 전달했다. 이 밖에도 부산대 고시생들을 정기적으로 초청해 풍성한 공양을 베푸는 등 공부에 전념하는 청년들을 위한 지원을 아낌없이 이어왔다. 이러한 고담 스님의 인재불사 원력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스님은 16년 전 부산 서구 초장동에서 포교당을 운영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 지역에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거리를 떠도는 청소년들이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청소년들이 절에 살면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했어요. 따뜻한 공양과 편안한 잠자리 그리고 기도하는 소리를 가까이 들으면서 청소년들은 공부에 눈을 떴고 정말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해서 절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공부를 해야 하지만 하지 못할 상황에 부닥친 이들을 도와줘야겠다는 원력을 세웠고 고시생들이 생각났습니다. 국립대인 부산대 가까운 곳에 새 도량을 마련한 것도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바람은 없어요. 그저 천불정사를 거쳐 간 고시생들이 사회에 나가서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고담 스님은 인재불사와 더불어 사회 나눔의 원력도 지극하다. 해마다 설과 추석, 백중, 무주상 49재, 수자령 기도 회향 등에 맞춰 연간 다섯 차례 이상 자비의 쌀 나눔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청송교도소 교정위원도 맡아 매월 교도소 불자들을 위한 자비의 등불을 밝혔다. 이 같은 천불정사의 넉넉한 나눔은 지난 2011년 대통령 표창에서도 잘 드러난다.

▲ 고시생들을 정기적으로 초청해 공양도 제공한다.

고담 스님은 부산대 인근으로 도량을 이전, 2013년 4월 ‘사단법인 대한불교 천불정사’를 설립하고 2014년 11월 도량 대작불사를 마치 뒤 더욱 적극적인 나눔 도량을 발원하고 나섰다. 금정경찰서 경승으로 지역 치안을 위한 후원을 전개하며 금정구 지킴이 도량의 면모를 굳건히 한 데 이어 최근에는 생명나눔실천 부산지역본부 이사로도 활동을 시작, 쌀 나눔의 범위를 지역 저소득 가정뿐만 아니라 난치병 환자들로 확대했다. 스님은 이 같은 나눔 실천을 바탕으로 5월2일 부산시청로부터 ‘부산시 선행상’을 받았다.

인재불사 원력으로 고시생들의 ‘어머니’ 도량이 된 천불정사. 공부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나눔의 온정을 전한 주지 고담 스님의 손길은 무주상(無住相)이나 다름이 없다. 그 손길을 거친 고시생들은 제방 곳곳 우리 사회 각 분야를 밝히는 천 명의 부처님이 되어 향기로운 불국토를 가꾸고 있을 것이다.

부산=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1342호 / 2016년 5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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