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문화 1호’의 빛나는 고군분투에 박수를

기자명 이중남

국제이주분야 연구자 제임스 홀리필드(James F. Hollifield)는 근대 이후의 국가를 주요 기능 변천에 따라 분류하면서 18세기까지를 ‘요새(전쟁)국가’, 19세기까지를 ‘무역국가’, 20세기 이후 현재까지를 ‘이민국가’라고 이름 붙였다. 현대 사회에서 이민자 관리는 과거의 전쟁이나 무역만큼이나 중요한 국가적 업무가 되었다는 것이다. 지구촌에서 꾸준히 발생하고 있는 인구의 이동은 더 이상 무언가 잘못이 생겨 발생하는 이례(anomaly)가 아니다.

이제 국가는 자국으로 들어오는 외국인을 단순히 출입국 관리의 대상으로서만이 아니라 잠재적인 국민, 즉 장차 국민이 될 가능성을 지닌 존재로 상정한다. 좋든 싫든, 반만년 간 순수혈통을 유지해왔다고 믿고 자랑하던 우리나라도 국제이주라는 대세에서 영영 비껴서 있을 수 없음은 명확해지고 있다. 지난 2012년 국무총리 산하 외국인정책위원회는 ‘제2차 외국인정책기본계획’을 통해 2030년 국내에 체류하게 될 외국인 수를 총인구 대비 6.12%, 무려 320만으로 내다봤다.

집권 여당의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에 입성한 ‘다문화 1호’ 이자스민 의원이 다음 달이면 19대 국회와 함께 임기를 마친다. 필리핀에서 나서 살다가 한국인과 결혼해 이민온 뒤 다양한 사회활동을 한 결실로 무려 금배지까지 달았으니, 거기까지만 보면 그의 삶은 그야말로 입지전(立志傳)이다. 다문화 강연을 하거나 연예인을 할 때까지만 해도 그는 인기가 많았다. 오죽하면 필자 같은 대중문화 문외한도 케이블 채널에서 영화 ‘완득이’를 보았고, ‘완득이 엄마’로 나온 그를 알아볼 정도다.

주류사회의 관점에서 볼 때 그는 못사는 나라 출신이요, 생김새가 약간 차이가 나는 데다가 여성이라는 삼중의 소수자(minority) 지위를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남성우위의 한국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지위는 당사자가 딱한 처지로 남아있는 동안은 앞의 두 표지와 결합해 연민과 관용을 불러일으키는 경감 요소로 작용해 왔다. 그렇지만 그가 국회의원이라는 특권적 지위에 도달한 순간, 관용은 철회되고 삼중의 소수자 지위는 질시와 공격을 유발하는 강력한 표지로 돌변했다.

이자스민은 국회의원이 된 뒤 소위 ‘반(反)다문화’라는 수식을 붙인 극우들의 공격을 4년 내내 견뎌야 했다. 그 와중에도 그는 꿋꿋하게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과 이민사회기본법 등 이민과 관련한 두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 가운데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은 2년간의 준비 끝에 내놓은 것으로, 혈통주의를 취하고 있는 현행법상 출생등록도 국적취득도 불가능한 추정치 2만명의 미등록 이주아동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는 현실을 시정하려는 인도주의의 발로였다.

극우들은 특히 이 법안을 ‘이자스민 법안’이라고 부르며 격렬하게 반응했다. 그들은 중앙 일간지에 전면 비난광고를 실어, 이 법안이 ‘대한민국 자살’과 ‘민족의 소멸’을 초래하리라는 저주에 가까운 황당무계한 전망으로 도배를 했다. 국회 입법예고 페이지가 압도적인 반대의견으로 도배된 것은 물론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외로운 싸움을 하는 사람을 응원하기는커녕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인신공격성 기사를 갈겨대는 언론들의 작태도 눈물 나게 한심했다. 아들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도중 담배를 절도했다는 등, 본회의장에서 초코바를 먹음으로써 국회법을 위반한 데다 핸드폰 게임도 했다는 등.

20대 국회에 ‘다문화 2호’는 없다. 그의 말마따나 국회의원 지역구의 인구 상한선이 28만명인데, 무려 200만명에 달하는 이주민을 위해 국회의원 한 명 정도 배정되었어야 옳지 않은가. “어차피 욕먹을 바엔 더 목소리 낼 걸” 그랬다는 그의 인터뷰는 지난 일을 희화화한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앞으로 닥쳐올 시련 앞에 각오를 굳건히 하는 것이라고 새기고 싶다. ‘다문화 1호’가 치른 지난 4년의 빛나는 고군분투에 애정 어린 박수를 보낸다.

이중남 젊은부처들 정책실장 dogak@daum.net
 

[1342호 / 2016년 5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