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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우리의 선택

기자명 최원형

확산되는 지진…한국 핵발전소도 위험지대

일본 구마모토에서 시작된 지진은 에콰도르, 필리핀 등 ‘불의 고리’라 불리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한 나라들에서 계속 이어졌다. 급기야 일본 기상청은 여진예측을 포기했다. 일반적인 지진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발생하는 지진을 예측하는 일이 불가해진 탓이다. 지진으로 하루아침에 집을 잃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보면 대단히 안타까우면서 다른 한편으로 엄습하는 두려움 또한 크다. 아니 두려움을 넘어선 공포감이 밀려온다. 열흘 동안 일본에서 발생한 강도 4이상의 지진이 90번 이상, 강도 1이상으로 기록에 남는 지진은 820회가 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진발생숫자가 급격히 늘었고 그 수치는 공포감으로 밀려왔다. 5년 전, 후쿠시마의 악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2011년 3월에 동 일본해에서 지진이 발생했고 그 여파로 생긴 쓰나미가 후쿠시마에 위치한 핵발전소를 덮쳤다. 냉각수 공급시설이 손상되면서 핵발전소가 연쇄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5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수습이 되지 않은 상태로 얼마 전에는 오염수를 담아놓은 시설에서 누수현상이 발생해 고농도방사능 오염수가 밖으로 유출되었다. 게다가 일본은 방사능오염수를 처리할 가장 쉽고 빠른 방법으로 태평양 배출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이미 날마다 300톤 이상의 방사능 오염수가 쉼 없이 태평양으로 흘러나오고 있기도 하다. 일본 땅의 70% 이상이 방사능으로 오염된 암울한 일본의 모습은 앞으로도 한참 동안 지속될 것이다. 이러한 사태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핵발전소 사고는 결국 답이 없다는 것이다.

당시 후쿠시마 사고는 불행 중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끼치진 않았다. 바로 옆 나라면서도 위험권역에서 빗겨갈 수 있었던 건 우리가 일본의 서쪽에 위치했고, 후쿠시마는 일본의 동쪽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구마모토의 지진은 상황이 달랐다. 구마모토의 위치는 일본의 서쪽, 즉 우리나라 남해와 바다를 공유한다. 그리고 후쿠시마 사고 이후 모두 중단했던 핵발전소 가운데 처음으로 재가동한 센다이 핵발전소 1, 2호기가 구마모토에서 120km 쯤 떨어진 곳에 있다. 아무리 내진 설계를 했다 해도 이토록 잦은 지진에 과연 견디는 일이 가능할까 싶다. 핵발전소는 거대 기계다. 거대 기계란 엄청나게 많은 부품들로 만들어졌다는 의미다. 고리 1호기에 들어간 전선의 길이가 1700km, 연결밸브가 3만 개, 용접한 곳이 6만5000여 군데라 한다. 만약 이 전선이나 연결밸브, 용접한 곳 가운데 어느 곳에 결함이 생긴다면 그걸 쉽게 찾는 일이 가능할까?

우연한 기회에 핵발전소 안을 아주 자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직접 본 것은 아니고 다큐멘터리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핵발전소’를 통해서였다.

오스트리아 츠벤텐도르프 핵발전소는 1978년 가동 준비를 마쳤지만 핵 안전성을 의심하는 시민들의 반대에 부딪혔고, 국민투표를 통해 끝내 시동을 걸지 못했다. 현재 이 발전소는 핵발전소 모습을 한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됐고, 초등학교가 입주해있고, 노인들의 커뮤니티활동과 연회의 장소 등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핵발전소가 되었다. 단 한 명의 관리인이 핵발전소를 지키고 있는데 그곳을 이용하러 온 이들에게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다. ‘여긴 맘대로 다녀선 절대 안 됩니다. 핵발전소 구조는 완전히 미로라, 혹시 길을 잃어 아무리 소리쳐도 당신을 찾을 수 없으니까요.’ 미로, 그렇다. 그렇게 긴 전선과 엄청나게 많은 곳을 용접한 그곳이 미로이기까지 하다. 그러니 작은 결함을 발견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내게 구마모토 지진이 가져다주는 공포감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했다. 엄청난 숫자만큼 핵발전소에 진동이 왔다면, 그래서 미세한 문제라도 발생한다면, 그 미세한 결함이 언제 어느 때 사고로 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

환경활동가들이 위험한 핵발전소 가동을 중단하고 노후 핵발전소를 폐쇄하라고 하면 많은 이들은 ‘그럼 우릴 더러 동굴에 들어가 촛불 켜고 원시인이 되라는 거냐’고 한다. 우리나라보다 위도가 높아 일조량이 훨씬 적은 독일이 핵발전소를 2022년까지 모두 폐쇄하고 태양광과 풍력 등 지속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을 선택했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들끓는 민심에 메르켈 총리가 선언한 것이다. 재생에너지가 이 땅에서 불가할 근거가 없다는 건 독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25기 핵발전소를 갖고 있는 우리, 대대손손 살아가야할 이 땅의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할까?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행복할 권리를 근원적으로 차단하는 핵 말고 우리의 다른 선택은 정말 없는 걸까?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342호 / 2016년 5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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