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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가르침 전하는 일이 곧 한국정치 선진화하는 것”

국회 정각회 강창일 회장

▲ 강창일 의원은 “불교는 대자대비의 중생 구제와 생명 존중의 정신을 바탕에 둔 종교로 인류사회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해왔다”며 “불교의 정신은 이 시대의 등불과 같다”고 강조했다.

총선이 끝난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한갓져 보였다. 화사한 벚꽃이 지고 난 자리에는 부처님오신날을 찬탄하는 봉축탑이 국회를 장엄하고 있었다. 올해 봉축탑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된 이천 오층석탑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빼앗긴 소중한 문화재가 고국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불자 국회의원과 직원들의 간절한 마음이 담겼다.

중학교 때 불교와 첫 인연
새벽 4시면 예불에 꼭 참석

고등학교 때 룸비니회 창립
출가하려 사찰 찾아가기도

대학 시절에는 대불련 활동
참선하며 민중 위한 삶 서원

일본 유학 후 교수로 재직
제주4·3사건 규명에 앞장

국회의원 되고 정각회 재건
불교 법안 제·개정도 앞장

국회 안에서 봉축탑 점등식이 열린 것은 지난해부터다. 매년 연말이면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는 거대한 트리가 세워졌음을 감안하면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렇더라도 봉축탑을 세우고 점등식을 연 것은 자못 의미가 크다.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이자 국가 최고기관인 국회에 부처님의 자비광명을 상징하는 봉축탑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봉축탑 점등은 정각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현재 불자 국회의원 모임인 정각회는 50여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신행모임인 동시에 불교계가 필요로 하는 관계 법령 개정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개발제한구역에 위치한 전통사찰들이 화장실 등 경내의 낙후된 시설을 쉽게 개보수할 수 있도록 했으며, 한시적 특별법으로 묶여있던 10·27법난 피해자 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의 유효기간을 삭제해 법적 효력을 지속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전통사찰의 건축물에 대한 건축자산을 보호하고 진흥을 위한 지원을 법적으로 보장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도 새롭게 제정했다. 이들 법률의 제·개정에 정각회가 큰 기여를 했다. 그런 점에서 정각회는 불교계의 든든한 버팀목인 셈이다.

정각회가 다시 왕성한 활동을 펼친 것은 지난 17~19대 국회 때였다. 이전까지도 정각회의 위상과 역할은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개신교, 가톨릭 모임과는 대조적이었다. 지지부진하던 정각회를 일신한 인물이 바로 강창일(65) 의원이다. 조계종 총무부장을 지낸 정만 스님의 평가처럼 소박하고 정의감이 투철한 불자로서 불교계를 위해 큰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방송통신위원회의 종교 편파적인 미디어렙 법에 제동을 걸기도 하고, 이명박 정부 당시 대통령을 비롯한 공무원들의 종교중립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한 것도 그였다. 국회에 점등식이 열린 다음날인 4월27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강창일 의원을 만났다.

 
▲별명이 왜 ‘달마’인가?
“머리숱이 적기도 하지만 동글동글한 얼굴에 자주 웃어서 그런가보다.”

▲4월 총선에서 제주 제주시(갑)를 지역구로 4선에 성공했다.
“이번 총선 결과는 정부의 독선과 불통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 성격이 강하다. 우리 제주에도 홀대가 심했다.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인 제주4·3사건 흔들기가 계속되고, 대통령은 4·3국가 추념일에 줄곧 참배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제주도민의 의견을 적극 반영할 수 있는 다선 의원을 선택했던 것 같다.”

▲15~16대 활동이 중단됐던 정각회를 재건한 이유는?
“2005년 5월, 국회에 처음 들어왔을 때 불자의원 모임이 없었다. 선거과정에서 수많은 불자들의 도움을 받았기에 불자들의 권익을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여기저기 불자의원들이 있는지 수소문했다. 그 결과 당시 한나라당 외교통상위원장을 맡고 있는 안홍준 의원이 불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안 의원은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대불련) 부산지부장을 역임할 정도로 불심이 깊었다.”

▲중단된 모임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나와 안홍준 의원은 의기투합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정각회 재건에 나섰다. 당시 이용희 국회행정자치위원장을 회장으로 추대해 정각회를 재탄생시켰다. 이후 정갑윤 의원이 회장을 맡은 데 이어 2014년 7월부터는 내가 회장을 맡아오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불자의원들이 많이 당선됐나?
“60여명쯤 되지 않을까 싶다. 처음에는 불자 의원들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우려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지는 않았다. 부회장을 맡았던 새누리당의 주호영 의원도 공천에서는 탈락됐지만 다행히 당선됐다.”

▲정각회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하나?
“수요일 오전 스님을 모시고 법회를 한다. 국회의원들은 바빠서 많이 참석하지 못하지만 국회 직원들은 꽤 많이 참석한다. 또 1층에 정각선원도 마련했다. 근래 공간을 넓히고 새롭게 단장했다.”

▲정각회가 꼭 필요한 이유는?
“불교는 우리 전통문화의 원류이며, 사찰과 문화재들도 우리의 중요한 자산이다. 이 모든 것을 스님들과 재가불자들이 지키고 전승하고 있다. 국가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교는 법적으로나 예산에서나 차별을 받고 있다. 불교계의 입장을 대변하고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 정각회의 역할이다.”

▲정각회 회원들 간에 소속 정당과 정치적인 성향이 달라서 오는 문제는 없나?
“없다. 모두들 너그럽다. 불자들의 특징인 것 같다.”

▲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을 방문해 지관 스님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기독교계의 정치세력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일본에도 창가학회가 주축이 된 공명당이 활동하고 있다. 다만 조금 배타적인 느낌을 받았다. 불교와 많이 다른 것 같다.”

“국회의원의 종교는 기천불(기독교 천주교 불교)”이라는 얘기가 있다. 항상 표를 의식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창일 의원은 다르다. 그는 늘 불자임을 당당히 내세운다. 일본 도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한 뒤 기독교계 대학에 임용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불자임을 감추지 않았다.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교수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이러한 신념은 불교와의 깊은 인연에서 비롯된다.

강 의원이 불교를 만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다. 자취 집 바로 옆에 관음사 포교당이 들어섰다. 처음 기웃거리다가 한두 번 들르게 되고 나중에는 아예 새벽예불까지 참석하게 됐다. 법당에서 풍겨 나오는 은은한 향냄새가 좋았고, 바람에 딸랑거리는 풍경소리가 마음을 평화롭게 했다. 새벽 4시 법당 종소리가 나면 그는 벌떡 일어나 예불을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뒤 책상 앞에 앉으면 얼마나 집중이 잘되던지, 2~3시간만으로도 하루 공부가 충분했다. 또 중학교 불교학생회인 룸비니 활동을 하면서 사라봉 원명사에서 저명작가이자 스님이었던 고은 선생과 인연이 됐고,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직접 룸비니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청소년 시절에 불교가 좋아지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어려운 불교 경전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다만 ‘일체유심조’라는 말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당시 나는 ‘내가 열심히만 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이해한 면이 있다. 그 말씀 덕분에 ‘몇 시간을 공부하건 그 시간 동안 충실하자’고 생각했고, 나중에 대학 시험 준비할 때도 ‘공식만 알면 된다. 집중만 하면 다 풀 수 있으니까!’ 하는 자신감도 갖게 되었으니 오독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셈이다. 생각해보면 이 또한 부처님 가르침인지도 모르겠다.”

▲한때 출가를 결심한 적도 있다고 들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3선 개헌 반대 시위로 곤욕을 치르고 대학 입학에도 실패해 삶에 지친 적이 있었다.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될까 고민했다. ‘왜 사람은 살아야 하나. 삶의 의미는 무엇이고, 생명의 기원은 무엇인가.’ 어린 시절부터 품고 있던 의문들과 마주하며 인생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사라봉에 있는 보림사를 찾아갔다. 그렇게 절에서 4개월가량 지내며 스님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고는 최종적으로 역사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법정 스님과도 인연이 있었다던데.
“재수를 해서 서울대 사학과에 입학했고 얼마 후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1973년 당시 나는 ROTC 학군단이었다. 그런데 유신독재의 부조리함을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답답한 마음에 법정 스님을 뵈러 봉은사에 가서 스님의 설법을 듣기도 했다. 그 뒤 송광사 수련회에 참석했을 때에도 법정 스님이 우리를 위해 설법을 해주셨다. 송광사에서 참선을 하면서 나는 민중을 위해 살기로 서원을 세웠다. 이후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고 그 이듬해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됐다.”

▲2009년 9월 사법부는 민청학련 관계자들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그렇더라도 당시 고생은 많았을 것 같다.
“경찰에 끌려가 끔찍한 고문을 받았다. 경찰은 있지도 않은 조직도를 그려놓고 대불련 회원들까지 민청학련 사건에 끌어넣으려 했다. 하지만 거짓을 말할 수는 없었다. 후배 전재성(현재 한국빠알리성전협회 회장)까지 나 때문에 곤욕을 치를 때는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고 싶었다.”

▲1970년대 불교운동도 열심히 했던 것으로 안다.
“민청학련 사건 이후 사회에 나와 민중불교운동연합회장을 역임한 고 여익구 선배와 함께 민중불교운동을 하기도 했다. 고은 선생과 황석영 선생도 불교운동에 함께 했었다. 불교가 세간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유신독재가 끝났다. 그러나 신군부의 등장은 민주화를 더욱 요원하도록 했다. 강 의원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도피생활을 해야 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일본 유학을 다녀오고 교수가 되었다. 그는 제주인의 사명감으로 제주 4·3연구소를 만들고 뜻을 같이하는 많은 사람들과 활동했다. 그의 지속적인 노력에 힘입어 1999년 12월 ‘제주 4·3특별법’이 제정됐다. 그 사이 강 의원은 제주4·3사건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어 있었다.

▲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와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을 방문했다.

▲국회의원이 된 이유는?
“1970년대 민주화운동을 하던 선배들의 권유가 있었다. 처음에는 한사코 거절했다. 역사학자로 남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를 연구하고 학생을 가르치고 일도 좋지만 현실 정치에서 세상을 바꾸는 일도 큰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

▲제주4·3뿐만 아니라 종군위안부, 5·18민주항쟁, 세월호 참사 등에 대한 정부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촉구해왔다.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일이 곧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역사의 왜곡을 바로잡음으로써 현실의 왜곡도 바로잡을 수 있다. 과거는 미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정치는 옳음을 주장하면서도 다름을 인정하는 행위’라고 주장한 바 있다.
“정치는 타협이다. 타협은 협잡이 아닌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데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독재와 싸우던 시절 타협은 배신이고 훼절이었다. 그러나 정치는 서로의 생각을 맞춰가는 퍼즐이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모양은 다르지만 다른 생각을 하나로 이어 붙여 민주주의라는 그림을 완성하는 작업이 정치다.”

▲정치하는 동안에 꼭 하고 싶은 일은?
“더불어 함께 잘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현대사회에서 국가의 존재 의미는 약자들을 보호하는 데 있다. 돈이 많거나 권력을 쥔 사람들은 국가의 도움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난하고 아프고 힘없는 사람들은 다르다. 국가가 이들을 적극 보호하고 잘 살 수 있도록 적극 도와야 한다. 이는 21세기 모든 국가들이 추구해야할 공통 과제이기도 하다.”

▲불교사상이 정치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나?
“불교는 대자대비의 중생 구제와 생명 존중의 정신을 바탕에 둔 종교로 인류사회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해왔다. 불교의 정신은 이 시대의 등불과 같다. 불교의 화쟁사상도 정치인들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그런 점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는 것이 한국정치의 선진화에 기여하는 일이다.”

▲훗날 어떤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나?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하는 정치인,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노력했던 정의로운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 불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한국불교가 기복에만 머물러 있다면 문제다. 이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하려 노력해야 한다. 또한 불자들은 독선과 오만이 아닌 너그러움을 갖추고 사회적 약자까지 끌어안으려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불자의 미덕이 아닐까 한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343호 / 2016년 5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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