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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계 실천의 성스러운 첫 걸음을 떼자

기자명 법보신문
  • 사설
  • 입력 2016.05.10 14:50
  • 댓글 0

불기 2560년 부처님오신날에 부쳐

부처님오신날을 찬탄하는 축제가 전국에서 화려하게 펼쳐졌다. 30만 명에 이르는 인파가 몰린 서울 연등축제에는 10만 연등이 밤하늘을 밝혀 이목을 집중 시켰다. 불자들의 정성으로 꾸며진 연등축제가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축제임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올해도 형형색색의 다양한 연등이 선을 보였다. 석가탑과 종을 형상화 한 등부터 동자승과 비파를 든 천인과 사천왕, 그리고 북과, 생황, 해금 등의 악기를 모형으로 한 등도 불을 밝혔다.

연꽃과는 다른 모양의 등이지만 행렬에 나온 10만여개의 등을 일러 우리는 ‘연등’이라고 한다. 모든 등이 자신의 심지를 태워 세상을 밝혔기 때문이다. 세상을 밝혀야 할 건 연등만이 아니다. 세상을 밝히는 주체는 우리여야 한다. 나를 태워 세상을 밝히는 첫 걸음은 오계 실천이다.

남방불교의 상좌부에 전하는 오계에 명시된 ‘지키겠다’는 표현은 ‘굳은 서원’을 의미한다. 따라서 오계 중 첫 번째 계를 직역하면 ‘생명 죽이는 것을 멀리하는 계를 저는 받아 지키겠습니다’이다. 한역 율장에서는 ‘멀리, 또는 지키겠다’는 의미를 불(不)자에 농축시켰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하지 말라’는 금지 의미로 받아들이게 됐다. ‘살생하지 말라’는 불살생계(不殺生戒)가 대표적이다. 일맥상통하는 것이지만 한 번 쯤은 짚어 볼 일이다.

‘내가 지키겠다’는 것과 ‘하지 말라’는 말 속에는 상반된 의미가 깃들어 있다. 전자는 능동적이면서 적극적이고, 후자는 규제 의미가 강해 타율적이다. 실천 의지와 결부시킬 경우 전자는 계율에 대한 의미를 내 스스로 인식한 후 자체 판단에 따라 의지를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반면, 후자는 ‘명(命)’에 따라 수동적 의지를 보인 후 계율에 담긴 의미를 인식해 갈 가능성이 높다. 인간은 자율적이고 능동적일 때 실천의지가 고양된다고 한다. 따라서 오계에 대한 인식을 전환할 필요성이 있다.

법보신문이 ‘불자답게 삽시다’ 캠페인을 제안하며 기존의 오계를 현대인에 맞게 해석해 내놓은 연유도 ‘오계의 인식 전환’에 있다. ‘산 생명 해치지 않기.’ ‘남에게 손해 끼치지 않기’, ‘성폭력·성추행하지 않기.’ ‘욕설과 거짓말 하지 않기’ ‘취하도록 술 마시지 않기.’ 모두 ‘하지 않겠다’는 자발적 의미가 담겨 있다.

교계에 회자되는 말이 있다. “오계를 수지한 사람이 불자이고, 오계를 실천하는 불자가 진정한 불자다.” 인정하기 싫지만 천만 불자 중 오계를 실천하지 않는 불자가 상당수 있음을 반증하는 말이다. 불자의 길을 걷는 첫 걸음이 오계 실천인데 이를 지키려 하지 않으니 다음 단계로의 불자적 생활을 도모하기 어렵다.

특별법회가 아니면 아예 참석할 의지도 갖지 않고, 내 가족에게 법을 전하거나 이웃을 위해 축원 한 번 하지 않는다. 이런 식이면 불자의 삶은 비불자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혹, ‘가슴에 부처님 말씀만 새기고 있으면 된다’는 식의 안이한 생각을 갖고 있다면 당장 버려야 한다. 실천은 외면한 채 경구만 기억하는 건 알음알이일 뿐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도, 이웃에게도 전혀 도움 될 게 없다.

하여, 법보신문사는 오계 실천과 더불어 37가지 실천 사항을 내놓았다. 제안이지만 우리 스스로를 성찰해 보는 것이기도 하다. 합장으로 인사를 나누고 있는가? 재적사찰은 갖고 있는가? 하루 10분이라도 경전을 보거나 명상을 하는가? 환경을 위해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려 노력하고 있는가?

이제 우리 재가자들은 자문해 보아야 한다. 그 동안 청정지계를 승단에게만 요구해 온 건 아닌지. 자신은 변하지 않은 채 타인의 변화만 요구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 ‘불자답게 삽시다’를 처음 제안했을 때 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장 혜국 스님이 전한 말씀이 생생하다. “참된 불자라면 불자가 지녀야 할 계를 지키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합니다. 나아가 불자의 향기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나 하나쯤이야 하지 말고 나 한 사람이라도 불자답게 살겠다고 발원해야 합니다.”

연등축제에서 우리 스스로 연등을 든 건 ‘나를 태워 세상을 밝히려 한’ 서원의 표출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가 청정할 때 세상도 청정해진다는 단순한 사실을 불기 2560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며 오계 실천의 첫 걸음을 성스럽게 떼어 보자.

 [1343호 / 2016년 5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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