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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잘못해도 늘 자비심 잃지 않은 부처님 같은 어머니

기자명 법보신문

[신행수기 당선작] 포교원장상-상병 김진일

▲ 일러스트=강병호 화백

“어머니!”

나에게는 어머니가 부처님이셨다.

중학교 진학 후 음주·흡연 방황
공부는 물론 어떤 구속도 싫어

약한 친구 괴롭힌 급우 폭행때
용서를 구하고 변상한 어머니
내겐 “의협심 강한 아들” 용기

어머니의 자비와 큰 사랑 앞에
“꼭 행복하게 해 드릴 것” 다짐

대학·군 복무 초기 부적응 때도
좌선하고 기도하며 지혜로 극복

일상에서 부처님 가르침 새기며
살게 해주신 어머니께 늘 감사

22년의 짧은 생을 살아오면서 항상 내 곁에는 부처님이 계셨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기억하는 유년시절, 외동아들이었던 나는 그렇게 불심이 깊은 아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석가탄신일 때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들어서던 일주문 사천왕상의 모습, 불공을 드리시는 어머니를 기다리며 흙먼지 일으키며 뛰어놀던 법당 앞 아이들 등이 이제야 조금씩 떠오른다. 어머니 말씀처럼 유년시절 나는 착하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 아들이었다. 그러나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어머니를 힘들고 가슴 아프게 하는 못난 자식이 되어버렸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지금의 나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당시 나는 그냥 모든 것을 내 맘대로 하고 싶어 했고 누구로부터 구속되는 것이 너무도 싫었고 모든 것이 귀찮았다. 이래저래 말썽만 부리던 나를 단 한 번도 미워하거나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으시며 “공부해라”는 말 대신에 어머니께서는 남에게 해만 끼치지 말고 반듯하게만 자라길 간절히 원하셨다. 공부하길 싫어하는 내게 공부도 잘하면 좋겠지만 부모님은 “네가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며 공부에 크게 욕심을 내지 않으시면서 강조하신 것은 “사람으로 현세에 태어나서 ‘죄’란 것은 절대로 지으면 안 된다”는 평범한 가르침이었다. “나쁜 짓을 짓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길로 들어서게 된다”며 바른 사람으로만 살아주길 당부하고 또 당부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머니 아버지의 직업이 죄지은 사람들을 교화해야 하는 교도관이다 보니 부처님 말씀처럼 정도의 길에서 공부보다는 바른 사람으로만 커주길 그렇게 간절히 원하신 것 같다. 다른 부모님들이 그렇게 욕심내시며 외치시는 ‘공부’란 말 대신 “바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그렇게 강조하셨나 보다. 그렇게 나는 바른 사람이 되기는커녕 점점 더 사고만 치는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항상 사고만 쳤던 나였지만 이상하게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랑하는 어머니! 저는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 급우 중에서 강하고 악한 친구가 작고 약한 친구를 때리며 괴롭히길래 너무도 화가 나 직접 나서서 말리려다가 공격하는 그 친구를 때려 넘어트렸습니다. 그러는 바람에 그 친구의 바지가 시멘트에 긁혀 흠집이 났습니다. 그것이 화근이 되어 말썽이 생겼고 그 친구의 부모님이 사과와 변상을 요구하여 어머니께서 학교에 불려 오시기도 했습니다.”

그랬다. 선생님께 고개 숙여 용서를 빌고 그 친구의 어머니께도 용서를 먼저 구하신 다음 어머니는 나에게 “이 녀석이 싸움이나 하고 다니느냐”는 질책의 말씀 대신 “우리 아들이 의협심이 강하구나”라고 하셨다. 눈물이 났다. 어머니는 “정의로운 행동이니 너무 기죽지 말라”고 하시면서 새 교복을 변상해 주셨다.

어른들이 피우던 담배와 술을 접해보고 싶어서 부모님 몰래 집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운 뒤 담배꽁초를 아파트 베란다에 버린 것이 발각되어 한 번도 때리지 않으시던 아버지가 내 뺨을 때리며 크게 야단치신 적도 있었다. 아버님께 잘못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저를 보면서 어머니께서는 “우리 아들이 자신의 잘못을 숨기지 않고 누굴 탓하지 않고 진실되게 인정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아들이구나”, 그렇게 말씀해 주셨다.

그 사건이 있은 후 어머니는 집안에 부처님 사진 한 장 부착해 두시고 “우리 집이 조그마한 법당”이라며 수시로 기도하시고 늘 독경CD를 틀어 집안에 부처님의 기운이 들게 하셨다. 부처님의 그 기운을 느끼고 그 기운을 의지하시며 아들의 방황을 원망한번 않으신 채 기도하고 또 기도하시던 어머니! 어머니는 늘 그러하셨다. 몇 년간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더 이상 나쁜 아들이 될 수가 없다는 다짐이 생겼다. “이 세상에 하나뿐인 우리 어머니 자식이 왜 이러고만 있는지? 내 신분이 뭐지? 내가 뭘 해야 되지?”, 스스로에게 숱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비몽사몽 살던 삶에서 벗어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매사 말썽만 부리던 나에게 단 한 번의 질책도 않으신 채 두 손 모아 합장하시고 “부처님! 우리 동자 부처님!”하시면서 눈물 글썽이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나 성스럽게 느껴졌다. “갑자기 내가 왜 이러지”라고 나에게 물으면서 스스로 눈을 떴다. 내가 학생이란 것을, 너무나 늦은 고2 겨울방학의 일이다.

어머니께 웃으면서 여쭈었다.

“어머니 제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면 좋을까요?”

어머니도 같이 웃으시면서 “네가 제일 잘하고 좋아하는 것이 운동이니까 체육 선생님이 되면 어떨까?”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는 그 순간, 바로 생각한 것이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공부하는 법을 모르니 1등 우등생을 만나 조언을 구해야 겠다 싶어 어머니께 말씀드려 용돈을 탔다. 친구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사주면서 내신 성적이 최저등급인 나의 상황을 고백했다. 공부를 단시간에 잘 할 수 있는 방법과 나의 특기를 접목하여 목적지를 설정하고 가장 좋은 지름길을 찾아가는 방법을 찾았다. 그런 과정을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우리 동자 부처님! 우리 동자 부처님이 이제 앞으로 큰 부처님이 되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며 눈물을 글썽이셨다. 그때 어머니의 하해와 같은 자비와 사랑 앞에 나는 굳게 맹세했다. “우리 어머니를 가장 기쁘고 가장 행복하게, 꼭 그렇게 해드리겠습니다.”라고.

그렇게 다짐하며 내 몸처럼 소중하게 갖고 놀던 휴대폰을 바로 정지하고 여자 친구와의 연락과 만남도 줄이고 오로지 죽어라 공부만 했다. 그런 나를 보시면서 어머니는 건강에 이상이 올까봐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타이르셨다.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자게 하려고 애쓰셨다. 직장생활로 힘드시면서도 항상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던 모습은 공부를 마치고 새벽녘 집에 들어오면 거실의 작은 법당에 부처님이 빙그레 웃으시면서 반갑게 맞아주는 것만 같았다.

방에서 주무시는 부모님이 깨지 않도록 “부처님 저 학교 마치고 잘 다녀왔습니다”라며 인사드리고 새우잠 자고 일어나서 학교 갈 때도 “부처님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나도 모르게 매일 마음속으로 염원했다. 그런 습관이 이제는 완전히 자리를 잡아버렸는지 어느 날 입 밖으로까지 부처님을 부르고 부처님께 의지하면서 부처님과 함께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크게 알지는 못하였다. 나는 어머니의 기도 덕분인지 부처님의 가피를 입고 또 입었다. 늘 밤을 새워가며 공부를 해온 나는 겨우 일년 만에 대학교 입시에서 사범대 두 곳에 모두 장학생으로 합격했던 것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막상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니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체육교육과에 입학하게 된 나는 고작 나보다 몇 년 일찍 입학했을 뿐인 선배들의 군기잡기와 텃세에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늘 간섭받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자랐던 나에게 그런 억압은 너무나 힘들었다. 그리고 매우 혼란스러웠다. “체육교사가 되기 위해 왔는데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하지”라고 한숨을 쉬면서 홀로 복잡한 마음을 추스르고 있을 때 문득 부처님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모든 일에 실패나 안 좋은 일은 없다. 우주는 자비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이따금 “아! 지금 이 힘든 일도 내 업보나 그런 것이 아니라 모두가 나를 성숙하도록 만들어주는 과정일 것”이라 생각하면서 그때부터 오히려 내가 먼저 다가가 인사했다. 그렇게 하니 모든 것이 변했다. 이기적이기만 했던 대학 친구들과도 사이좋게 잘 지낼 수 있게 되었다.

학교에 적응이 다 되었을 즈음엔 교수님의 추천으로 다시 한 번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그 돈으로 어머니 가방을 사드렸더니 직장 나가실 때마다  매일매일 들고 다니시면서 무척 좋아하시곤 했다. 방학 때는 야간에 서빙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운전면허도 땄다. 제 돈으로 운전면허를 따 놓은 것이 지금 군 생활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나는 현재 운전병으로 군복무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운전병이 아니었던 나는 운전병을 새로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파견을 가 군 면허를 따고 돌아왔다. 운전을 해 본 적은 있지만 가끔 할 뿐이었고 또 군에 오기 전부터는 거의 해보지 않았던 나는 운전 실력이 많이 미숙했다. 그래서 파견을 간 순간부터 후회를 했고 “역시 쉬운 일은 없는 거구나”라고 생각하며 다시 자대로 돌아왔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기에 자신이 없었지만 내 선택에 의해 주어진 상황이니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상황이 너무나 답답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중대를 전출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이미 선후임 동기들과 친할 만큼 친해진 상태였는데 운전병이 되었단 이유로 다른 중대로 옮기게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던 것이다. 가뜩이나 잘 하지도 못하는 데 새 환경에 가서 적응까지 해야 한다니 너무나 힘들었다.

특히 생명안전에 신경 써야 하는 운전병이었기에 너무나 부담스러웠고 중대까지 전출을 가야한다니 마음의 짐이 더욱더 커져 너무 힘들던 나는 혼자만의 선(禪) 수련법을 통하여 자주자주 고요히 마음을 모아 길게 숨을 내쉬면서 명상에 잠겨 한동안 좌선하고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답답한 마음과 그렇게 움츠려있던 가슴이 펴지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겪고 있는 지금 모든 일들은 다 내가 잘되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마음을 고쳐먹으니 모든 것을 바라보는 마음가짐과 시선도 달라져 다시 열심히 임무에 충실히 임하기 시작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어느 날이었다. 내가 운행이 없는 날이었는데 선임이 내가 운전하는 차량과 다른 트럭을 한번 바꾸어 몰아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선임의 제안으로 다른 차를 몰다가 언덕길에서 브레이크를 제대로 밟지 않아 차가 뒤로 밀리면서 뒤에 대기 중이던 차량에 부딪혔다. 그로 인해 차량을 들이 박았다. 순간 너무 놀라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고 앞이 캄캄하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어 눈을 떠보니 차량이 많이 파손되어 있었다. 다행히 사람은 다치지 않았다. 잘 되려는 일에는 방해가 많다는 말을 떠올리면서 다시 한 번 해이해지고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어 안전에 유의하라는 경각심으로 알고 사고를 보고한 후 며칠이 지난 뒤 처분을 받았다. 그런데 그렇게 큰 처분을 받지 않아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최소한의 사고도 예방하고자 더 많이 노력하게 되었고 현재는 아무 문제없이 운전병 임무수행을 하고 있다. 운전 실력도 꽤 많이 늘어 이제는 별 걱정이 없고 중대도 옮기게 되었지만 걱정했던 것 보다 큰 일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이 전에 있던 중대원들만큼 다들 잘 대해주시고 따뜻했다.

나는 항상 염원한다. 전역할 때까지 차분히 안전에 유의하며 아무런 사고 없이 열심히 군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기를 부처님과 어머님께 다짐한다. 그리고 기도한다. 어머니의 가르침이 곧 부처님의 가르침이 되게 해주신 어머니께 거듭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1343호 / 2016년 5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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