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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기도 깊어지니 자폐증 아들이 바로 ‘재승이 부처님’

기자명 법보신문

[신행수기 당선작] 법보신문 사장상-이금미

▲ 일러스트=강병호 화백

비릿한 담갈색의 잎들이 순식간에 초록으로 변했다. 하루가 천금같은 사월의 산은 박하사탕을 깨문 듯 환하다. 사월의 눈부신 햇살 속에, 속삭이는 봄비 속에 서면 언제나 내가 생명을 가진 것에 감사했다. 나는 행복을 사월처럼 찬란하고 특별한 사건들의 연속이라고 생각했다. 돌아보니 지난 겨울의 극심한 추위가 없었다면 사월은 이런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았으리라. 생과 사, 밤과 낮, 고통과 즐거움, 병마와 건강은 모두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음을 이제야 알겠다.

네 살 때 자폐증 진단받은 ‘자식’
특수고 2년땐 갇힌 야수처럼 돌변
밤낮으로 울부짖고 폭력 드러내

3년간 매일같이 지장기도 하며
아이가 점차로 안정·순해지고
음식도 가리지 않고 잘 먹게 돼

주변 사람들은 측은하게 보지만
우리에겐 숨어 피는 예쁜 들꽃
어디든 함께 다닐 수 있어 감사

발음 안 되는 시련도 생겼으나
금강경 공부하면서 전화위복
감사하고 비우는 것이 기도

살아오면서 제일 감당하기 힘든 시련은 ‘자식’이었다.

우리는 부부교사였다. 1987년에 결혼하고 다음 해 아들이 태어났다. 아이가 네 살 때 이화대학병원에서 자폐증 진단을 받았다. 불심(佛心)이 깊다고 생각했지만 자식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감당하기 힘든 무거운 짐을 지고 컴컴한 동굴 속을 죽을 때까지 걸어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인가 하는 생각에 전율했다. 특수고등학교 2학년에 접어들자 그렇게 차분하던 아이가 우리에 갇힌 야수와 같이 사나워졌다. 아이에게 사춘기가 찾아온 것이다. 낮이고 밤이고 울부짖으며 잠도 자지 않고 아파트 벽이며 거울, 유리를 닥치는 대로 때려 부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한밤 중에도 아이 손을 붙잡고 뒷산을 오르내렸다. 그때 나는 지옥도를 생생히 보았다. 나는 아이 손을 붙잡고 이제 그만 아이와 함께 죽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기도했다. 그러나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는 무간지옥이었다. 하루의 삶이 백년이나 된 듯 한없이 길었다.

2004년 여름은 우리 부부에게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절을 오랫동안 하신 보살님의 권유로 100일간 ‘지장경’ 독송과 지장보살 염불, 지장보살예찬의 158배 절을 하게 되었다. 지장기도 100일을 하자 기도는 하루도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일상이 되었다. 100일 기도에 이어서 3년간 지장기도를 계속하면서 대구대 특수교육대학원을 다녔다. 아이가 고등부를 졸업하면 교직을 그만두고 장애인복지관을 지어서 직접 운영해보리라고 작심했다.

지장기도 3년째, 대학원 공부를 마쳤고 김천에 시립장애인복지관이 완공되었다. 몇 군데 복지시설도 연이어 문을 열었다. 아이도, 우리도 많이 변했다. 아이는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밥을 잘 먹지 않았는데 점차로 순해지고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우리의 기도는 단순하다.

“재승이가 건강하고 평안하게 해주세요.”

비록 우리 아이가 보통의 아이와는 많이 다르지만 밥 잘 먹고 건강하고 밤에 잠 잘 자고 다리가 튼튼해서 어디든 함께 다닐 수 있는 것에 한없이 감사했다. 우리 가족은 세 개의 발이 달린 하나의 솥이자, 운명의 트라이앵글이다. 주말과 휴일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운동과 산행을 하고 시간이 넉넉하면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한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에서 엮은 ‘답사여행의 길잡이 1~15’를 들고 전국을 누비면서 수많은 문화재를 보았다. 책에 실린 답사지는 가지 않은 곳이 없고 좋다는 곳은 기본적으로 네댓 번씩 보고 또 보았다. 국보급이나 보물급 문화재는 듬직한 힘과 격조 높은 아름다움이 있다.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감성이 순화되면서 치유되고 행복해진다. 우리 가족이 행복하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치뜨면서 우리를 쳐다본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남들은 우리 아이를 장애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측은한 눈길을 보내지만 우리 눈에는 더 이상 정상인 장애인이라는 분별심이 없다. 우리 아이는 보통의 아이와는 다른 심심산골에 피어있는 숨어 피는 예쁜 들꽃이다.

아이와 함께 산행하거나 여행을 하면서 들꽃을 많이 보았고 그 느낌을 글로 적었다. 가슴 속에서 발효되는 숱한 생각들이 글을 통해서 실타래처럼 풀어지는 것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얻는 또 다른 행복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위로가 되고 아주 기쁜 일이다. 들꽃은 작고 소박하다. 잡초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저마다의 독특한 모양과 빛깔과 향기를 가지고 있다. 우리 아이를 들꽃에 비유한다면 도르르 말린 꽃봉오리가 서서히 펴지면서 열리는 작디작은 경이로운 요정, 하늘빛 ‘꽃마리’라고 할까? 꽃마리는 들꽃 중에서도 아주 작은 들꽃으로 무릎을 낮추어서 가만히 보지 않으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꽃이다.

시인 나태주는 우리 아이를 위해 ‘풀꽃’이라는 시를 지은 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뽀얀 얼굴, 짙은 눈썹, 훤칠한 키, 웃으면 온 세상이 환해지는 아이의 미소에 우리는 감탄사를 연발한다. 우리는 집에서 “재승이 부처님!”이라고 부른다. 우리 가족이 얼마나 행복한지 다른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나 컴컴했던 세상이 이런 대명천지로 변할 줄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5년 전 내 몸에 빨간 경고등이 켜졌다. 입술 근처 근육이 심하게 굳은 것이다. 모음은 말하기 편한데 자음이 들어가는 말은 발음이 잘 안되고 자주 혀를 깨문다. 말을 하려면 위아래 입술이 자석에 붙어버리듯 짝 들어붙어 입이 벌어지지 않는다. 이런 증상은 2011년도 4월에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라일락 피어나는 눈부신 사월, 여중에서 과학의 달 행사 이후에 격심한 몸살이 나를 덮쳤다. 100조 개의 세포 하나하나가 미증유의 통증으로 일제히 비명을 지르는 듯 했다. 심한 몸살을 겪은 후 대부분의 기능은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말하기만은 예외였다. 말하려면 얼굴 근육이 잘 움직이지 않아서 자주 입술과 혀를 깨물었으며 말을 하고 나면 몹시 피곤했다. 불면증이 이어졌고 심장도 부정맥으로 세차게 뛰었다. 여러 병원과 한의원을 전전했지만 증세는 호전되는 듯하다가 악화되기를 반복했다.

처음 간 병원에서는 체내 마그네슘 결핍이라면서 영양제를 처방해 줬다. 다른 병원에서는 혈액순환 곤란, 스트레스 과다, 신경 불안, 소뇌 이상 초기 증세, 근긴장증, 보톡스 주입, 기혈 순환의 어려움 등으로 나의 병증을 진단했다. 지금까지 4년 동안 좋다는 전국의 병한의원을 찾아서 치료를 하고 나름대로 기도도 열심히 했지만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지 못했다. 요즘 다시 얼굴 근육이 심하게 굳어서 동네 한의원을 찾았다. 

원장님은 나를 보더니, “조증이에요. 강박관념이지요. 태어나기는 소양체질로 태어났는데 살기는 소음으로 살아서 스트레스가 누적된 겁니다. 남들이 한두 가지 생각하면 사모님은 열 가지를 생각해요, 천천히 생각하고 행동하세요, 침도 아무렇게나 좀 뱉고 욕도 좀 하고 남들에게 피해도 좀 주고 남 눈치 보지 말고 푹 쉬세요, 정신적인 것은 되도록 하지 말고 육체적인 일을 많이 해서 뭉친 안면 근육을 풀어야 해요, 책도 보지 말고, 잠은 많이 자고 먹고 싶은 것 먹고 게으르게 살아요, 얼굴 근육이 굳었으니 입은 항상 벌리고 윙크 연습과 휘파람부는 연습을 해요.”

또 평소에 친한 정신과 의사는 대수롭지 않게 증상을 설명한다.

“안면신경에 감기 같은 것이 온 거예요, 감기는 항상 잠복하고 있듯이 몸이 힘들면 다시 얼굴 근육이 굳어지는 거예요, 약을 먹고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 선생님의 얼굴 근육이 다른 분에 비해 약한 거지요, 몸이 힘들면 제일 먼저 얼굴 쪽에서 반응이 옵니다.”

말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을까? 꽃이나 나무나 곤충처럼 향기나 페로몬으로 의사소통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역설적이게도 이 말하기의 어려움 덕분에 좋은 점이 많다.  

먼저 내 또래에서는 비교적 일찍 명예퇴직을 한 것이다. 이것은 지금 생각해도 엄청난 행운이다. 둘째는 명퇴 첫 해, ‘금강경’ 공부에 집중하여 32분을 석 달 만에 암송하여 그 해 가을, 금강경강송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것이다. 셋째, 직지사 근처 전망 좋은 곳에 건강하고 예쁜 집을 지었다.

이 집은 볏짚으로 지은 ‘strawbale house’라는 집으로, 친환경적이며 단열도 좋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이라는 나의 ‘로망’대로 나무를 심고 들꽃단지를 만들었다. 넷째, 2014년도에 직지사불전한문승가대학원에 1기 청강생으로 입학해서 스님들과 나란히 공부를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말로는 형용할 길 없는 최고최선의 행복이다. 세상의 공부에서 오는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 상상 그 이상의 법열이다. 길을 가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감사의 눈물이 흐른다. 다섯째, 말수가 줄고 남의 말을 경청하며 남의 험담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말수가 적으니 쓸데없는 생각이 줄고 마음도 고요해진다. 덤으로 부부싸움도 사라지고, 남편에게 특별한 얼굴 마사지를 받는다.

여섯째, 이점이 하나 더 있다. 공자님 말씀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선행기언후종지(先行其言後從之), 먼저 말할 것을 실행하고 그 뒤에 말이 행동을 따르게 하라. 눌어언이민어행(訥於言而敏於行), 말은 어눌하게 행동은 민첩하게 하라”

요즘은 서울 한의원을 격주에 한 번씩 다니면서 진료 상담을 40분 이상 받는다. 식사량을 반 이상 줄이고 처방해준 한약을 먹는다. 이제야 관세음보살님이 나의 손을 잡아주듯 신뢰감이 가는 좋은 한의사님을 만난 것 같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얼마나 가슴 졸이며 안절부절 했는지 살아온 여정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가만히 자신을 토닥이며 이렇게 말해준다.

“그동안 애 많이 썼어. 덕분에 여기까지 왔네. 그래 이제 편하게 쉬어. 에너지가 충전될 때까지 되도록 말을 삼가고 기도할거야.”

나는 기도를 구하는 것에 대한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바라는 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어린애처럼 달라고 보채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이 미망을 깨고 깨달음의 문을 여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이제 나의 기도는 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고 비우는 것이다. 깨끗한 거울처럼, 잔잔한 바다처럼, 허공처럼 마음을 텅 비워서 어떤 인연이 오든 최고의 손님을 대하듯, 스승님을 대하듯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1343호 / 2016년 5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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