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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인간세상과 인연의 중요함-하

“불광산 기와 한장, 밥 한그릇은 남들이 보시한 공덕입니다”

▲ 친목회에 참여한 불광산의 불자들.대만 불광산 제공


"빈승 개인의 밥 한 그릇 죽 한 그릇은 모두다 남들이 준 인연으로 허기를 채울 밥이 저에게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빈승의 봄여름가을겨울에 입는 옷가지도 비록 몇 벌로 갈아입고 있지만 매번 입을 때마다 모든 수많은 인연을 마음 가득하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죽 한 그릇, 밥 한 공기 힘들게 온 것임을 생각해야 하고 실 한 가닥 한 가닥이 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항상 생각하라”는 말처럼 수많은 인연이 없었다면 어찌 제가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

 

30년 전 어느 날, 타이베이 보문사에서 머물고 있을 때 한 노부인이 10위안을 들고 와서는 “이 돈은 스님께 드리는 것이지 불광산에 주는 게 아니에요”라고 단호하게 말하면서 굳이 제 두루마기 주머니에 집어 넣었습니다. 저에게 이런 좋은 인연을 만들어준 그 분에게 감사하지만 빈승 개인 일체가 다 불광산 것이니 어찌 개인적으로 이 후의를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불광산에서는 직위가 높은 사람은 돈을 관리할 수 없고 돈을 관리하는 사람은 직급이 낮은 소임자로 돈과 권한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돈을 사중에 내놓아서 사중에서 진행하는 건설용도로 쓰도록 하였습니다. 이로써 본래 인연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고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라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우리가 대중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한번은 홍콩공항에서 환승을 해야 하는데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해서 무료하고 따분해 면세점 근처 문구점에서 물건 하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는 매우 쓸모가 있겠다고 느껴져서 사고 싶었지만 가진 돈이 한 푼도 없었습니다. 그때 멀리서 걸어오는 자혜 스님이 보여서 “홍콩 돈 50달러만 빌려줘”라고 했더니 “무엇에 쓰려고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사고 싶은 문구를 가리켰더니 대뜸 한다는 소리가 “아! 이런 거 우리 대만에 많아요”라고 잘라 말하더니 아마도 급한 일이 있었던지 훌쩍 가버렸습니다.

저는 망연자실하였고 돈을 싫어라 해도 불편한 점이 있다고 느꼈고 이런 냉대를 받지 않고자 그 이후로 몸에 약간의 돈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빈승의 본래 성격이 이러하여 나이가 90이 되었어도 돈을 저금하지 않고 돈을 좋아하지도 않는 것은 일찍부터 길러진 습관입니다.

빈승에게 돈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제가 40세가 되었을 때 불광산을 건설하려고 했는데 애초에 사찰도량을 짓지 않기로 뜻을 세운 제가 젊은 청년들과 학인들을 위해 총림학원을 지어 그들이 안정된 환경에서 공부하도록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 정말 신기하게도 제가 이러한 발심을 한 이후로 많은 인연들이 집중적으로 모여들어 불광산의 이 척박한 산비탈을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사찰건축을 발심하니 시방의 자원이 서로 도와줍니다. 불광산 건축 초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물이 있어야 했습니다. 구릉 같은 야산 어디에 물이 있겠습니까? 전혀 안면이 없던 가의에 사는 오대해(吳大海) 선생께서 “고병계 하천 옆 우물의 지하수를 뽑아 우리가 쓸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분이 저희에게 주신 인연에 감사하고 그분과의 인연도 감사해서 그분의 성함을 따 물탱크에 ‘대해의 물’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공사에 필요한 시멘트가 필요한 저에게, 그 당시는 시멘트 가격도 아주 비쌌는데 타이난 통일기업 오수제(吳修齊) 선생이 “저희 회사 시멘트를 쓰시도록 제공해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건물이 다 지어졌지만 페인트를 살 돈이 없었는데 가오슝의 유명한 무지개표 페인트 장운망작(張雲罔雀)이 “앞으로 필요하신 만큼 전부 무료로 제공해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남풍강철회사 반효예(潘孝銳)는 저에게 도장을 한 개 주면서 자신이 보증인이 될 테니 이 도장을 갖고 은행에 가면 돈을 줄 거라 했지만 몇 년간 저한테 보관되어 있던 도장을 저는 한 번도 쓴 적이 없습니다. 좋은 인연이 있다고 하지만 저도 함부로 남용할 수 없었습니다.

빈승이 나중에 총림학원을 세우고 국내외에 여러 과정의 불학원을 세우면서 학생들과 선생님 수백 명의 의식주와 이동에 드는 경비만도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지만 이것도 많은 인연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빈승이 설립한 대학교 다섯 곳과 중고등학교, 초등학교도 저의 능력의 한계로 백만명의 학교불사 동참 인연들이 함께 이루어낸 것입니다. 심지어 문화와 자선 사업에서도 저의 한정된 능력으로 인해 모두 다 인연으로서 성취해 낸 것입니다.

이렇듯 빈승은 궁색하지 않게 마치 마음을 먹은 대로 일이 이루어지듯이 하고자 하는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심지어는 계곡과 도랑으로 이루어진 쓸모없는 땅의 불광산에 가진 것이라고는 경운기 밖에 없는 일반인이 “모래 100수레를 실어다 주겠다”고 찾아오고 “모래 200대를 실어주겠다”는 사람도 찾아왔습니다. 50년 전 어떻게 환경보호라는 생각을 했었던지 저는 나무를 심고 배수시설을 하여 토양유실을 막고 산비탈 보호처치를 하면서 울퉁불퉁 평지가 없던 땅을 돌보아왔습니다.

과거에 대만 산림을 관할하던 한 국장이 자기 집안일을 제가 도와준 인연에 고마움을 느끼고 업무상의 편리함을 계기로 저에게 “국유지를 빌려서 절을 크게 지어 대중들이 참배를 하게 하자”고 건의를 해주었습니다. 나중에 부서 직원을 보내 저를 데리고 현장을 둘러보게 하였는데 마치 현재 타이베이 영민총의원(榮民總醫院)이나 양명산 중산루(中山樓), 신북시(新北市) 대만은행숙소 등과 같은 곳으로 담당부처로부터 임대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많은 곳을 둘러본 저는 대부분이 산림이라서 도끼나 톱을 사서 벌목할 돈도 없었기에 그분이 주신 좋은 인연을 거절하였습니다.

몇 년이 흐른 후 불광산을 창건하자 그 사람이 달려와 “우리 부처에서 반듯한 땅에서 절을 짓도록 임대해 주겠다고 할 때는 싫다”고 하더니 “스님이 이처럼 못생긴 땅에서 절을 지으려면 얼마나 돈을 퍼부어야 하는지 아느냐?”고 하면서 화를 냈습니다. 빈승은 이에 “국장님, 저에게 좋은 인연을 주시려는 호의는 감사하지만 그 땅들은 다 국유지인데 제가 무슨 능력으로 쓸 수 있겠습니까? 설사 임대한다고 하더라도 임대료를 낼 능력이 안 됩니다. 이 땅이 못생겼다고 하셨지만 우리가 마음만 있다면 앞으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천천히 짓다 보면 쓸 수 있게 되지 않겠습니까? 정토도 발심해서 건설해야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그분은 할 수 없이 “그렇게 하세요. 그러면 스님은 절을 지으시고 나무는 제가 보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불광산은 지금껏 한 조각의 땅도 국유지가 없고 토지분쟁이 없습니다. 나중에 불광산에는 그분께서 기증하신 인도 자단목과 마호가니(桃花心木) 나무와 오수제 선생이 기증한 보리수 등이 심겨져 녹음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불광산이 점차 발전하면서 많은 인연있는 사람들이 마치 천수천안관세음보살처럼 수많은 인연으로 도움을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북미주에 사는 장요굉영(張姚宏影), 뢰유정(賴維正), 이미수(李美秀), 진정남(陳正男), 왕가배(王家培)와 호주의 유상경(游象卿), 류초명(劉招明)과 아시아의 엄관호(嚴寬祜), 여성청(余聲清), 채호접(蔡蝴蝶), 진영년(陳永年), 호양신혜(胡楊新慧), 채기서(蔡其瑞)와 진증사흔(陳曾四欣), 강진희미(江陳喜美), 홍강오위(洪江烏為), 백청동(白清棟), 진림운교(陳林雲嬌), 전숙분(戰淑芬) 등등 이들은 수시로 소식을 듣고 달려오는데 수십 년을 하루같이 변함이 없습니다.

또한 오백웅(吳伯雄), 조려운(趙麗雲), 반유강(潘維剛), 조중식(曹仲植), 고진보(辜振甫), 여진월영(余陳月瑛), 양조상(楊朝祥), 임총명(林聰明), 자송림(柴松林), 전우림(田雨霖), 전청(田青), 유장락(劉長樂), 장정지(張靜之) 등은 각각의 영역에서 인간불교의 교육과 문화, 신행, 자선 등 각 방면으로 많은 도움 인연을 주었습니다. 그 외에도 좋은 인연의 인사들이 아직 셀 수 없이 많고 심지어는 2대 3대에 걸쳐 이어 달리기 식으로 호법의 신앙을 이어나가고 있는데 빈승이 실로 일일이 다 상세히 말할 수 없으니 마음의 향을 피워 깊은 축복의 뜻을 전할 뿐입니다.

빈승 개인의 밥 한 그릇 죽 한 그릇은 모두다 남들이 준 인연으로 허기를 채울 밥이 저에게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빈승의 봄여름가을겨울에 입는 옷가지도 비록 몇 벌로 갈아입고 있지만 매번 입을 때마다 모든 수많은 인연을 마음 가득하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죽 한 그릇, 밥 한 공기 힘들게 온 것임을 생각해야 하고 실 한 가닥 한 가닥이 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항상 생각하라(一粥一飯 當思來處不易 一絲一縷,恆念物力維艱)”는 말처럼 수많은 인연이 없었다면 어찌 제가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많은 인연이 없었다면 어찌 오늘의 불광산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불광산을 도와주신 분을 저희는 순조로운 인연으로 보고 있으며 우리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우리는 역증상연(逆增上緣 : 어렵게 하므로 더욱 분발하게 하는 인연, 역자 주)으로 보고 있습니다. 좋은 인연이든 혹은 나쁜 인연이든 우리에게는 언제나 도움이 되고 격려가 되며 이러한 인연이 모두 우리에게 힘이 됩니다. 우리가 인연 속에서 우주와 인간의 관계를 알고 지혜와 명쾌한 이치와 분석을 갖춘다면 어리석거나 불의에 빠지지 않을 것이며 인연을 모르지도 않을 것입니다.

빈승은 이제 자신이 가난하지도 가난하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불광산의 모든 것이 다 시방의 모든 인연으로부터 온 것으로 제 개인의 소유가 아니기에 저는 여전이 간단하고 소박하게 없는 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비록 빈궁해서 가진 것이 없는 진정한 ‘빈승’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실제로 저에게는 인간세상의 인연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빈승은 인연을 갖고 있다면 바로 진리를 갖고 있는 것이며 진리를 갖고 있다면 곧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것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빈승은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려고 합니다. 당신들은 돈만 보지 말고 인연을 보아야 합니다.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1344호 / 2016년 5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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