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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옛 스승을 추억하며

기자명 이미령

길 묻는 청년에게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 일러스트=강병호

스님, 안녕하세요.

어제는 강의 휴식 시간에 어떤 분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이 선생님 은사이신 고익진 교수님의 책을 구해서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분, 참 아까운 연세에 세상을 떠나셨더군요. 54세에….”

54세 입적한 故 고익진 선생
젊은이들의 이야기 들어주며
생각 기회 열어준 스승 떠올라
그 나이 접어든 자신 돌아보며
안일한 기성세대된 건 아닌지

우리 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뒤로 어느 때나 아쉽고 마음 아프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오전, 이 말을 듣는 순간에는 쿵 하고 뭔가가 저를 강하게 때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종일 무엇이 나를 그리 아프게 때렸는지를 생각하다 알아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54세라는, 선생님께서 입적하셨을 당시의 연세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불교가 뭔지도 모를 때 그분을 뵈었지요. 그저 인생이 혼란스럽고 ‘나’라는 게 뭔지 알 수가 없어 헤매고 다닐 때 “나와 같이 공부하지 않으련?”하고 먼저 제안해주신 분이 선생님이셨습니다. 제가 스무 살 때의 일입니다.

그리고 나서 ‘아함경’에 근거해서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공부를 시작했지요. 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내가 얼마나 귀한 공부를 하고 있는지….

선생님께서 병고를 견디다 못해 세상을 떠나셨을 때 저는 여전히 20대였습니다. 그리고 50대로 쑥 들어와 버린 지금, 어제 아침에 알 수 없는 충격을 받고 그 이유를 알아차린 뒤 새삼스레 놀라고 만 것입니다.

‘아, 그렇구나. 우리 선생님은 지금의 내 나이에 삶의 마지막을 지나고 계셨구나.’

그래서 어제는 종일 선생님을 마음에 담고 지냈었지요.

그런데 가만 생각하다 선생님에게 법을 배우겠다고 찾아온 사람들이 대체로 20대 청년들이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그 시절, 각계각층의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선생님을 찾아왔지만, 참 오랫동안 선생님 곁에 머물면서 공부를 이어나간 사람들은 20대 청년들이었습니다.

학업과 취업과 군입대와 연애를 한꺼번에 해결해야 하는 청춘들이 선생님에게 와서 법을 구했다는 사실이, 당시에는 전혀 의식도 하지 못했거늘, 지금 새삼스럽습니다. 선생님은 결코 그들에게 달콤하고 평온한 위안을 안겨주지 않았습니다. 가슴에 새겨둘 근사한 메시지를 던지지도 않았고 주먹을 불끈 쥐며 파이팅을 외치지도 않았습니다.

잘 생각해보자.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라.
네 입으로 네 생각을 한 번 말해보아라.
정말 넌 그렇게 생각하는가?
혹시 네 생각이 함부로 비약하지는 않았는가?

선생님에게서 들을 수 있는 말은 이런 것들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떠나가기도 했지만 또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사유를 진지하게 풀어놓고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선생님은 취업을 걱정하는 청년들에게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만두가게를 하면 괜찮을 거 같구나.”

얼핏 들으면 황당하기까지 하지만 만두 빚는 데에 평생을 바치라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공부하라, 공부하라. 이번 한 생 태어나지 않은 셈치고 한 번 작정하고 공부하라.’

늘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그러자니 ‘밥’과 ‘벌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방법, 즉 만두는 팔기도 하지만 끼니를 해결할 수 있기에 그런 장사를 제안하셨던 것입니다.

만두장사라는 직업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했지만 선생님의 그 제안은 인생의 행로를 결정하지 못한 당시 제게 커다란 나침반이 되었습니다. 이후 나는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로 걱정을 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불교 공부할 수만 있다면 직업이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이 조용하고도 강력하게 저를 지배한 것입니다. 20대의 저는 그 가르침을 기반으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며칠 전 ‘사분율’을 읽다가 참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했지요. 아마 스님께서도 잘 알고 계신 내용일 텐데요, 부처님께서 나무 아래 좌선하고 계시다가 귀중품을 훔쳐 달아난 유녀를 찾아 나선 젊은이들과 마주친 내용입니다. 젊은이들은 혈안이 되어서 그 여인을 찾다가 부처님을 뵙자 이렇게 묻습니다.

“혹시 어떤 젊은 여인이 지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

부처님은 답하셨지요.

“젊은이들이여,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이 급한가, 여인을 찾는 일이 더 급한가?”

너무 많이 들었던 내용인지라 특별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부처님이 ‘젊은이들이여’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이 새삼스러웠습니다. 한문 경전에서 ‘동자(童子)들이여!’라고 되어 있으니 부처님은 청년들을 상대하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젊은이들이라면 세상을 향해 날개를 펼치고서 돈과 이성과 성공을 찾아 다녀야 할 테지만, 부처님은 그런 젊은이들에게 자신을 찾는 일이 더 급하지 않느냐고 물었다는 것입니다.

요즘 저는 대체로 평균연령 40대 이후의 사람들을 만나 부처님 가르침을 주고받습니다. 인생의 치열한 시기를 거쳐 온 사람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 공감하는 바도 많아서 참 편하고 좋습니다. 그러다보니 세상사를 어느 정도 터득했다는 안도감에 사로잡혀 나도 모르게 ‘이제 세상에서 조금은 물러나 자신에게 집중하라’는 말이 나올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다가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내가 늙어가고 있으며 게다가 정신이 낡아가고 있다는 걸 깨닫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천둥벌거숭이 같았던 청년들과 길고 긴 시간을 치열하게 법담을 주고받던 것은 죄 잊어버리고 달관의 오도송만 흉내 내고 있는 저를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의 선생님처럼, 오늘날의 청년들에게 과연 무엇인가를 자신 있게 제안할 수 있는가?’라고 돌아보면 부끄럽게도 그러지 못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출구가 없다고 자포자기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차라리 이 나라를 떠나겠다고까지 말합니다. 과연 이 시대에 젊은이들에게 길을 보여줄 선지식이 없는 것일까요? 아니면 선지식은 있는데 젊
은이들이 아예 길을 물으려고 하지 않는 걸까요?

어느 사이 기성세대로 들어선 저는 늘 저들에게 미안합니다. 우리 선생님처럼, 부처님처럼 ‘젊은이들이여’라며 진지하게 길을 제안하여야 할 텐데 말입니다.

스승의 날을 맞으니 자꾸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스님께도 참 고마우신 스승님이 계실 테지요? 그 이야길 듣고 싶습니다. 늘 평안하시길. 이미령 드림

이미령 북칼럼니스트 cittalmr@naver.com
 

 [1344호 / 2016년 5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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