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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푸티상사의 지상법문] 36. 아름답고 완전한 결혼생활 ②

기자명 법보신문
  • 법공양
  • 입력 2016.05.16 16:04
  • 수정 2016.05.16 16:05
  • 댓글 0

관용으로 온화한 말·행동하는 결혼생활은 보석보다 빛나

 
어느 날 한 수련생이 나에게 찾아와 말하기를, 남편과 자신 사이에는 경계선이 있고, 그것은 실제로 너무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은 아주 선량하고 항상 가족을 위해 노력하며 심지어 친정아버지까지 도우며 살고 있지만, 자신의 남편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잘 드러내지 않는 아무런 감정도 없는 냉혈한 같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그런 남편에게 적잖이 실망했다며 나에게 물었습니다.

“상사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런 일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그러면서 그녀는 이런 남편, 이런 집안사람들을 만난 것에 대해 스스로 이렇게 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 이것은 나의 운명인거겠지. 전생에 내가 그에게 진 빚이 있어서 이렇게 이생에서 갚고 있는 걸 거야. 그러니 그가 나를 이렇게 대하는 것은 당연하겠지.”

이런 생각과 행동은 그렇게 말함으로써 스스로 원만하고 해탈하게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오랫동안 이런 태도를 가지고 살아간다면, 혹은 상대방을 고치려고 기도하지만 끝내 상대방이 고쳐지지 않으면 오히려 스스로의 마음은 쓰리고 꺾이며 뒤틀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스스로에게 회의를 느끼게 될 것이니, 무조건 참기만 해도 안 됩니다.

이 일은 절대적인 하나의 답안을 가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개인마다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얼마든지 참고 견뎌낼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매일 참고 받아들이는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그런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원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인생은 참아야 할 것은 참아야 하나, 참아서는 안 될 것은 참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참고 받아들이는 것이 절대 최고의 미덕일 수는 없습니다.”

이른바 ‘조금 참지 않아서 큰 계획을 어지럽힌다’라는 말이 있는데, 당신은 정말로 커다란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까? 커다란 이상을 가지고 있습니까? 마땅히 인내에는 하나의 목표가 있어야 하는데, 이미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그 한계 역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 한계란 자신의 감각과 인내력 그리고 몸이 받아들일 수 있는 힘에 근거하여 정하는 것입니다.

남편은 자신의 아내에게 잘 해줘야 하지만 어떤 남편은 아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비뚤어지게 바라보며 매일 때리고 욕하며 무시하거나 심지어 학대합니다. 그런데도 그 세월이 오래되어도 단지 아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운명이라 생각하고, 모든 것을 포용해야 한다면, 그것은 과연 이지적(理智的)인 생각일까요?

일반적으로 말해서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마음에 딱 맞는 상황이나 사람을 만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나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그에 따른 이해관계를 철저하게 분석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성품이 좋지 않은 동료가 있고 그 사람이 당신을 모욕한다면 당신은 회사를 그만두는 등의 방법을 통해 그와의 충돌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부 사이에서는 말이 다릅니다. 당신은 반드시 이것이 장기적인 고통인지 아니면 단기적인 고통인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만약에 이 일이 평생 당신을 따라다니며 괴롭힌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 때문에 내가 일생동안 이렇게 상처받고 고통 받아야 하는 건가? 당신은 늑대이고, 나는 양이라서, 당신이 나를 물어뜯어도 그저 가만 놔두어야 하는 건가?”

당신이 양이 아니라면 생활방식을 바꾸어 이런 상황들을 고쳐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고칠 것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것은 당신 인생의 필요에 근거해서 당신 스스로가 결정해야 합니다.

이것은 아주 현실적인 일입니다. 예를 들어 이사를 하게 되어 가지고 있던 소파를 내버려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만약 소파가 아직 새 것이어서 쓸 만하다면 다른 사람이 가져다가 다시 쓸 수도 있겠지만, 이미 많이 낡은 것이라면 아무도 그것을 눈여겨보지 않아 결국에는 쓰레기가 될 것입니다. 모든 물건은 쓸데가 없으면 곧바로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이 되며, 그것을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성인이 되어서는 더욱더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어머니가 당신에게 젖을 물릴 때부터 바로 먹는 것, 입는 것, 앉는 것, 걸어 다니는 것 그리고 창조하는 것 등을 배우게 됩니다. 이것들은 우리가 끊임없이 반복하기 위해서 하는 일이고, 또한 어떻게 독립하여 생활하는가를 배우기 위한 과정입니다.

어떤 여성들은 결혼을 비바람을 피하기 위한 항구라 믿고 현실생활에서 도피하려고만 할 뿐,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는 대단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공연히 감정에 의지하는 것은 독립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과거의 여인들은 일생동안 아이를 낳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지만, 현대에는 그렇게 많은 아이들을 낳지 않습니다.

그리고 독립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는 한 집안의 주인 또는 여왕이 되는 것을 독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여왕노릇을 할 능력과 자질을 가지고 있습니까? 당신은 가정의 경제를 지탱할 수 있습니까? 독립하여 자주적으로 생존할 수 있습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무엇으로 여왕노릇을 하겠습니까? 예쁜 얼굴과 날씬한 몸만으로 결혼생활을 오래 지속할 수는 없습니다. 공원의 벤치처럼 어느 날 깨끗하게 페인트칠을 했다 해도 언젠가는 반드시 벗겨지고 지저분해 집니다. 처음 남자가 당신을 사랑하게 된 것이 단지 그대의 외모 때문이라면, 어느 날 그 미모가 없어진 후에도 당신을 사랑할까요?

우리는 흔히 쉽게 허울 좋은 말로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세월이 흘러 그대가 어떻게 변하든지 나는 늘 처음과 같이 그대를 사랑할 것이오.”

하지만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결혼하여 20여년이 지난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20년 전에 연애하던 시절의 애틋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마치 50년 전에 만들어진 소련제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처럼, 단지 억지로 굴러갈 뿐 부득이하여 그냥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일 뿐입니다.

결혼생활에서 만약 어느 한쪽이 부부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더라도 그 결혼이 유지된다면 그것은 정말로 찬미할 가치가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한쪽이든지 혹은 쌍방이 반드시 풍부한 동정심과 연민의 정을 가지고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대단한 자비심으로 상대방을 향한 사랑은 이미 사라지고 없더라도 서로를 보듬어주면서 때로는 할 수 없이 “여전히 당신을 사랑해”라는 말까지 하니 얼마나 크고 넓은 마음입니까?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한마디의 말은 상대방에게 생명의 희망과 내일의 아름다움을 맛보게 하는 말이며, 다음 날 다시 가족을 위해 당신을 위해 밥을 짓게 하고 돈을 벌어오게 합니다. 그러므로 20년 이상 원만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며, 50년 동안 결혼생활을 이루고 있는 부부는 다이아몬드보다 값진 살아있는 보배로 칭찬할 가치가 있습니다.

현실로 돌아와서,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데 있어서 외모를 제외한 서로의 실용성이 필요합니다. 이른바 실용성이란 개인이 창조적 가치를 지닌 능력을 가졌는지 아닌지를 기준으로 삼는 것입니다. 만약에 두 사람 모두 실용성을 가지고 있다며 둘 사이의 감정은 더욱 좋아 질 수 있고, 어느 한쪽이 죽거나 헤어지더라도 다른 한 사람은 굳건하게 독립적으로 생활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 여성은 더 이상 아기를 낳는 그릇이 아닙니다. 스스로 살아갈 능력이 없는 사람은 오직 상대방만을 의지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상대방이 그대를 필요 없다고 여길까봐 걱정하여 절대로 마음이 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자아를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걱정할 바에 나이가 많아서 이제는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차라리 스스로 나아가서 배우세요. 결혼은 남녀 모두 서로가 생활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비로소 마음의 평정과 상서로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행복하고 달콤한 결혼생활을 원한다면 먼저 자비와 관용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비와 관용은 당신이 행동하면서 상대를 더 많이 이해해 주고, 당신의 언어를 온유하게 만들어 주어 당신의 행위를 타당하게 되며, 타당하게 되면 화해하게 되고 화해가 바로 행복입니다. 많은 여성들이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나는 아주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남편과 아이들에게 아주 잘해줘요.”

여기서 말하는 ‘사랑하는 마음’은 ‘자기만을 생각하는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부릅니다. 자비와 자기만을 생각하는 사랑은 그 성격이 다릅니다. 자비는 스스로 사사롭게 하는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만 비로소 자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비심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비로소 인생에서 항상 즐거움과 성공의 경지에 설 수 있으며, 영원한 에너지로 충만해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비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나서야, 우리의 생명은 바로 빠르게 방향을 바꾸어 돌아갈 수 있고 보통 사람이 걸어가는 일반적인 생명의 궤적에서 벗어나서 보다 행복한 방향으로 나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우리가 자비와 관용의 마음을 가진다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가정생활이 변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가족들을 마주하게 되면 우선 당신의 말투가 아주 온화해 질 것입니다. 따라서 일을 마치고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당신은 이런 식의 말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배가 불렀구나. 어디서 밥투정이야! 먹기 싫으면 먹지 마! 개나 갖다 줘야겠다!”

이 말을 들은 남편은 밥을 먹어야 할까. 먹지 말아야 할까요? 만약 밥을 먹는다면 늘 자기는 개와 같이 아무런 존엄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먹지 않는다면 당신이 또 불같이 화를 낼까 두려워서 결국에는 조용히 참고 무거운 마음으로 먹을 것입니다. 이런 식의 생활이 오래 지속된다면 남편은 이런 가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며, 결국에는 도망칠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행복은 자기가 창조하는 것으로,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대해야 합니다. 감사를 알면 바로 이해와 양보를 할 수 있고, 이해와 양보의 마음을 갖는다면 우리의 행동은 고쳐질 수 있습니다. 당신이 옷이나 장식품, 혹은 비싼 화장품을 사려고 하다가도 생각을 바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 이 돈을 좀 아껴서 아이들에게 책 한 권을 더 사주자.”

그리고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얘들아, 이리 오너라. 재미있는 책을 읽어줄게.”

이렇게 아이들에게 책 읽는 습관을 길러 주면 아이들은 진정한 독서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자비의 마음을 가지면 당신은 더 많이 이해하고 양보할 수 있고, 결국 당신의 결혼생활과 가정은 더욱 행복하고 화합하게 될 것입니다.

진푸티상사 저서 ‘깨달은 눈으로 본 인생’ 중에서 (번역 : 권중달)
보리선수 약사선원 T.1661-0803
 

 [1344호 / 2016년 5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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