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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돌봐주던 할머니의 임종

기자명 하림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6.05.30 11:03
  • 수정 2016.05.30 17:51
  • 댓글 0

오늘은 참 먼 길을 다녀왔습니다. 어제 밤 자정에 문자 한통이 왔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을 돌보던 할머니의 임종소식이었습니다. 새벽에 기차를 타고 남양주를 다녀왔습니다. 오후 일정이 있었지만 임종인사를 미룰 수 없었습니다.

90세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새겨
평생 남을 위한 삶 살았기에
그 공덕으로 성불하길 발원

장례식장은 요양원이 딸린 곳이면서 약간은 시골스러운 곳에 있었습니다. 막상 영정사진 앞에 서니 담담했습니다. 90세를 사시면서 긴 세월만큼 얼마나 많은 노고를 겪었을 지를 생각하니 죽음이 오히려 쉼이 되지 않을까 싶어지기도 합니다. 입관을 하는 시간이 되어서 처음으로 그 과정을 온전히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아무래도 저도 젊어서인지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좀 부담스러웠습니다. 이제 좀 살았다고 죽음에 대한 것도 마냥 피할 것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까이서 보는 할머니에게서 예전에 예쁘시고 활기차고 늘 힘찬 웃음으로 맞이하던 모습을 찾을 수 없습니다. 몸은 바싹 말랐고, 피부에는 생기가 없습니다. 몸은 굳었고 혈색이 없습니다. 체구도 너무나 작아 보입니다. 새 옷을 입히는 동안 혼자 움직이지도 못합니다. 정성스럽게 머리도 빗기고 얼굴도 코도 닦아드렸지만 기뻐하시는 모습을 더 이상 보지 못합니다.

무상게를 독송합니다. 땅으로 물로 바람으로 낮은 온도로 돌아간다는 말이 너무나 와 닿습니다. 이 세상에 오는 모습은 너무나 가녀리고 예쁘지만 가는 모습은 마른 나무의 뿌리와 같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삶과 죽음이 멀지 않다는 것을 느낍니다. 저렇게 작은 모습에서 6남매가 나오고 수많은 손녀 손자들이 생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태어남만 있고 떠남이 없었다면 이미 이 세상은 포화상태였을 것입니다. 떠남은 곧 태어남으로 연결되리라 믿어서인지 많이 슬프진 않았습니다. 부처님도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옳지 않다고 했습니다. 죽어서 끝이라면 애써서 살아야할 이유도 없습니다. 착하게 살아야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새로운 삶으로 연결되기에 선행을 하고 인연을 소중하게 이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다른 업식을 가지고 옵니다. 쌍둥이 일지라도 어린 시절 엄마의 사랑을 다르게 기억합니다. 같은 빵을, 같은 양을 주었음에도 누구는 많이 받았다고 기억하고 누구는 작게 받았다고 기억합니다. 이것은 그 태어나는 인연의 업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소질이 다른 것은 과거의 인연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천재는 없습니다. 전생에 많이 하던 일을 지금 하면 금생에 시작하는 사람과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날 것입니다. 이는 당연한 모습이지 차별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히려 세상은 지은만큼 인연을 받기 때문에 공평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 천재라고 하는 분들이 다 어릴 적 이야기입니다. 어릴 적에는 다른 사람들이 노력해서 얻는 것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입니다. 전생부터 먼저 출발해서 뛰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니 다음 생에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려면 금생에 열심히 한다면 다음 생에 천재이고, 여러 생을 한다면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소질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불교에서 제불보살님들도 모두가 수백 생에 걸쳐 원을 세워 그 길을 걸어온 분들입니다. 그러니 한 생 두 생을 목표로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것입니다.

할머니는 늘 자신을 돌보지 않고 웃으면서 주변 사람들을 돌보시는 삶을 사셨다고 합니다. 사실 절에 맡겨진 저와 동생을 보고 와서는 눈물도 많이 흘리셨다고 합니다. 입관하는 내내 큰 따님이 “엄마 이제 제발 우리 걱정 마시고 좋은 곳에 가세요”라는 말을 되뇝니다.

▲ 하림 스님
미타선원 주지

“엄마는 자신의 삶이 없었어요. 그래서 너무 불쌍해요.” “이제 자신만 생각하고 부디 편히 쉬세요.” 할머니의 삶이 온전히 느껴지는 울먹임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축원합니다. “부디 다음 생에는 넉넉한 남자 만나서 다복하게 사랑받으면서 사세요”라고 말입니다.

할머니는 그동안 좋은 인연 많이 베풀었으니 복 있는 세상에서 더 좋은 모습으로 환생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하시던 베풂은 더 큰 공덕이 되어서 관세음보살 제불보살과 같은 공덕이 되어서 필경 성불하리라 믿습니다. 오늘 먼 길을 다녀오면서 한 생을 돌아 본 듯한 느낌입니다. 무상을 배웁니다.

 


[1345호 / 2016년 6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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