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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불자를 위한 우바새계경 강설] 11. 제8·9품 명의보살품·의보살심견고품

기자명 법보신문
  • 법공양
  • 입력 2016.05.30 17:37
  • 수정 2016.05.30 17:40
  • 댓글 0

‘이름만 보살’ 벗어나 ‘참다운 보살’되기 위한 실천 방법

▲ 법안 스님은 “스스로 가명보살에 가까운지 실의보살에 가까운지 생각하고 실의보살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우바새계경’ 제8품 ‘명의보살품(名義菩薩品)’과 제9품 ‘의보살심견고품(義菩薩心堅固品)을 함께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바새계경’은 한국에 최초로 소개되는 경전으로 한국불자들에게는 아주 생소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중국에서는 재가불자들에게 보편적으로 가장 많이 설해지고 있는 경전입니다.

‘우바새계경’은 ‘금강경’해설서
참다운 보살의 구체적인 모습은
변화 위한 현실적인 실천 모델
꾸준히 읽고 외워 삶 변화시켜야

대승불교는 출가제자들만을 위한 불교가 아니고 재가불자들도 함께 주인공이 되는 불교이기 때문에 ‘우바새계경’은 재가불자들이 사회에서 살면서 가장 필요한 행동 지침이라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다행히 인연이 닿아 한국에서도 이렇게 경전을 소개하고 강설을 하게 됐으니 행복한 일입니다.

‘우바새계경’은 선생보살이라고 하는 재가불자가 묻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대답하시는 방식으로 구술되어 있습니다. “비우고 내려놓아라”에 익숙한 한국 불자들에게 “잡고 비우지 말고 채워라”는 ‘우바새계경’의 가르침은 참 생소합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우바새계경’이 보물 같은 경전입니다. 이번 강설이 많은 불자님들께 불자답고, 실질적인 행복을 전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선생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보살은 두 종류가 있어, 첫째는 가명보살(이름만 보살)이고, 둘째는 실의보살(참다운 보살)이라면 가명보살은 어떤 이입니까?”

“선남자여, 어떤 중생은 보리심을 내고 나서 외도의 실천법과 그 전적 받기를 즐거워하고 읽고 외고 또 이 법으로 중생을 교화합니다. 자신의 몸과 목숨을 위하여 남의 목숨을 죽이고 해치며 자비 닦기를 즐겨하지 않습니다. 생사를 좋아하여 언제나 모든 업을 지어서 생사를 즐거움으로 받습니다. 삼보에 대한 신심이 없고 의심으로 마음이 얽매이며 몸과 목숨을 아끼고 보호하여 인욕하지 못합니다. 말이 거칠고 비난하며 원한을 품고 한탄하며 방일합니다. 자기 스스로를 가볍게 여겨 ‘나는 무상보리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명의보살품’은 이름만 보살인 자가 참다운 보살이 되기 위한 과정을 설하는 내용입니다. 위에서 설한 분들이 바로 이름만 보살이지요. 부처님께서는 참다운 보살이 될 수 있는 길도 잘 설명해주십니다.

“실의보살은 깊은 뜻을 듣고 좋은 벗을 가까이 하기를 좋아하고 스승과 어른, 부모와 좋은 벗들을 공양하기를 좋아합니다. ‘십이부경’을 듣고 지니고 읽고 쓰고 그 뜻을 생각하기를 즐겨하며 법과의 인연을 위해 목숨, 처자, 재물을 아끼지 않으니 그 마음이 견고하여 모든 것을 불쌍히 여깁니다. 말이 부드럽고 온화하며 진실된 말을 먼저 하고 못된 말과 남을 이간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어떻습니까? 불교가 멀리 있고 우리 생활과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요?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이러한 현실적이고 실천 가능한 노력으로 참다운 보살이 될 수 있습니다. ‘우바새계경’의 가르침을 하나하나 마음에 새기고 실천해 나간다면 바로 여러분들이 진실한 보살이 될 수 있는 거예요.

부처님께서는 아무리 ‘십이부경’을 읽고 보시 공덕을 많이 쌓더라도 근본적으로 더딘 사람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그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에 달려있다고 설하셨지요.

“자신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손을 내밀어 은혜 베풀기를 싫증내지 않으며 언제나 지혜의 칼을 닦고 갈기를 즐깁니다. 비록 외전을 익히나 사견을 부수고 사견을 이기기 위함입니다. 방편을 잘 알아서 중생을 조복하고 대중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항상 보리는 얻기 쉬운 것이라고 가르쳐서 듣는 자로 하여금 두려운 생각을 내지 않게 합니다.”

자신을 가볍게 여기면 안됩니다.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여러분들은 요즘말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며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부처님 가르침만 보면 불교가 어렵고 힘든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우리가 불교공부를 할 때는 지레 겁먹고 어려운 길로 돌아갑니다. 이 ‘우바새계경’을 잘 공부해 어느 정도 무르익으면 달라질 거예요.

프랑스 출신의 불교학자 베르나르 포르가 쓴 ‘불교는 무엇이 아닌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대부분 불교서적은 ‘불교는 무엇인가’ ‘무엇을 말하는가’에 관한 서술인데, 이 분은 ‘무엇이 불교가 아닌가’에 초점을 맞춘거죠. 여러분들도 한번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고려대 철학과 조성택 교수님이 콜롬비아대학에서 공부를 하면서 이 책을 번역했어요. 책은 원시불교부터 대승불교, 밀교까지 전부 정리해 통념상으로 “불교는 이럴 것이다”하는 막연한 견해 가운데 아닌 것의 근거를 찾아 간단명료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추천하고자 해요.

여러분, 항상 이야기 하지만 불교는 어려운 게 아니예요. 불교는 쉬운 거예요. 여러분들이 실천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많은 한국 불자들이 최고 어려운 것, 최고 높고 대단한 것만 찾아 헤매다 보니, 막상 불교의 핵심을 어디서 어떻게 배울 지를 헷갈리고 있어요.

입과 몸과 생각을 조심하는 실천만으로도 불교는 삶 속으로 들어옵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기도를 통해 운명을 바꾸고 극복할 수 있습니다. 고통이든 아픔이든 경제적인 어려움이던지 간에, 기도를 하다보면 의식수준 자체가 높아지고 많은 것들이 변화되지요. 안심정사 홈페이지만 봐도 수많은 경험담들이 있잖아요?

“마음이 방일하지 않고 항상 인욕을 닦으며 열반의 과보를 위하여 계를 지키고 정진합니다. 중생을 위하여 심부름꾼이 되어서 저들로 하여금 안온하고 기쁘고 즐거움을 받게 할 것을 원합니다. 남을 위해서 괴로움을 받아도 후회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보리에서 퇴전함을 보면 가여워 하는 마음을 냅니다. 모든 갖가지 고뇌에서 구제하고 생사에 있는 죄과를 살펴봅니다. 위없는 육바라밀을 갖추어서 세상일을 함에 어떤 중생보다 낫습니다.”

이는 참다운 보살의 모습인 동시에 바람직한 삶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명의보살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 대목입니다. 

“원수와 친한 사이에도 한결같은 마음이며 보시할 때에도 평등하게 하여 몸의 버림까지도 그렇게 합니다. 무상을 알아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사섭법으로써 중생을 포용합니다. 세간의 이치를 알아서 중생에 따라 말하며 중생들을 위하여 괴로움을 받을 때에도 그 마음이 수미산과 같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명의보살품’의 핵심을 알기 위해서는 사섭법을 꼭 배워야 합니다. 사섭법의 첫 번째는 보시섭(남들에게 베푸는 것), 두 번째는 이행섭(남을 이롭게 하는 것), 세 번째는 애어섭(남들에게 사랑스런 말을 하는 것), 네 번째는 동사섭(남들과 같이 어울려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 자체로 보살도지요. 우리가 가족과 친척, 직장동료들에게 부처님법을 포교하는 방법이 바로 사섭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명의보살품’에는 이처럼 참다운 보살이 되는 방법과 과정들이 아주 구체적으로 나와 있으니 잘 숙지해 작은 것부터 실천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제9품 ‘의보살심견고품’은 의보살, 즉 참답고 올바른 보살인 실의보살이 되기 위한 방법들을 담고 있습니다.

“보살이 육바라밀을 수행할 때에는 끝까지 육바라밀의 과보를 구하지 않으며 다만 중생의 이익을 일로 삼습니다. 보살이 생사계의 허물과 환난을 깊이 알면서도 기꺼이 머무는 것은 중생으로 하여금 안락의 이익을 받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보살이 해탈의 안락과 생사의 허물과 환난을 알면서도 기꺼이 머무니 이것이 보살의 불가사의입니다.”

‘금강경’의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는 운하응주며 운하항복기심 이니잇고(무상정등정각의 마음을 낸 자는 그 마음을 어떻게 항복받고 그 마음을 어떻게 머물러야 되겠습니까)”의 해답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금강경’에는 이 질문의 답이 없어요. “보살은 마땅히 그렇게 그 마음을 항복받고 그렇게 머물러야된다”고만 설하셨지요. 그러니 ‘우바새계경’이 재가불자를 위한 ‘금강경’ 해설서라고도 볼 수 있어요.

“보살이 생사계의 허물과 환난을 깊이 알면서도 기꺼이 머무는 것은 중생으로 하여금 안락의 이익을 받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보살이 해탈의 안락과 생사의 허물과 환난을 알면서도 기꺼이 머무니 이것이 보살의 불가사의입니다.”

이 또한 해답이에요. 이 마음을 어떻게 머물고 어떻게 항복 받을까요? 바로 보살이 생사계의 허물과 환난을 깊이 알면서도 열반으로 가려는 마음을 항복받고 중생으로 하여금 안락과 이익을 받도록 하기 위해 머문다는 것이죠.

이렇게 ‘이 마음을 어떻게 항복받고 어떻게 머물러야 되겠습니까’에 대한 해답이 그대로 나오는 거예요.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가 저절로 되는 것이지요.

“선남자여, 중생들은 언제나 자기의 이로움을 구하지만 보살의 행위는 항상 남의 이로움을 구하니, 이것이 보살의 불가사의입니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도 번뇌는 있지만 원수에게나 친한 이에게나 평등하게 이익을 주니 이것이 보살의 불가사의입니다.”

번뇌(탐내고 성내고 어리석고 교만하고 의심 많은 것)는 절대적으로 비워야 됩니다. 번뇌는 적을수록 좋은 거예요. 탐내는 대신 남들과 나누면 돼요. 번뇌를 비우고 ‘우바새계경’에 나오는 이 마음들로 가득 채우라는 거예요. 채웠어도 채웠다는 생각이 없으면 더 좋겠지요. 무상정등정각으로 가는 거니까.

“그렇게 하면 제가 손해만 보지 않을까요?” 묻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제가 해보니까 손해는 없어요. 제가 금생에 와서 가장 크게 깨달은 게 뭐냐면, 먼저 베풀면서 공덕을 쌓는 밑밥을 잔뜩 던져놓아야 미끼를 물고 들어온다는 거예요. 빈 낚시 바늘로 무엇을 낚을 수 있겠어요? 먼저 베푸는 것이야말로 보살도예요. 이것을 여러분들이 반드시 실천하신다면 좋겠어요.

다음 구절을 꼭 기억하고 실천해보세요.

“선남자여, 보살에게 네 가지 불가사의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랑하고 소중히 아끼는 물건을 기꺼이 남에게 주는 것이고 둘째는 모든 번뇌를 갖추고도 모든 나쁜 일을 참는 것이며 셋째는 흩어지고 파괴하는 무리들을 화합하게 하는 것이고 넷째는 임종 시에도 악을 보면 법을 설하여 고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살의 네 가지 불가사의입니다. 또 세 가지의 불가사의가 있습니다. 첫째는 모든 번뇌에 대해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돌아보고 책망하는 것이고 둘째는 번뇌 가운데 머무르면서 버리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비록 번뇌와 번뇌 업이 있지만 방일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보살의 세 가지 불가사의입니다.”

전에는 살인하고 악독한 짓하는 사람들 보면 욕이 저절로 나왔는데 요즘은 “아! 내가 욕을 할 게 아니지. 누군가가 대신 참회를 해야지. 저게 내가 참회할 일이다”하고 생각하니 아무리 악독한 사람을 봐도 미워하는 마음보다 안타깝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요. 미워하는 마음으로는 해결되는 것이 없지요. 생각을 바꿔  그 마음을 헤아려 대신 참회하는 게 우리가 할 일이에요.

“또 세 가지의 불가사의가 있습니다. 첫째는 처음 보시하고자 할 때 환희와 즐거운 마음을 내는 것이고 둘째는 보시할 때 남을 위하되 과보를 구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보시를 하고 나서는 즐거운 마음을 갖되 후회하거나 한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보살의 세 가지 불가사의입니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행을 할 때에는 스스로 마음을 살펴서 ‘나는 가명보살(이름만 보살)인가 실의보살(참다운 보살)인가?’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중생이 이와 같은 일을 많이 한다면 그 사람이 바로 실의보살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참된 보살이 아니라고 실망할 필요는 없어요. 점차적으로 하다보면 되는 거잖아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는 사형제도 찬성론자는 아니어도 반대론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형제도를 반대해요. 사형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됐거든요. 우리가 대신 참회를 해서 그 분들이 금생에 그 업을 전부 털고 가도록 도와주겠다는 마음이 필요해요. 교도소 법회를 25년 다니다보니, 우리가 대신 참회를 하고 대신 복덕을 지어주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열심히 공부하고 기도하는 불자로 살아왔다면, 이제는 스스로 가명보살에 가까운지 실의보살에 가까운지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꼭 그런 불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345호 / 2016년 6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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