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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뭉게구름, 파란 하늘 그리고 별

기자명 최원형

밤하늘 별이 상상만으로 머물지 않기 위해선

몇 해 전 처음으로 강진 백련사엘 다녀왔다. 그전까지 내 활동 범위는 ‘전주’가 최남단이었던 터라 그날 밟은 강진 땅은 가장 많이 내려갔던 남쪽이었다. 저녁에 도착한 백련사의 공기는 남녘의 여름답지 않게 선선해서 뜰을 거닐었다. 한참을 거닐다 우연히 올려다 본 하늘에서 무수한 별들을 맞닥뜨리고는 놀라움과 경이로움에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저 ‘와, 와’, 하는 탄성이 꽤나 여러 번 터져 나왔던 것 같다. 그토록 많은 별이라니! 목이 꺾어져라 하늘을 한참 올려다보다 아예 바닥에 드러누워 별들을 감상했다. 별은 볼수록 점점 더 많은 별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함께 갔던 이들도 하나 둘씩 바닥에 등을 깔고 우리 모두는 별 볼 일 있는 하루를 마무리 했던 걸로 기억한다. 달은 넘어가고 쏟아질 듯 하늘을 꽉 채운 별들이 주거니 받거니 반짝이던 그 뜰에 바람은 서늘했다. 강진의 별들은 훨씬 더 오래 전 어느 겨울, 투명하게 찬 공기를 뚫고 다가왔던 봉정암의 별들을 떠올려줬다. 서늘하게 명징하던 그곳의 별들은 지금도 잘 있는지. 백련사 뜰에는 배롱나무 꽃이 무시로 피고 지던 때라 낮에 도착했다면 내 시선은 아마도 하늘까지 올라가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서울로 돌아와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며칠 동안 우울했다. 뭔가 두고 온 듯 허전함에 맘 둘 데를 찾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어쩌다 하나 둘 깜빡 조는 별 말고 서울 하늘은 도무지 별을 내놓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아니 어쩌면 도시의 밤은 설령 강진의 그 별빛이 쏟아진다한들 그걸 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기도 하다. 휘황찬란한 전등 불빛이 별빛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는 별빛만 차단된 게 아니라 파란 하늘도 점점 가려지고 있다. 하늘이 희뿌옇다 싶으면 이젠 어린 아이도 안다, 미세먼지 때문이란 걸. 흐리멍덩한 날이 며칠 씩 지속되면 숨통이 조여드는 느낌이다. 답답하고 숨 막히는 이곳을 빨리 떠나야지, 하는 생각이 절로 솟구친다. 저 뿌연 대기 너머에 있을 파란하늘을 생각하면 답답함은 분노가 되기도 한다. 그 분노는 누굴 향하고 있는 걸까?

우리 모두는 행복한 삶을 원한다. 행복한 삶이란 뭘까? 행복이란 낱말 자체는 지극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단어다. 행복하다는 것은 어떤 상태에 있을 때의 느낌이어서 개개인이 느끼는 행복을 한 줄 문장으로 정의할 수 없는 때문이리라. 한 가족이 있다. 그들은 행복해지고 싶어 휴일이면 차를 타고 자연을 만나러 간다. 차 안에는 자연에서 먹고 마실 것들이 잔뜩 실려 있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가족들이 모두 좋아하는 ‘고기’도 구워먹으며 지낼 걸 생각하면 떠나기 전부터 행복해진 것 같다. 또 다른 가족이 있다. 그들도 휴일을 행복하게 지내고 싶어 또 다른 자연을 만나러 간다. 이것저것 실으려니 차가 커야하고 그런 차들은 대개 경유로 움직인다. 얼마나 행복한가, 자연에서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맛있는 것을 먹고 상쾌한 공기도 마시며 일주일의 피로를 풀 수 있으니. 이렇게 행복해지고 싶은 가족의 차들은 도로에 쏟아져 나오고 도로는 주말마다 주차장이 된다. 정체되어 길게 줄지어선 차 꽁무니에서는 쉼 없이 매연이 뿜어져 나온다. 오가는 동안 차창은 ‘반드시’ 올려야 한다. 매연이 들어오면 안 되므로. 매연이 해롭다는 정도는 누구나 안다. 그렇다면 그 매연은 누가 만든 것이고 결국 어디로 갈까? 차를 움직여 행복을 찾아 다녀오면서 만들어진 거니 매연도 차 안에 있는 그 가족들의 행복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올 5월, CNN 등 외신에 따르면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등 동남아에는 45℃를 넘는 기록적인 폭염이 지속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폭염으로 호수가 말라버렸고 농작물도 시들다 못해 말라 죽었다. 캄보디아는 폭염으로 결석률이 30~40%에 이르고 있다. 뉴스에서 이런 소식을 들어도 피부로 와 닿진 않는다, 솔직히. 대신 우리나라에도 일찍 찾아온 폭염이 걱정이다. 올핸 엘니뇨가 기승을 부릴 거라던데 그나마 전기요금을 내린다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더운 날 지친 가족들이 전기요금 부담 없이 시원한 여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그런데 에어컨을 돌리는데 필요한 전기는 어디서 오는 걸까? 한 번도 이 전기가 어디서 오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60%를 훨씬 웃도는 전기는 석탄을 비롯한 화석연료를 태우는 화력발전소에서 만들어진다. 콘센트 어딜 들여다봐도 배기가스는 보이지 않으나 거기서 꺼내 쓰는 전기는 어찌됐든 석탄을 태워 만들어지고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들을 대기 중으로 뿜어댄다. 미세먼지를 중국 탓으로 돌리곤 하지만 사실 그건 반만 맞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석탄 수입 4위 국가이고, 석탄화력발전소가 서해안에 집중해서 몰려 있다. 중국에서 불어오는 미세먼지도 있지만 우리나라 서해안에 위치한 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미세먼지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경유차 운행도 미세먼지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공기질 수준이 전 세계 180개국 중 최하위권인 173위이며, 미세먼지 농도는 세계에서 8번째로 높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한 번도 도시를 벗어난 적 없는 아이에게 하늘의 별을 본 적 있냐고 묻는다면 어떤 답을 들을 수 있을까? 본래 맑은 밤하늘은 무수한 별들이 쏟아질 듯 빛나는 곳이라고 귀로만 그 별을 듣게 할 수는 없다. 아이들 상상 속에서만 별이 머무르게 해선 안 된다. 사진 속에 갇힌 파란 하늘이 하늘일 순 없다. 우린 행복해지고 싶다. 하얀 뭉게구름 피어나는 파란 하늘도 보고 싶고, 밤에는 무수한 별빛도 만나고 싶다. 그런데 이런 소박한 바람이 왜 이토록 어려운 일인가? 누가 우리의 행복을 막고 있는 걸까? 우리 스스로가 밤하늘의 별과 파란 하늘을 볼 수 없도록 희뿌연 막을 만들고 있다는 이 인과의 이치에는 무지한 채, 우린 행복하고 싶다고만 하고 있는 건 혹시 아닐까?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345호 / 2016년 6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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