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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누군가의 스승이 된다는 것

기자명 성원 스님

스승의 일거수일투족 어린 기억 속에 각인

▲ 일러스트=강병호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가네….’

스승의 노래 부르던 시절 지나고
앞자리서 그 노래 듣는 나이 돼
어린시절 선생님의 부당한 행동
아직까지 기억 속에 남아 있어
스승인 세존 만난 것이 큰 행복

부처님오신날 전야제 작은 축제 때 탑돌이를 마치고 찬불가를 부르던 ‘리틀붇다어린이합창단’들이 갑자기 스승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합창을 마치고 참석한 스님들께 작은 선물과 꽃바구니를 선물했답니다. 갑자기 가슴 뭉클한 순간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오월이면 늘 부르던 스승의 노래와 어린이날 노래는 가사와 음곡 모두 그 내용에 너무나 잘 맞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어린이날 노래를 부르면 신록의 들판을 두 팔 벌리고 뛰어 노닐던 생각이 어제 일같이 눈에 아롱거리는데 이제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그 노래를 듣고 있다니, 세상이 보는 나와 내가 느끼는 나 자신과는 큰 거리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스승이라는 말은 출가 이후 완전히 새롭게 각인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나와 함께한 단어가 있었다면 그것은 ‘응시’였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한시도 선생님에게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곤 했습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어디에 저 많은 신기한 지식과 이야기들을 담아 두셨기에 매일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쏟아 내실까 신기하고 신기했습니다. 존경이라는 단어를 배우기 전부터 선생님에 대한 경외심이 먼저 내 맘속에 담긴 이유입니다. 늘 학교 가는 일은 즐거웠고, 내일은 내일의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삶의 희망이었습니다. 호기심이 많다는 이야기를 늘 들었습니다. ‘응시’라는 단어를 처음 배웠을 때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을 때 그냥 스쳐지나간 어휘에 불과했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단지 물리적인 바라보는 행위만이 아니라 내면적 바라봄이 수반된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흘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 지나침은 항상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나 봅니다. ‘응시’는 내게 많은 지적 욕망을 충족시켜주었지만 작은 실망과 아픔도 빨리 수반케 하였습니다.

4학년 때였습니다. 학업성적이 늘 최하위에 머물던 친구와 짝이었습니다. 하지만 성적과 무관하게 우리는 친구였습니다. 당시는 미국에서 무상원조 받던 시절이라 점심때가 되면 항상 덩어리째로 된 빵을 선생님께서 한 개씩 떼어서 나눠 주셨습니다. 어느 날 보니 짝지가 받은 빵은 속살이 빠진 채 아주 양이 적은 것이었습니다. 여러 개가 붙은 덩어리 빵을 툭툭 자르다보면 속살이 한쪽으로 쏠리기 일쑤 라서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을 두고 봐도 계속 속살이 빠진 빵을 받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며칠을 짝지 뒤쪽에 줄을 서서 빵을 나누어주는 선생님의 손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믿기지 않는 손놀림을 보고 말았습니다. 차례차례 손에 잡히는 데로 나누어 주시던 선생님께서 짝지의 차례가 되자 잡았던 빵을 놓고 속살이 빠진 작은 빵 덩어리로 바꾸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말하니 믿기지가 않죠?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몇 날을 두고 선생님의 빵 배식 모습을 응시했었고, 짝지는 늘 속살이 빠진 빵을 들고 와서 작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먹었습니다. 가끔 내게 두둑이 속살 붙은 빵이 오면 나누어도 먹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많은 생각을 했답니다. 선생님도 완벽하지 않구나 하는 생각과 어른들도 모두 바르게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일이기도 하지만 이 일을 응시한 이후로 제게는 어른과 저학년 시절 동경의 대상이기만 했던 선생님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또 하나 다른 일은 저는 지금까지 어린이들을 단 한 번도 어리다는 이유로 함부로 바라보거나 대하지 않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내가 그 나이 때 바라본 어른들이 바로 현재 내 모습이잖아요.

지금도 그때의 일은 스스로에게도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실이었답니다. 그 뒤로 지금까지 수많은 선생님들이 내게 나타났고 사라져 갔습니다. 아직도 너무 응시하는 습성이 남아 있는 것만 같습니다. 참으로 내 인생을 전부 걸 스승을 발견 하는 일은 참으로 만만찮은 것 같습니다.

스승의날이 지난 지 얼마 아닌 이 때에 할 말은 아닌 듯합니다만, 스승이라는 말과 늘 함께한 어줍지 않은 기억이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아 있으니 어쩌겠습니까? 그 뒤로는 지극히 담담하게 선생님을 바라보게 되었고, 그러한 시각에서도 여러 선생님들의 모습이 내 삶에 있어서 큰 등대 역할을 하여주었던 게 분명합니다.

한참의 세월이 흐른 후였습니다. 동기야 어쨌든 내 삶의 신비한 인연으로 새 스승을 만났던 것입니다. 너무 고답적이게 느끼시겠지만 처음 예불문에 나오는 시아본사(是我本師)라는 말을 듣고 막연히 얼마나 설레었는지 모른 답니다.

‘지심귀명례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至心歸命澧 三界導士 四生慈父 是我本師 釋迦牟尼佛)’

모든 언어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닿아 오는 느낌이 제각각일 것입니다. 처음 불교적 신심을 일으키기 시작했을 때 다가 온 ‘시아본사(是我本師)-나의 근본 되는 스승’이라는 언어가 주는 환희심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때로는 그 한 번의 소리를 해보고 싶어서 사찰을 찾아 예불한 적도 있었답니다. 지금은 매일 조석으로 그 스승을 찬미하는 노래로 삶을 엮어가는 복된 나날이 되었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어떤 이유로 출가의 길을 걷고 있더라도 근본 스승이신 석가모니부처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은 모든 스님들의 크나큰 자산이 되고 있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큰 환희심 가득 품고 출가 했었지만 사미 시절 늘 부러워했던 것은 수행이 깊고 법랍이 많은 큰스님들일수록 세존 석가모니부처님을 향한 사무친 존경심과 경외심이 더 깊고도 깊어 은은하기까지 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 스님들이 가지는 우리의 스승, 석가세존을 향한 그리움의 신앙이 처음 발심하는 불자들에게 여과 없이 고스란히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동일한 스승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것은 마치 목표점이 같은 사람들을 산행길에서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이요 기쁨일 것입니다.

저도 이제 어린 눈동자에 지워지지 않는 스승의 자리로 남겨져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늘 같은 방향을 응시하는 분들과 함께 마음속의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행복한 사문 성원 sw0808@yahoo.com
 


[1345호 / 2016년 6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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