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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이 통하지 않는 공부

기자명 법상 스님

세상에서 모든 일을 잘 해내려면 명확한 방법과 지침이 있고, 목표 지점이 있으면 된다. 이루어내는 방법을 알려주고, 그대로 하다보면 어떤 결과가 있다고 알려줘야 그 방법대로 일을 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무언가를 이루는 길이고, 그것이 우리가 그동안 모든 것을 해오던 방식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부는
세간의 공부법과는 달라
스스로 다양한 방편 통해
부딪쳤을 때 비로소 알아

그런데 불법 공부에서는 이런 기본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아니, 이런 방식으로 어떤 특정한 방법을 가지고, 열심히 하다보면, 어떤 특정한 결과가 있다라고 분명하게 결정적으로 얘기를 해 줄 수가 없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이 공부는 식(識), 알음알이로 하는 공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머리로 하는 공부가 아니다. 세간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간의 공부는 열심히 노력해서 결과를 얻는 인과의 방식이지만, 출세간의 이 공부는 그렇게 접근해서는 할 수가 없다. 특정한 방법으로 노력해서 결과를 얻으려면, 지금은 그 결과가 없어야 한다. 그 결과가 지금은 나에게 없으니 열심히 노력해서 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마음공부는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공부가 아니다. 깨달음은 언제나 드러나 있다. 즉심시불(卽心是佛), 지금 마음이 곧 부처다. 또 다른 찾을 마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 공부는 머리를 가지고 머리를 찾는다거나, 소를 타고 소를 찾는다는 표현을 쓴다. 이미 깨달음은 있기에 또 다른 깨달음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 공부는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공부가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확인하는 공부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력이나 방법이 필요 없다. 만들어내는데 필요한 모든 유위(有爲)의 노력이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공부를 무위법(無爲法)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공부의 길을 ‘길 없는 길’이라고도 한다. 부처님께서도 처음 성도 이후에 이 공부를 중생들이 받아들이지 못할 것을 우려하여 법을 펴기를 그만두려고 하셨다. 중생들은 머리로 이해하는 즉, 교리적으로 말하면 ‘식’으로 헤아리는 것밖에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불법공부는 이처럼 특정한 방법이 없다. 특정한 방법만이 옳다고 고집한다면 그것은 방편에 치우친 것이다. 참된 스승은 ‘이렇게 해라’거나 ‘이 방식으로 해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생각이 꼼짝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의식이 할 일이 없게 만드는 것이다. 육식(六識)을 묶어 두는 것이다.

선문답이나 화두라는 것이 바로 우리의 알음알이 지식이 꽉 막히게 만들어, 그 알음알이의 차원, 식의 차원을 곧장 뛰어넘어 몰록 의식의 도약을 이루기 위한 방편이다. 화두야말로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방법 없는 방법이고, 길 없는 길이다. 그러니 이 공부를 하려면 각오를 해야 한다. 길 없는 길로 나아가야 하고, 방법은 없지만 깨달아야 한다. 꽉 막힐 각오, 기존에 해 오던 방식을 거부할 각오, 방법 없는 방법에서 버틸 각오, 생각을 쓰지 않을 각오, 모든 격식에서 탈피할 각오, 그런 각오와 발심만 있다면 이 공부를 시작할 이제 아주 작은 기초를 놓은 것이다.

▲ 법상 스님
목탁소리 지도법사
물론 이 낯선 방법이 처음에는 전혀 와 닿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다양한 수행법과 기도를 실천하고, 불교대학에서 공부를 한다. 열심히 공부하고 갈고 닦는 유위의 수행을 방편으로 닦아 나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때가 되면 그간의 공부 방향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적으로 깨달으면서 이 낯설고 비상식적인,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방법 없는 방법, 길 없는 길 앞에 꽉 막히게 될 것이다. 비로소 아무 것도 모르는, 공부하기 좋은 시절을 만난 것이다.

 

 

 [1346호 / 2016년 6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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