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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자유’ 남용을 우려한다

기자명 이중남

종교사회학자 고 윤이흠 교수는 30년 전 한 논문을 통해 한국인이 갖고 있는 복합적인 종교 심성을 이렇게 표현했다. “인간관계는 유교적이고, 인생관은 불교적이며, 사랑이라는 행동철학은 기독교적이고, 운명관은 무속적이다.”

종교란 무엇인가? 세상에는 불교, 기독교, 힌두교, 이슬람교 같은 기성 종교만이 아니라 특정 종족이나 지역에만 신자가 국한된 민속 종교, 무속과 같은 민간 신앙 등 다양한 수준의 종교들이 있다. 여기에 유교나 도교처럼 철학적·정치적 원리를 추구하는 성격의 종교까지 감안한다면, 이 모두를 포괄하도록 종교를 정의하는 것은 실로 불가능하다.

그렇더라도 종교를 정의할 필요는 있고, 종교사회학에서는 대체로 성(聖)과 속(俗)의 이항대립 체계에 입각해 종교를 정의한다. 그 선구자인 뒤르껨(Emile Durkheim)에 따르면 종교는 속됨(the profane)의 대척점에 있는 성스러움(the sacred)의 영역, 즉 “성스러움에 연관된 믿음과 수행의 총체”이다. 학자마다 조금씩 다른 정의를 내놓고 있지만, 종교는 필멸의 인간이 도저히 미치지 못하는 불멸과 무한의 영역, 경외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불가항력적인 무엇으로 수렴한다.

불멸과 무한에 깊이 심취한 사람에게 세상이 중시하는 가치들은 덧없고, 기껏해야 상대적인 의미를 지닐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종교를 ‘절대신념체계’라고 한다. 윤이흠 교수가 다른 글에서 언급했듯 이러한 절대신념체계가 여럿이 공존하는 다종교사회에서 각각의 자기 절대성 주장이 초래하는 마찰은 불가피하다. 이러한 마찰은 여러 절대신념체계들 사이에 건전한 관계질서, 즉 문화적으로 세련된 자기반성과 관용의 지혜가 있을 때만 극복이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오랜 기간 여러 종교가 공존하면서도 사회적 차원에서 큰 갈등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점차 다문화사회로 접어들면서 오래 지속된 종교평화에 교란의 조짐이 보이고 있고, 종교의 자유라는 헌법정신을 얼마만큼 관대하게 혹은 엄격하게 해석하는 것이 옳으냐 하는 문제가 공론의 주제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 20대 총선에 ‘기독자유당’이 정당 기호 5번으로 참여했다. 선거공보 제1면 핵심 표어는 “동성애·이슬람·반기독악법을 꼭! 막아내겠습니다”였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 이슬람만 논하자면, 이슬람도 종교이므로 헌법상 보장된 신앙이나 포교의 자유를 당연히 누리는데 이것을 부인하는 말이 총선 공보에 버젓이 실려 있는 것이다. “이슬람(…)을 합법화하려는 세력들이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을 크게 위협”(제4면)한다는 말은, 그러니까 이들은 장차 누군가 이슬람을 합법화하지 않는 한 처음부터 줄곧 이슬람이 불법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공보를 더 들여다보면 ‘이슬람 특혜 반대’라는 꼭지 아래 다음 문구들이 실려 있다. “할랄(계율에 따라 무슬림들이 먹도록 허용된 음식)단지 조성 반대, 할랄단지 조성 계획 중인 익산시에 무슬림 30만명이 거주하게 되면 대한민국은 테러 안전국에서 테러 위험국으로 전락! 샤리아법에 따르면 몸을 가리지 않은 이교도 여인을 성폭행해도 합법! 우리나라 여성에 대한 성폭행 급증 및 안전보장 불가!”

정부와 지자체가 협력해서 익산에 대규모 식품 가공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이 실행되면, 이들의 눈에는 그 식품 가운데 할랄식품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무슬림 수십만이 익산으로 와서 살게 될 테고, 무슬림이 많아지므로 우리나라가 동북아 IS 테러거점이 되며, 여성들이 성폭행을 당해도 막을 길 없는 지옥 같은 미래가 훤히 보이는 것이다. 이쯤 되면 병리(病理)가 확실한데도, 그 정당이 하마터면 3% 득표를 얻어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배출할 뻔했다.

세상에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다고 치부해 버릴 수도 없는 것이, 한국 개신교를 대표한다 할 초대형 교회의 목사님들이 기독자유당의 고문 명단에 즐비하기 때문이다. 착잡하다.

이중남 젊은부처들 정책실장 dogak@daum.net

 [1346호 / 2016년 6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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