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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삼국유사-남산 순례 현장

불보살이 지켜온 남산서 신라인의 갸륵한 신심을 만나다

▲ 신라시대 보리사터로 추정되는 곳에 터잡은 미륵곡 석조여래좌상을 만난 순례단은 엷은 미소로 굽어보는 부처님을 마주하며 옛 사람들의 불상 조성방식을 세세히 살폈다.

“절과 절이 별처럼 벌여 있고, 탑과 탑들은 기러기 행렬인 양 늘어섰다. 법당을 세우고 범종을 매어다니 용상 같은 승려의 무리가 세상의 복전이 되고, 대소승의 불법이 서울의 자비로운 구름이 되었다.”

불교미술 보고인 남산 오르며
보리사터 미륵곡 부처님 만나
자애로운 미소에 환희심 느껴

바위 하나에 35개 조각 새긴
10m 탑곡 마애불상군에서는
부처님 모습 찾으며 원 세워

삼릉계선 선각육존불상 참배
친근한 미소로 순례단 맞이해

‘삼국유사’는 불교가 공인되면서 변화한 신라 서라벌을 이렇게 묘사했다. ‘절이 하늘의 별처럼 펼쳐져 있고 탑이 기러기 행렬처럼 늘어서 있는(寺寺星張 塔塔雁行)’ 서라벌에서도 남산은 바로 그 중심이었다. 산 정상이 494m에 불과할 정도로 높지도 않고, 동서 4㎞에 남북 8㎞로 넓지도 않다. 하지만 깊고 깊다. 높지도 넓지도 않은 이 산에 무려 60여개의 골짜기가 마치 주름처럼 새겨져 있다. 신라인들은 그 골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절을 짓고, 탑을 쌓고, 부처를 새겼다. 그 중에서 150개의 절터, 100여기의 탑, 100여기의 불상이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 옛 신라인들의 얼과 혼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있다.

‘법보신문 삼국유사 순례단’은 5월28일 그 산에 들었다. 지난 4월 신라불교의 정수로 불리는 황룡사지구를 순례한 데 이어, 두 번째 순례지로 불교미술의 보고로 일컬어지는 노천박물관 남산을 찾은 것이다.

옛 보리사터에 그대로 절을 지어 보리사로 이름 붙인 절에서 만난 ‘미륵곡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36호)’은 현재 경주 남산에 있는 신라시대 석불 가운데 가장 완벽한 형태로 알려져 있다. 광배 뒷면에 약사여래불을 새겨 놓은 불상은 순례단과 마을을 굽어보며 한없이 자애로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미소 덕분에 배례석에 무릎 꿇은 순례단은 벅차오르는 환희심에 ‘심쿵’했고, 저절로 머리 숙여 마음 속 깊은 비밀이야기를 털어 놓으며 세상살이 무거운 짐까지 내려놓을 수 있었다.

석조여래좌상의 항마촉지인 손 모양을 비롯해 불상의 옷자락, 광배의 화려한 장식과 좌대 모양까지 설명을 들으며 참배를 마친 일행은 북쪽 탑골로 걸음을 옮겼다. 옥룡암이라는 작은 암자 옆으로 길을 잡자 온갖 불보살상이 새겨진 거대한 바위가 길을 막았다. ‘탑곡 마애불상군(보물 제201호)’이다.

“하나의 바위면에 불상·비천·보살·스님·탑 등 다양한 모습들이 조각돼 있는데, 이는 곧 불교의 세계를 그리려는 장인의 뜻이 반영된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고 불상군을 설명한 문무왕(동국대 불교사회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박사는 “이 일대가 통일신라시대 신인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이라고 덧붙였다.

▲ 남산 탑곡 부처바위 앞에 선 순례단원들은 바위에 새겨진 불상, 보살상, 비천상 등을 찾아보며 손을 모았다.

신인사. 명랑 스님이 개창한 신라 최초의 밀교종파 신인종 소속 사찰이다. ‘삼국유사’ 권2 기이2 ‘문호왕법민조’에 따르면 명랑은 문두루비밀지법을 지어 당의 수군을 격퇴하고, 삼국통일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당과의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 짓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 신인종 계열의 신인사가 있던 자리에서 마주한 ‘탑곡 마애불상군’은 10m 높이의 바위 둘레에 불보살상을 비롯해 모두 35개에 달하는 조각이 새겨져 있어 ‘부처바위’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라도 하듯 바위 곳곳에 새겨진 불상, 보살상, 스님상, 비천상, 탑들을 찾아 낸 불자들은 저마다 손을 모아 원을 세우기도 했다.

황룡사 탑 복원도를 제작하면서 참고했다는 부처바위 전면의 거대한 탑을 뒤로하고 찾은 곳은 부처골이다. ‘감실석불좌상(보물 198호)’이 있어 이름 붙여진 부처골 계곡을 따라 15분여 올라가자 지금껏 봐왔던 불상과는 전혀 다른 불상이 객을 맞았다. 깊이 60㎝의 감실에 다소곳이 앉은 불상은 근엄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누군가와 눈 맞춤이 부끄러웠는지 살짝 낮춘 시선까지 보고 나니 영락없는 시골 할머니 모습이다. “이 친근함 때문에 ‘할매부처’로 불린다”고 운을 뗀 문 박사는 불상의 부조, 머리, 목, 법의까지 세세한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순례단은 그 설명에 귀 기울이며 알음알이와 상상의 폭을 넓혀갔다.

▲ 계곡에 서고 앉아 긴 세월을 지내온 불보살을 찾아 삼릉계로 들어서는 순례단.

남산은 높이에 비해 골이 깊어 외부인의 발길을 쉬이 허락하지 않았다. 동남산에서 서남산으로 자리를 옮겨 찾은 삼릉계도 녹록지 않았다. 그래도 골짜기를 오르면서 5분에서 10분마다 불상을 만날 수 있어 기쁜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가장 먼저 마주한 불상은 머리를 잃은 석조여래좌상이었다. “남산에는 목이 잘리거나 코가 깨진 불상이 많은데, 산사태나 지진의 영향이 있었고 조선시대 억불정책과 일제강점기에 그들의 만행이 더해진 결과”라는 설명에 이곳이 환희심을 불러일으키는 성지인 동시에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한 현장임을 깨닫기도 했다.

▲ 노천박물관으로 불리는 남산 순례를 마친 일행은 산을 나서기 전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제63호)을 참배했다.

머리를 잃은 석조여래좌상을 지나 만난 마애관음보살입상은 ‘할매부처’ 만큼이나 친근한 모습이다. 코를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의 손길이 닿았는지 코가 반짝거릴 정도였다. 그럼에도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마애관음보살입상을 뒤로하고 다시 골짜기를 따라 오르자 선각육존불상이 순례자를 맞았다. 자연 암벽의 동서 양 벽에 마애삼존상을 선으로 조각한 6존상이다. 그 조각기법이 정교해 우리나라 선각마애불 중 으뜸으로 꼽힌다. 여기서 가파른 산길을 10여분 더 오르면 거대한 자연 바위벽에 새긴 6m높이의 석가여래좌상을 만날 수 있다. 반쯤 뜬 눈으로 세간을 굽어 살피고 있는 마애석가여래좌상을 끝으로 하산길에 들었다. 올라갈 때와 다른 길로 접어들자 잠시 후 보물 제666호 석조여래좌상이 나타났다. 몸체와 불두가 분리된 것을 다시 맞췄고, 최근 화강석으로 목 부분을 다시 만들어 붙였다.

 
서남산 삼릉에서 만난 부처님들은 잘리고 갈라진 몸을 다시 찾아 하나가 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렇게 흉흉한 시대를 거치면서 울상 지을 만도 하지만, 모든 부처님들이 인심 좋은 시골의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아주 친근한 모습이다. 동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탑곡 마애불상군, 감실석불좌상 등 남산의 부처님들은 그렇게 한결같이 얼굴에 웃음을 머금은 채 엷은 미소로 순례단을 맞이하고 떠나보냈다.

그 미소는 마치 “세상 어렵고 힘든 일이 어디 한둘이랴. 일희일비하지 말고, 현재 삶에 충실하면 서원이 이뤄질 것”이라고 다독이는 따뜻한 손길처럼 와 닿았다. 순례단은 남산 골골에서 만난 부처님들의 그 미소 덕분에 환한 웃음으로 다음 순례를 기약하며 산문을 나설 수 있었다.

경주=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346호 / 2016년 6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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