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한 청년의 죽음 앞에서
21. 한 청년의 죽음 앞에서
  • 이미령
  • 승인 2016.06.07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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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 차지한 이들의 마음 여는 법문 필요

▲ 일러스트=강병호

스님, 안녕하세요. 은혜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에도 벅찼던 5월이 이미 지났고 어느 사이 6월 속으로 쑥 들어와 버렸습니다. 며칠 전 서울의 지하철 역사에서 또다시 사망사고가 일어났지요. 열아홉 살 청년의 죽음. 정말 잘 살아보려고 애를 쓰던 청년이 비극을 맞고 말았다는 사실이 가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잘 살아보려 애쓰던 청년
끼니 챙겨먹을 새도 없이 
종종걸음 처야하는 이들에게
부처님은 어떤 법문을 주실까
지독한 사바에 펴는 가르침은
지친 이들에게 위로가 되어야 


그러지 않아도 이 땅을 탈출하고 싶다는 젊은이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판국에 이 청년의 죽음은 아주 속 시원하게 답을 내려주었네요. “맞아. 지금 이 사회는 답이 없어. 그러니 살고 싶으면 도망쳐!”라고 말이지요.

청년의 유품인 가방에 들어 있던 물건들이 공개되면서 컵라면 하나가 뜻밖에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끼니 챙겨 먹을 사이도 없이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녀야 했다는 겁니다. 이 일 하나로 보자면 성실하고 의욕이 넘치게 부지런히 자기 삶을 개척한 청년이라며 기성세대들은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밥벌이의 고단함이 미래의 영광으로 과연 이어질지요?

‘법구경’ 주석서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아주 가난한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어느 날 아침, 세상을 살피다가 이 농부가 깨달을 인연이 무르익었음을 아시고 농부가 살고 있는 알라위라는 마을로 가셨지요. 마침 농부도 그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한달음에 나아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농부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가 기르던 소가 지난밤에 고삐를 풀고 어디론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서둘러 소를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부처님이 떠나가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소를 찾아야 하나, 아니면 부처님에게 나아가 가르침을 들어야 하나?’

농부는 고민했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가난한 농부로서는 일단 소부터 찾는 것이 순서입니다. 그는 한낮이 되어서야 간신히 소를 찾아 외양간에 단단히 묶어둔 뒤에 서둘러 부처님을 뵈러 달려갔습니다. 부처님이 머물러 계신 집에 도착한 것은 한낮이 지나도 한참이 지나서였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고삐 풀려 달아난 소를 찾느라 돌아다닌 농부가 끼니를 챙겨먹었을 리는 없습니다. 몸을 쓰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끼니는 정말 중요합니다. 하지만 농부는 밥 먹느라 늦장 부리는 사이 부처님이 떠나가실까 봐 쫄쫄 굶은 채로 달려왔습니다.

상상해보세요, 스님. 종일의 노동에 지칠 대로 지친 사람, 온몸에 땀내가 진동하지만 씻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끼니도 챙겨먹지 못해 배 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계속 들려오는 사람, 그런데도 인생의 가치를 일러주는 가르침을 한 자락이라도 듣겠다고 부랴부랴 달려온 사람.

저는 이 장면을 대할 때마다 책을 덮고 가만히 창밖을 응시한답니다. 그러고보니 ‘응시’라는 말을 썼네요. 스님께서 어렸을 때 선생님을 꼼짝도 하지 않고 지켜보았다고 하셨던 바로 그 응시가 ….

아무튼 창밖을 응시하다보면 부처님 심경이 되어봅니다. 부처님은 이 남자에게 어떤 법문을 들려주실까….

며칠 전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참변을 당한 그 열아홉 살 청년이 어쩌면 이 농부의 모습이 아닐까요. 아니, 본인들은 그런 정도는 아니라고 할지 몰라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숱한 사람들이 바로 그런 농부의 모습, 노동자의 모습이 아닐까요?

하루를 일해야 하루를 살아갈 돈을 벌고,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위에서 하라는 대로 해야 하는 사람들이지요. 어떤 이는 이런 삶을 거부할 테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긍정하고 받아들입니다. 제때 끼니 챙겨먹을 시간도 없고, 집에 와서는 씻고 자기 바쁘지만, 100만원 남짓 받는 돈으로 적금을 붓고 동생에게 용돈을 쥐어주면서도 절망하지 않고 어쩌면 몇 년 뒤 자신에게도 아름답고 떳떳한 미래가 펼쳐지리라는 생각에 하루하루를 살아내던 사람이 비단 그 청년뿐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부처님이시라면 이런 사람에게 어떤 법문을 들려주실까요?

‘법구경’ 주석서에 따르면 부처님은 그 농부를 보자마자 옆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 가난한 농부에게 음식을 가져다주시오.”

부처님의 의도는 아주 분명합니다.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에게 법문하면 법문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세상에 배고픔의 고통보다 더한 고통은 없다.”(‘법구경이야기3’, 무념·응진 옮김, 옛길, p.29)

다시 여쭙습니다. 만약 부처님께서 이 청년을 만나셨다면 어떤 말씀을 해주셨을까요? 그 청년이 구의역에서 변고를 당하지 않고, 그날 하루 노동을 무사히 마친 뒤에 지쳐서 돌아가던 길에 부처님을 만났다면 어떤 표정으로, 그리고 어떤 음성으로 그를 대하셨을까요?

지금 절과 스님들과 부처님 가르침이 펼쳐져 있는 세상은 바로 이런 곳입니다. 출세간 법문이 펼쳐지고 있는 곳은 이렇게 지독한 사바세계입니다. 게다가 석가모니 부처님 시절의 승가는 철저한 무소유의 방식으로 살아갔습니다. 탁발로 연명하고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수행에 매진했지만, 지금의 승가는 그렇지 않지요. 산속에 있는 암자에 기거하고 계신 스님들도 철저하게 세속과 관련을 맺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출가수행승의 삶은 ‘출가’적이지 못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렇게 재가자와 조금도 다름없이 세간과 연결되고, 세간의 바탕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다못해 필수품이 되어버린 자동차는 물론이요, 휴대폰의 자잘한 부품 하나하나도 저임금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세간의 스승이신 스님들은 어떤 법문을 베푸셔야 할까요? 가장 먼저, 세간을 가득 채운, 사느라 지친 사람들을 위로해야겠지요. 하지만 여기에서 멈추지 말고, 세상의 기득권층을 향해 그 주먹을 좀 펴자고 설득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들의 것을 빼앗지 말고, 저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스스로 기꺼이 세상을 향해 활짝 품을 벌리게 하는 일, ‘그런 건 더 가진 자들에게나 가서 말하시오’라고 퉁명스레 대꾸하는 이들에게 ‘당신이 먼저 해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라고 진심으로 설득하는 일, 이것이 이 시대, 파국으로 내달리는 세상의 유일한 감로법문이 아닐까…저는 상상합니다.

이만 맺습니다. 스님.

이미령 북칼럼니스트 cittalmr@naver.com
 

 [1346호 / 2016년 6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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