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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곡 최순우 선생을 기억하다

한국미 탐구했던 선구자
불교문화 선양에도 앞장
그 존재 자체가 큰 축복

6월4일 오후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제1강의실에서는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올해 탄생 100년을 맞은 혜곡 최순우(1916~1984) 선생을 기념하는 학술대회였다. 한국미술사연구소가 주관한 이날 학술대회는 그로부터 직접 강의를 들었던 제자 문명대(동국대 명예교수) 소장의 기조발표로 시작됐다. 이어 여러 후학들이 혜곡 선생의 연구 업적에 대해 조명하고, 권영필 고려대 명예교수를 좌장으로 혜곡 선생이 한국미술사 연구에 끼친 공헌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문명대 소장이 기조발표에서 소개한 것처럼 혜곡 선생은 평생을 국립박물관에서만 근무했던 최초의 ‘박물관맨’이고 학문적으로 한국미술사를 개척한 개성 3걸(최순우, 황수영, 진홍섭) 가운데 맏형이다. 또 한국도자사와 한국회화사를 한국 처음으로 전공한 개척자일 뿐만 아니라 우현 고유섭 선생에 이어 한국미 탐구를 진정으로 체득한 선구자이기도 하다.

혜곡 선생은 불교와도 인연이 깊었다. 불교문화재와 관련된 뛰어난 연구 성과들을 남겼는가 하면 일반인들에게 전통불교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알리는데도 적극적이었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밝혔듯 혜곡 선생은 이슬보다 영롱하고 산바람보다 신선한 글로 우리들 가슴을 언제나 한국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하게 했다. 그 중 부석사 무량수전을 소개한 글은 백미라 할 수 있다.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무량수전 앞 안양문에 올라앉아 먼 산을 바라보면 산 뒤에 산, 그 뒤에 또 산마루,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싶어진다.’

혜곡 선생은 일생동안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으려 애썼고, 그렇게 찾은 아름다움들에 대한 찬미를 아끼지 않았다.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이 뒤섞여 돌아가는 사바의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즐기고 글을 써내려갔다. 언젠가 그 스스로 밝혔듯 세상 사람들과 아름다운 것을 가리는 즐거움을 나누자는 취지에서였다.

아주 오래전 한 젊은 학생이 혜곡 선생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때 혜곡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온 천지에 충만한 아름다움과 추한 것들이 학생 눈에 보이게 되면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네. 아름다움은 학생의 발밑과 주변에 수두룩이 깔려 있으나 학생은 지금 그것을 밟고도 느끼지 못하고 바라보면서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네.”

▲ 이재형 국장
새것과 편리함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옛 것을 찬미하고 그 아름다움의 옥석을 가려내는 일은 외롭고 고된 일이다.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이 혼재된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간다는 것. 그것은 깨달음의 길을 걷는 수행자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국미를 탐구했던 선구자 혜곡 선생. 그가 남긴 언어의 사리들이 사무치도록 고맙다.

이재형 mitra@beopbo.com


 

[1347호 / 2016년 6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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