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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잃고 학교 무너졌지만 한국 불자 온정으로 회복될 겁니다”

지진 피해 1년, 네팔서 자비인술 - 상

▲ 마주협과 국제전법단이 주최한 네팔 의료봉사. 산모의 배속 아기가 초음파 영상으로 나타나자 탄성을 쏟아내는 네팔 여성들의 표정이 설산처럼 맑다.

해발 2575m. 네팔 수도 카트만두로부터 직선거리 약 100km. 구불구불한 산길을 시속 40km 이하의 버스에 실려 4시간 내내 오르고 올라야 비로소 도착하는 오지마을 무데(Mude)는 아득하게 느껴지는 아랫마을과 거리만큼 깊고 높은 산골이다.

마주협·국제전법단 의료봉사
의료진 등 봉사단 네팔 방문
오지마을 학교에 간이 진료실
1500여명에 인술…식사도 제공
주민들 심신 힐링하며 온정 나눠
산모 초음파 검사는 단연 화제

수수한 미소와 맑은 눈망울을 가진 4500여명의 주민들이 감자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이 마을에도 1년 전인 2015년 4월25일 지진의 폭풍이 엄습했다. 돌과 흙으로 지어 올린 가옥들이 힘없이 무너져 내린 탓에 당장 생활 터전을 통째로 잃어버린 이들은 마을에 그나마 있는 약국조차도 이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프다고 얘기할 상황도 아니며 생명을 유지하는 것도 그나마 다행이라는 그들의 넋두리가 3년 전 바로 이곳에서 자비의 의료봉사와 시설 지원을 펼친 마하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상임대표 진오, 이하 마주협)에 전해졌다.

▲ 지선 스님은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주민들의 사진을 찍어줬다.

마주협은 네팔의 무데를 다시 찾기로 발원했다. 당장 달려가고 싶었지만 지진 탓에 마을까지 닿는 길이 원만치 않다는 얘기에 꼬박 1년을 기다렸다. 드디어 네팔 부처님오신날인 5월 음력 보름을 하루 앞둔 5월20일, 마주협·국제전법단이 주최하고 아시아밝음공동체와 꿈을이루는사람들이 주관한 가운데 ‘2016 나마스떼! NEPAL & KOREA’ 깃발을 든 봉사단이 네팔로 향했다.

전 마주협 상임대표로 3년 전 네팔 의료봉사를 이끌었던 아시아밝음공동체 이사장 도제 스님은 현 마주협 상임대표 진오 스님을 대신해 이번에도 봉사단장을 맡았다. 대신 봉사가 진행되는 동안 진오 스님은 네팔 지진피해 복구를 발원하며 룸비니에서 카트만두까지 마라톤 수행을 펼쳤다.

▲ 학생들의 학업을 위해 니갈레 하이스쿨에 컴퓨터 4대를 전달했다.

3년 전 동국대 경주병원 의료진이 함께했다면 이번에는 네팔서 지난 10년 동안 10회 이상 의료봉사를 펼친 권현옥 진주 권현옥산부인과의원장이 마주협과 손을 잡았다. 권 원장은 3년 전 마주협의 무데 봉사 당시에도 의약품을 후원한 인연이 있었다. 네팔 지진 직후 세 차례에 걸쳐 긴급구호 의료봉사를 펼친 권 원장은 말 그대로 네팔 의료봉사 베테랑이었다. 여기에 김선미 영광군 덕산보건진료소장이 깊은 불심을 안고 진료 보조를 자청했고 숙련된 침술을 가진 김정조 거사도 한방 침 치료를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양·한방 치료가 함께 전개될 수 있었다. 20일 늦은 저녁 네팔에 도착한 일행은 카트만두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꼬박 버스를 타고 무데에 도착했다.

▲ 니갈레 스쿨 교사, 학생들과 함께한 회향식.

자동차와 사람과 매연으로 뒤덮인 카트만두에 비해 무데는 공기부터 맑았다. 만나는 주민마다 먼저 한국불자들을 알아보며 반가운 인사를 건넬 정도로 넉넉한 민심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3년 전과 같이 진료실 공간을 내어 준 니갈레 하이스쿨을 찾았을 때 도제 스님과 박재수 봉사팀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 유치원 어린이들이 사용하던 건물이 형체도 없이 내려앉았기 때문이었다. 만 2세부터 성인이 되기 전인 17세까지 300여명의 학생들을 위한 교육이 진행되는 니가레 스쿨의 건물 5동 가운데 유치부, 초등부 건물은 지진으로 인해 완전히 붕괴됐다. 오히려 3년 전 마주협이 신축한 연꽃 그림이 그려진 해우소 건물만 멀쩡하게 남아 바로 옆이 유치원 자리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학교 아래 간이 건물을 짓고 학습 지도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예산이 턱없이 부족해 건물 재건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하루카 비하드 스페스터 교장의 설명에 막막함이 교차했다.   

봉사단 일행은 무데에 도착하자마자 지체 없이 교실을 병원으로 재단장했다. 진찰실, 진료실, 약국, 침술실이 구성됐으며 빵과 공책 등 선물을 전달하는 곳, 시력검사실, 보디페인팅이 진행되는 공간은 별도로 마련됐다. 무엇보다 진료실의 약품이 눈길을 끌었다.

▲ 침술 치료 중인 모습.

▲ 진료실에서는 치료도 병행됐다.

권 원장에 따르면, 직접 조제해 온 위장약, 소염제, 알레르기약을 비롯해 대한의사회에서 지원받은 다양한 종류의 최신 약품 그리고 비타민, 파스 등을 포함해 약 비용만 2300만원이 넘었다. 한쪽에는 상처 치료를 위한 비품도 준비 됐다. 특히 커튼으로 차단된 건물의 한쪽 방에는 초음파실이 마련됐다. 이 밖에 학교에서 걸어서 1분 정도 떨어진 곳에는 공양간도 마련됐다. 진료를 위해 평균 2~5시간 걸어서 찾아오는 산간 오지 주민들을 위해 현지의 전문 주방장을 초빙해 네팔식 요리를 현장에서 만들어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어느새 니갈레 스쿨은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든 주민을 위한 힐링 공간으로 변신했다.    

진료는 5월22일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뤄졌다. 이미 학교 입구에는 한국 의사가 왔다는 소식에 새벽부터 집을 나선 주민들이 줄을 섰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주민들과 학생들이 늘어가면서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한 고민은 사실상 필요 없었다. 니가레 스쿨 교사들의 도움으로 진료를 위한 질서가 원만하게 유지된 덕분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아픈 곳을 진찰하고 약을 전달하는 권 원장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진료실 밖을 나오지 않을 만큼 열정을 쏟아 냈다. 대학생 봉사자들은 교대로 약방 보조를 맡았고 진료가 한창 진행되는 사이 도제 스님과 이번 봉사단 부단장으로 동참한 조계종 군종특별교구 총무국장 지선 스님은 폴라로이드 사진 촬영을 담당하며 어린이, 학생, 마을주민들과 웃음 가득한 시간을 책임졌다. 봉사자들은 바디페인팅을 비롯해 풍선 아트, 비즈 공예의 장을 펼치며 인기를 모았다.

지선 스님은 “의료봉사는 몸을 치료하고 약을 전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아픈 몸을 치료하는 것과 더불어 건강한 미소를 함께 나누는 것도 봉사의 큰 부분”이라며 학교를 찾은 주민들과 어우러지는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마지막 3일째에는 오전 6시부터 오후 1시까지 3일간 매일 500명씩 1500명의 환자가 진료와 함께 약을 받았다. 니갈레 스쿨 학생들과 진료를 받지 못한 주민까지 포함해 3일 동안 2000명에게 풍성한 점심공양이 제공됐다. 산모와 주부들을 위한 초음파 검사는 단연 화제였다. 초음파 진료 소식이 마을에 전해지면서 정작 젊은 부인보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먼저 초음파 진료를 보고 싶다는 문의가 늘어나 결국 나이를 제한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이번 무데 의료봉사의 초음파 진료 과정에서는 결혼 후에도 임신이 되지 않는다고 찾아온 21살 신혼의 부인에게서 난소종양이 발견되기도 했다.

권 원장은 “생명이 위험하다는 진단에도 부인은 쉽게 수술을 결정하지 못했다. 자초지종을 확인해보니 이번 지진으로 인해 집을 잃은 상태여서 재정적인 부담으로 수술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며 “급히 남편을 함께 불러 상담을 갖고 부부 동의 아래 카트만두에 있는 전문 병원과 연결해 바로 수술 날짜를 잡고 수술비 전액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3일 동안 쉴 틈 없는 봉사를 마친 뒤, 니갈레 스쿨 모든 교사와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봉사단을 위해 감사의 회향식을 준비했다. 니갈레 스쿨 측은 “한국불자들 도움으로 무데 마을이 한층 건강해졌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학교와 주민들이 하루빨리 마을을 복구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인사했다. 회향식에서 도제 스님은 니갈레 하이스쿨에 컴퓨터 4대를 전달하며 학생들의 학업을 응원하는 교육 불사도 빼놓지 않았다.

도제 스님은 “무너진 학교 건물들이 다시 제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많은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당장은 어렵지만 발원이 모이면 소중한 인연이 닿으리라 믿는다”며 “더 큰 원력으로 한국의 불심을 모아 다시 네팔을 찾고 싶다”고 덧붙였다.

마을 곳곳에서 만난 주민들은 떠남을 아쉬워하는 눈빛으로 무데를 떠나는 봉사단 버스를 향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던 히말라야의 눈 덮인 봉우리들도 함께 손을 흔들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으리라. 

네팔 무데=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1347호 / 2016년 6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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