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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

제자리 떠난 국보, 100년 동안의 수모

 
우리나라 부도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국보 101호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 팔각형 기단부에 배가 부른 형상의 몸체가 흔히 떠올리게 되는 부도의 양식이라면, 지광국사현묘탑은 사각형 기단부에 탑 모습의 몸체를 갖춘 파격적인 양식으로 조성됐다. 또한 기단과 탑신 각 면마다 풍부하고 화려한 장식들로 장엄돼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고려시대 국사(國師)였던 지광국사 해린 스님을 향한 당대의 존경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이 부도는,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100여년 동안 타지를 떠도는 기구한 운명을 겪는다.

1911년 해체돼 서울 옮겨져
명동 등 전전하다 일본 반출
포탄 맞아 상륜부 산산조각
올해부터 전면적 보존처리

지광국사현묘탑의 비극은 1911년에 시작된다. 지광국사 시대에 전성기를 구가했던 법천사가 임진왜란을 거치며 폐사지가 된 이래 지광국사현묘탑비는 400여년 동안 사실상 방치된 상태였다. 아무도 관심이 없던 법천사지를 한 일본인이 눈여겨보았으니, 그는 지광국사현묘탑비를 정원 석물로 팔겠다는 마음을 먹고 주민들을 동원해 탑을 해체하기에 이른다. 일본인 상인에게 넘어간 지광국사현묘탑비는 서울로 옮겨진 뒤 명동, 남창동 등을 전전하며 한낱 장식용으로 전락하는 초라한 신세가 된다. 1912년에는 바다를 건너 오사카로 건너가기까지 했는데, 탑을 사들인 일본 귀족 후지타(騰田)가 불법으로 반출한 것이었다.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자 조선총독부는 어쩔 수 없이 반환을 지시했다. 지광국사현묘탑은 기증받는 형식을 통해 조선총독부의 소유가 되어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가 열리고 있는 경복궁 내 건춘문 부근으로, 1932년에는 경회루 앞으로 옮겨진다.

이후에도 파란만장한 역정은 계속된다. 해방을 맞이한 기쁨도 잠시, 6·25전쟁이 발발하고 1년이 지난 1951년 포탄에 맞은 상륜부가 산산조각 나버린다. 처참한 모습으로 6년을 버틴 지광국사현묘탑은, 1957년 경복궁을 산책하던 이승만 대통령의 눈에 띄어 긴급 복원 절차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콘크리트로 땜질을 하는 방식이었기에 완벽한 복원이 아니었고, 게다가 콘크리트의 하중을 지탱하기 위해 박은 60여개의 철심은 부식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이후 다시 한 번 해체돼 고궁박물관 뒤뜰로 옮겨지고, 마침내는 더 이상의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는다. 2005년 용산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세워져 다른 문화재들이 대거 이동하는 가운데서도 안전을 장담하기 힘들어 이전 대상에서 제외됐던 것이다.

그리고 2016년. 그동안 도둑맞은 것으로 알려졌던 기단부 사자상이 사실은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돼 있었다는 게 확인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문화재청과 국립중앙박물관의 소통 부재에서 비롯된 이 사건은 문화유산 관리 행정의 난맥상을 드러낸 촌극이었다. 이런 가운데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광국사현묘탑의 전면적인 보존처리를 결정했다. 3월22일 해체공사 보고식이 열렸으며 4월2일 해체가 완료됐다. 4월6일에는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로 운송돼 본격적인 보존 작업에 돌입했다. 2019년을 목표로 진행되는 보존처리 과정에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00년의 수모는 과연 종지부를 찍을 것인가.

지광국사현묘탑의 기구한 운명은 제자리를 떠나면서부터 시작됐다. 굳이 지광국사현묘탑의 파란만장한 역정을 들지 않더라도 보존처리 후 이 탑이 향해야 할 곳은 박물관이 아닌 법천사지여야 하지 않을까. 문화재는 본래 자리에 있을 때 본래 가치를 드러낸다. 지광국사현묘탑뿐 아니라 제자리를 떠난 지방문화재들에 대한 환수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돼온 것은, 이 땅의 문화유산들이 지닌 가치가 온전히 보존돼야 하기 때문이다.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347호 / 2016년 6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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