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 관계성의 성찰

기자명 최원형

우리가 버려야할 것은 쓰레기만이 아니다

최근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 한 장이 내게 여러 생각거리를 던져줬다. 연휴가 끝난 다음날 지역의 한 수변공원의 풍경을 찍은 사진이었는데 쓰레기로 발 디딜 틈 없는 그곳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환경미화원의 뒷모습이 다소간 충격적이었다. 쓰레기양에도 놀랐지만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그 풍경은 마치 그곳에서 놀던 사람들이 일제히 자리를 잠깐 뜬 게 아닌가 싶었다. 앉았던 깔개조차 그곳에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전날 밤에 비라도 내렸다면 저 많은 쓰레기들의 대부분은 바다로 쓸려갔을 테고, 어느 바다인가를 둥둥 떠다녔을 수도 있겠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아찔했다.

이곳에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행태는 올해만 특별했던 게 아니고 몇 년째 되풀이 된다 했다. 왜 사람들은 이토록 많은 쓰레기를 내버려둔 채 돌아갔을까? 돗자리마저 일회용일 만큼 세상의 물건이 너무도 싸고 흔해진 때문은 아닐까? 거기다 편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가져왔던 것들을 되가져가려면 사실 번거롭다. 특히 깔개는 부피도 큰데다 묻은 오물을 씻고 말려서 보관을 해야 하기에 야외놀이하고 나서 정리할 때 가장 번거로운 물건 가운데 하나다. 이런 마음에 용기(?)를 준 것은 주위 사람들이었을 수도 있다. 한 두 무리의 사람들이 주섬주섬 자리를 뜨면서 먹고 마시고 남겨진 쓰레기들을 고스란히 두고 떠났고, 그런 행동은 주변사람들에게로 순식간에 학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이미 염치란 것을 잃어버린 것 같다.

먹고 마시면서 사람들은 무엇을 얘기했을까 상상해본다.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얘기들을 나누지 않았을까? 물론 힘들고 어려운 얘기들도 오갔을 테다. 그럼에도 결국엔 밝고 희망 가득한 결론으로 마무리하고 즐겁게 돌아가지 않았을까? 가족단위로 나와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행복했을거라 미루어 짐작한다. 그렇게 그곳에 온 사람들은 각자 행복하고 훈훈하게 내일을 꿈꾸며 돌아가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양심을 놓고 갔다.

두고 간 양심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많은 존재들을 힘들게 한다는걸 그들은 알까? 쓰레기를 치우느라 고생하는 환경미화원부터 값싼 물건을 만드느라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겨우 입에 풀칠할 일당을 받는 저 타국의 노동자들, 바다로 떠내려간 쓰레기로 인해 고통을 겪는 해양생물에 이르기까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구에서 꺼내 쓸 자원은 매우 유한하다는 데 있다.

남태평양에 나우루 공화국이라고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독립공화국이 있다. 그 나라 전체를 덮고 있던 인광석이 유럽에서 최고급비료로 석유보다 비싸게 팔리면서 세상에서 가장 부자나라가 되었다. 자동차로 30분이면 나라 전체를 돌 정도로 작은 섬나라에는 최고급 자동차가 즐비했다. 그야말로 흥청망청했다. 그러다가 수출하던 인광석이 고갈되면서 나우루는 현재 최빈국이 됐다. 지금 우리의 삶이 나우루의 운명과 뭐가 다를까?

물건을 언제까지 찍어낼 수 있을까? 우리가 버린 쓰레기를 지구는 언제까지 수용할 수 있을까? 가난한 나라들이 선진국들의 쓰레기장이 되어가고 있고 힘없는 지역이 도시의 쓰레기장이 되어가고 있다. 태평양 대서양 할 것 없이 해양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해양쓰레기의 80% 이상은 플라스틱이 차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플라스틱들은 해양 동물들의 몸속으로 들어가 결국 목숨을 앗아간다. 이 모든 관계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 인과의 관계를 각자의 생활에서 깨달아야하지 않을까? 만들어 쓰고 버린다고 모든 게 거기서 끝일 수 없다. 지구는 닫힌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들은 지구 어딘가에 계속 머무를 것이다. 그나마 분해가 가능한 것은 시간이 해결해줄 테지만 플라스틱처럼 아예 분해가 안 되거나 몇백 년이란 시간차를 두고 서서히 분해가 진행되는 것들은 어떡할 것인가? 결국 우리가 버린 것들이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기후변화로든 오염으로든 그 무엇으로든.

인류가 직면한 문제의 원인에 대한 진단은 여러 가지이겠으나 그 가운데 내 것이라고 고집하는 것에서 출발한 문제도 적지 않다고 본다. 그 욕망의 출발인 마음을 세밀하게 살피며 깨어있는 삶을 살 때 환경, 생태문제가 비로소 눈에 들어올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쓰는 이 물건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한 세밀한 통찰을 통해 곧장 환경과 생태 문제를 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개인의 수행을 통해 나와 연결된 존재들에 대한 고마움은 우리 삶을 생태적으로 살지 않고는 못 견디게 할 테니까.

우리가 버려야할 것은 쓰레기가 아니라 게으른 습관이자 안일한 마음이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347호 / 2016년 6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