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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예화와 불교문학 ②

스토리에 진리를 더해 생명력을 갖게 해야

산사로 가는 길, 문득 숲길 거닐며 우리네 삶의 이정표가 되어준 원효 스님의 화쟁사상을 떠올렸다. 스님의 화쟁은 반목과 대결논쟁(諍)을 화합(和)으로 이끈 사상이다. 자연이치를 비유해 조화롭게 풀어낸 화쟁사상은 산수정신이라는 민족정서와 동양사상의 뿌리이기도 하다.

‘화쟁’ 관련 다양한 문학작품
원효 스님 설화 속 박제 아닌
현재 살아있는 인물로 재탄생

남북대립과 요동치는 동북아정세, 미세먼지 피해까지 서민 몫으로 돌아오는 사이에 적자생존의 사회에서 중생들은 제각기 다른 파장으로 출렁이고 허덕이면서 갈등으로 고해의 바다에서 신음 중이다. 이런 가운데 3월15일 ‘한국작가회의 회보’에 실린 ‘원효’라는 시 한 편을 음미하며 불교문학의 치유효과에 주목했다.
‘원효는 말했다. 의상더러 삼국통일 안 되도 좋으니 제발 전쟁하지 말자고 원효는 피를 토하며 보리수나무 목탁을 쳤다.고구려 백제 신라 사람들 총칼로 서로 죽여서는 안 된다고 궁극으로는 통일해야 한다고…그래서 당나라를 가다가 발길 되돌렸다. 그의 깨달음 화쟁 일체유심조도 그렇게 하여 경주 토함산 석굴암대불이 되었다. 그래요 요샛말로 중국과 미국도 가지 않고 러시아와 일본일랑 가지 않고 한반도 삼천리 곳곳에 석굴암대불이 되었다.’(김준태, ‘원효’ 전문).

짧지만 시대적 메시지가 담겼다. 스님의 일대기도 요약됐다. 진리는 스토리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우리의 마음과 사유를 통해 새로운 의미와 생명력으로 작동한다. 스님은 “신라와 백제, 고구려는 한민족이므로 서로 다투지 말아야 하고, 부득이 싸우더라도 외세를 끌어들이는 것은 안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민중 교화승, 반전주의자 원효 스님은 일연 스님에 의해 재탄생했고 일제강점기 ‘매일신보’ 이광수에 의해, 최근 소설가 한승원과 시인 김준태, 이병주의 공저인 단행본을 통해 대중 곁에 다가섰다. 신화와 전설 속에 박제된 스님의 스토리가 감성과 정겨운 숨결로 젖어들 수 있어 좋다. 번역에 의존한 딱딱한 교리중심이 아니어서 좋다.

책 속에 이런 문장이 있다. ‘원효는 마른침을 삼키고 나서 말을 이었다. 그물에 걸려 있는 새는 날아가지 못하지만, 바람은 그물코에 걸리지 않고 훨훨 날아갑니다.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늘 부딪치는 쇠붙이 같은 중생들은 쟁그렁 거리는 소리에 걸려있고, 참된 진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말이 옳다고, 정의라고 고집하는 중생은 입씨름 소리에 걸려 하늘로 날아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귀는 만파식적의 소리를 만들지 못합니다…’(한승원, ‘원효’).

두 부류의 문인들은 각각 다르면서 비슷한 스님의 사상과 일생을 이야기했다. 그 자체로 화쟁사상의 좋은 사례다. ‘마치 바람 때문에 고요한 바다에 파도가 일어나나 파도와 바다는 둘이 아니다. 우리의 일심에도 깨달음의 경지인 진여와 무명이 동시에 있을 수 있으나 이 역시 둘이 아닌 하나이다.’ 허공의 공과 물질의 색은 불일이불이 즉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님이라. ‘대승기신론소’에서는 ‘동일함(一)은 동일하지 않음(非一)에 상응하므로 다름에 상관적이어서 다름과 같이 동거하며, 다름(異)은 다르지 않음(非異)에 상응하므로 동일함에 상관적이어서 동일함과 동거한다’고 역설했다. 그렇게 서로에게 여백이 되고 작용과 반작용으로 공생하는 게 우리네 삶이 아니겠는가. 서로 다르지만 연계되어 있다는 화쟁적 사유가 문학의 정서적 교감을 통해 새로운 울림으로 다가온다.

서두에서 언급한 나무는 물과 불(햇볕)과 바람과 흙의 성징들을 함축하는 차이의 상관성을 상징한다. 연기법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차연(差延=difference)과도 일치한다. 차연은 차이와 연기의 함의어다. 문장의 단어도 서로 연결돼 있는 것은 물론 삼라만상이란 차이의 문화와 서로 연계돼 있다. 원효 스님은 더 나아가 ‘금강삼매경론’에서 ‘깊고 넉넉함’의 담연(湛然)을 설파했다. 산사 내려오는 길의 계곡물은 참 맑았다. 하늘이 내려와 깊이와 넓이가 가없다. 하늘인가 싶으면 숲이고 숲인가 싶으면 하늘이다. 그렇게 편안하게 비추고 적정한 깊이의 본질이 대지혜의 참모습일까? 그렇게 좌정하신 원효 스님이 그리운 세상이다. 

박상건 동국대 겸임교수 pass386@hanmail.net
 

[1347호 / 2016년 6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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