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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승 상처, 무너진 사찰보다 외로움이 곪게 했더라”

지진 피해 1년, 네팔서 자비인술 - 하

▲ 법당이 반이상 소실된 요사채 앞에서도 맑은 미소를 띤 스님들을 위해 108자비손은 한국 스님과 불자들의 원력을 모아 3년 간 식량 지원을 약속하고 17000달러의 불사 기금을 보시했다.

네팔의 오지마을 무데에서 3일 동안 쉼 없는 의료봉사가 회향됐다. 축구로 치자면 여기까지는 전반전이었다. 권현옥 진주 권현옥산부인과의원장(108자비손 의료봉사회장)은 무데 의료봉사를 함께 이끈 마하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와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눈 뒤 다시 의약품을 정비하고 일행보다 한발 앞서 카트만두를 향했다.

3일 동안 오지마을 무데 이어
1박2일 달려 밤띠본달 도착

백련불교문화재단·108자비손
무너진 도동사에 식량지원
불사 기금 1만7000달러 전달

지운 스님 소리 없이 8000달러
권현옥 원장 동자스님도 후원
10일간 총 5곳서 2000명 진료

무데 봉사를 마친 다음날인 5월25일, 권 원장은 지운 스님을 만났다. 지운 스님은 한국과 인도를 오가며 꾸준히 티베트불교 수행을 이어 온, 한국에서 티베트 불교하면 단연 손꼽히는 베테랑 수행자다. 스님은 권 원장이 지난해 9월 다람살라를 찾아 의료봉사를 펼칠 때 같은 국적의 수행자와 의료봉사자로 만났다. 당시 스님은 차후 봉사 일정이 있으면 후원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 자리가 이날 마련된 것이었다. 권 원장, 지운 스님과 더불어 한국에서 출가한 네팔스님인 여상 스님, 권 원장과 의남매를 맺을 정도로 의료봉사의 전적인 통역을 담당해 온 불자 네팔 가이드 돌마 보살도 함께 네팔 의료봉사의 후반전을 킥오프했다.

▲ 도동사 동자 스님들을 진료하는 권현옥 원장.

▲ 혈압을 체크하는 네팔 출신 여상 스님.

이들이 향한 곳은 카트만두에서 직선거리 230km, 카트만두를 출발해 차로 4시간이 걸린 무데에서 다시 지프차로 꼬박 7시간을 더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리고 달려 1박2일만에 도착한 ‘밤띠본달’ 마을이었다. “진짜 멀다”라는 말을 연신 넋두리처럼 내뱉을 만큼 까마득한 산 속에 자리한 이 마을은 네팔에 티베트불교가 전해지기 시작할 때부터 불교 신앙을 간직해 온, 주민의 100%가 불자인 순수 불교 마을이었다. 네팔 국내선 비행기가 운항되지 못했던 불과 30년 전만 해도 히말라야 트레킹을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 가야 했던 이 오지마을까지 권 원장 일행이 찾아간 이유는 단 하나였다. 지난해 네팔을 뒤덮은 강진으로 인해 마을 주민들의 재적사찰인 도동사가 상당수 무너져 내린 탓에 이곳에 거주하는 동자 스님들이 천막 속에서 혹한의 추위를 견디며 겨울을 보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밤띠본달은 돌마 보살의 고향입니다. 그를 통해 피해 소식을 듣고 지난해 6월 제2차 지진피해 지역 의료봉사 당시 다른 곳을 제쳐놓고 이곳으로 달려왔을 때, 밤띠본달과 인근 마을에서 찾아온 1000여명의 주민들은 자신들보다 사찰을 더 걱정했어요. 동자승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이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이야기를 마냥 흘려듣기만 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권 원장과 함께 밤띠본달을 찾았던 진오, 운천 스님 등은 1년 동안의 양식이 될 쌀 지원을 약속했다. 그리고 딱 약속한 1년이 지났다. 도동사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일행은 기대감과 걱정을 안고 5월26일 오전 밤띠본달에 도착했다.

▲ 주민들에게 선물을 전하는 지운 스님.

2/3가량이 소실될 정도로 극심한 피해를 입은 마을은 상당히 많은 복원이 되어 있었다. 주민들이 정부 지원을 기다리기보다 자체적으로 복구위원회를 구성해 1년 내내 쉼 없어 각 건물의 재건축에 나섰고, 산간마을 주민 특유의 성실함도 한 몫을 담당했다는 것이 돌마 보살의 설명이었다. 벽돌 하나하나 새롭게 건립된 게스트하우스 옆 간이 건물에 의약품을 펼치고 진료실을 꾸린 권 원장은 소식을 듣고 일찌감치 줄을 서 있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진료를 시작했다. 네팔인 여상 스님은 진료를 대기하는 주민들의 혈압 수치와 어디가 아픈지 확인했고, 지운 스님은 준비해 간 선물 등을 나누며 미소로 주민들과 대화를 나눴다.

주민 250여명을 대상으로 진료를 펼친 다음날, 일행은 이른 아침공양을 마치자마자 도동사를 찾았다. 마을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도동사는 수백년의 기품을 고요히 간직한 티베트 닝마파의 전통 도량이었다. 주지 빼마 치링 스님은 “공양미를 지원해 주신 덕분에 이곳의 스님들이 굶지 않고 공양을 이어갈 수 있었다”며 도량에 주석하는 모든 스님들과 함께 따뜻하게 환대했다. 하지만 권 원장이 불사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스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도동사 복원추진위원회에 따르면, 주불이 안치돼 있던 법당은 절반이 무너져 내린 탓에 비바람을 막는 간이 지붕과 천막으로 겨우 덮어 둔 상태였고 15동에 이르는 요사채들은 대부분 소실, 법당 옆 작은 천막 한 곳에서 스님들이 모여 지내는 실정이었다. 게다가 임시 법당을 마련해 부처님을 이운하고 예경을 올리고는 있지만 언제까지 간이 건물에서 60여명이 넘는 스님들이 함께 공부할 수는 없었다. 운반비 등을 고려하면 도동사를 복원하는 불사 비용은 6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 가운데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연한 금액은 아직 3만 달러에 불과해 1년 째 도동사 불사는 시작도 하지 못한 상황이라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었다.

조심스럽게 한국 스님들이 도동사의 복원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한국에서 권 원장을 통해 도동사 소식을 접한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스님들이 모은 1만 달러였다. 여기에 밤디본딸을 함께 찾은 지운 스님도 7000달러를 보시해 한국스님들이 모은 총 1만7000달러의 기금이 전달됐다. 여기에 권 원장은 차후 2년 동안의 식량지원을 약속하며 2년차 첫 3개월 식량지원금 300달러도 함께 보시했다. 이 기금은 108자비손 의료봉사회 회원도량인 부산 금천선원의 보시라고 권 원장은 밝혔다.

▲ 법당과 요사채 대부분이 무너진 도동사.

예정에 없던 불사기금 전달에 스님들은 물론 함께 자리한 주민들도 모두 깜짝 놀랐다. 지운 스님은 “뜻있는 곳에 회향하기 위해 준비해 온 기금이었다. 부처님 도량을 건립하는 것엔 국적이 따로 없다고 생각한다. 신행 도량이 여법하게 재건되길 바라는 마음 뿐”이라고 전했다. 지운 스님은 도동사 불사금 지원에 이어 밤띠본달 아랫마을에 위치한 여상 스님의 고향 사찰에도 소리 없이 1000달러를 불사 기금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깜짝 불사금 전달에 이어 절에서 생활하는 모든 동자승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진료하며 비상약까지 전달한 권 원장 일행은 이날 오후 밤띠본달에서 내려와 여상 스님의 고향 마을에서도 200여명의 주민들을 위해 자비의 인술을 펼쳤다. 이어 다음날에는 카트만두 양래쇳에 위치한 네팔 유일의 강원, 선원, 율원을 모두 갖춘 ‘우르겐 도르제 쵸링’ 사원을 방문했다. 이곳은 사원 내 보건소가 갖춰져 있을 만큼 의료봉사를 진행한 곳 가운데 시설이 가장 훌륭했지만 한 방에 모여 지내는 동자승들 건강 상태는 오히려 열악한 시설이지만 깊은 산속 청정한 공기를 마시며 생활하는 밤띠본달 스님들보다 좋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특히 온 몸이 긁어서 곪아버린 상처로 덮인 9살 카르마 스님을 진료할 때 권 원장을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한 달 전 부모가 무스탕에서 이곳까지 데려다 놓고 떠났다는 진료소장의 말에 권 원장은 “이 상처는 부모를 향한 어린스님의 간절한 그리움과 외로움의 표현”이라며 “아무리 스님이지만 잘 보살펴 드려야 한다. 아직 어린이다. 이대로 방치하면 건강에 큰 문제가 생긴다”며 즉석에서 1년 동안의 후원을 약속했다.

무데에서 유로깨 비구니 사원까지 10일간 총 5곳에서 2000여명을 진료하고 공항에 들어선 권 원장은 잠시 말을 잊은 채 두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인천행 비행기를 기다렸다. 문득 여권을 든 그의 손을 바라보니 50대 나이 치고는 주름이 참 많았다. 무거운 약 가방을 척척 들어 옮기고, 청진기를 네팔 부인들의 가슴에 조심스레 대고, 어린 카르마 스님의 상처를 어루만질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주름이었다. 그의 두 귀에 꽂은 이어폰 사이로는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찬불가가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네팔 밤띠본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1348호 / 2016년 6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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