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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석천사 십층석탑

격동의 근현대사가 안긴 수난의 역사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유물은 중앙통로에 전시된 국보 86호 경천사 십층석탑이다. 고려 충목왕 4년(1348)에 세워졌다는 기록이 1층 목돌에 남아있는 이 탑은, 불보살과 꽃무늬 등이 빼어난 조각수법으로 새겨져 있고, 전체적인 모습 또한 아름답게 균형 잡혀 있어 보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하지만 탑이 원래 있었던 곳은, 그 이름으로 알 수 있듯 경기도 개풍군(현재 개성시) 광덕면 부소산 경천사였다. 경천사 십층석탑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우리는 한민족이 겪었던 수난과 비애를 만날 수 있다.

일본인 학자에 의해 알려져
1907년 일본으로 불법반출
돌아온 후에도 40여년 방치
10년 걸친 해체·복원 진행

때는 1902년. 일본인 학자 세키노 다다시(關野貞)가 십층석탑만 덩그러니 남은 경천사지를 찾았다. 그는 경천사지에 대한 학술조사를 실시했고, 1904년 그 결과를 보고서 형식으로 발표했다. 당시 보고서는 큰 반향을 일으키며 십층석탑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다. 그리고 1907년, 특사 자격으로 온 일본 대신 다나카 미쓰아키(田中光顯)가 고물상인을 회유해 십층석탑을 반출하려 했으나 주민들의 반발에 무산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후 다나카는 일본 헌병들까지 동원, 총칼로 위협하여 십층석탑을 해체해버린다. 해체된 부재들은 가마니에 담겨 일본으로 옮겨졌는데, 이 과정에서 상당부분 크게 훼손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야만적인 약탈이 자행되자 ‘대한매일신보’와 ‘Korea Daily News(코리아 데일리 뉴스)’의 발행인이었던 영국인 베델(Ernest T. Bethell)이 이 사실을 폭로하고 반환을 촉구했다. ‘Korea Review(코리아 리뷰)’를 발행했던 미국인 헐버트(Homer B. Hulbert)도 일본의 영자신문과 ‘New York Post(뉴욕 포스트)’ 등에 잇달아 기고함으로써 경천사 십층석탑 불법반출 사건은 국제적 문제로 대두된다. 여기에 부담을 느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寺?正毅) 조선총독까지 반환을 지시하자, 11년 만인 1918년 한반도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해체된 상태로 바다를 건너온 십층석탑은 경복궁 근정전 회랑에 방치되는 신세가 된다. 복원할 수 있는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1959년, 마침내 국립박물관 주관으로 경천사 십층석탑의 보존처리가 결정됐다. 해체된 지 40여년 만의 일이었다. 보존처리가 완료된 후 1960년 국립박물관 앞에 세워졌지만 시멘트 모르타르로 틈을 메우는 방식이었기에 완벽한 복원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외부에 노출된 관계로 시간이 흐를수록 훼손이 가속화되기까지 했다. 결국 1995년 문화재연구소가 중심이 돼 장장 10년에 걸친 해체·복원 작업에 들어갔다. 시멘트 모르타르를 제거하는 한편 부재 142개 가운데 훼손도가 심한 64개를 교체하는 등 대대적인 보수공사였다.

이 과정이 마무리되고 2005년 4월부터는 그해 10월 개관할 예정이었던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조립 작업이 진행됐다. 수평에서 1㎜만 어긋나도 각각의 무게가 수백㎏에 달하는 부재들을 온전한 형태로 쌓아올리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 석공들이 5개월 동안 조립 작업에 매달린 뒤에야 경천사 십층석탑은 자신의 위용을 비로소 드러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11년이 흘렀다. 경천사 십층석탑은 과연 언제까지 타지를 전전하는 신세로 남아있을 것인가. 시대의 모진 풍파 속에서 제자리를 떠나야했던 다른 모든 문화재들과 마찬가지로, 경천사 십층석탑 또한 고향인 개성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갈 수가 없다. 일제강점기와 분단의 근현대사가 우리민족에게 남긴 상처를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는 경천사 십층석탑은 오늘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348호 / 2016년 6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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