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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예화와 불교문학 ③

선시는 수행 통한 깨달음 경지 함의한 작품

“부처님은 태어나셔서 한손은 하늘을 한손은 땅을 가리키시며 일곱 걸음을 걸으시고 사방을 돌아보시면서 ‘천상천하유아독존’.” ‘전등록’은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태어날 때 그 표현부터가 한 편의 시(詩)다. 부처님 구도의 일생은 그렇게 짧게 끊어진 문장이었다. ‘내딛는 걸음마다 연꽃이 피었다’ ‘내가 곧 천지요 천지가 곧 나다’는 비유법은 자유인의 일성, 자아와 천지의 합일로 함축되고 풀어지면서 강물이 되고 바다에 이리는 도(道)로서 자성(自性)의 오묘함을 의미화하고 해독하는 재미를 더해준다.

선시는 시를 활용한 설법 방법
불교정신 해독하는 재미 더해

선시(禪詩)의 전법 행위는 그렇게 체득되고 음미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선시는 수행을 통한 또 다른 깨달음의 경지로 향하는 과정이었고, 삶도 마음도 단박의 가락과 문장으로 표현됐다. 시와 선은 그렇게 화통했다. 이처럼 불교정신을 시로 설법하는 방식은 아주 오래된 역사다. 도에 들어가는 문은 많지만, 결국 ‘돈오’와 ‘점수’라는 두 문에 불과하다는 돈오점수와 돈오돈수의 차이도 시로 표현하고 있을 정도다. 중국 선종의 5조 홍인의 제자인 신수와 혜능의 두 가지 게송을 보라. 신수는 “몸은 보리의 나무요, 마음은 밝은 거울의 받침대와 같나니,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과 먼지 묻지 않게 하라”고 표현했고, 혜능은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 없네. 부처의 성품은 항상 깨끗하거니,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가 있으리오”라고 했다. 대조법의 절창이다.

인도의 고승 지공 스님의 제자이자 무학대사 스승인 나옹선사의 선시는 세월이 흘러도 한결같은 감동으로 우리네 가슴을 울린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이렇게 쉬운 모국어로, 맑은 숨결로, 자연과 인간을 잇고 풀어내는 묘사력에 탄복할 따름이다.

나옹선사 사유경행과 일체성을 보여준 시가 원효대사의 모든 것을 ‘놓아버리라’는 선시다. “옳다 그르다/ 길다 짧다/ 깨끗하다 더럽다/ 많다 적다를/ 분별하면 차별이 생기고/ 차별하면 집착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옳은 것도 놓아 버리고/ 그른 것도 놓아 버려라// 긴 것도 놓아 버리고/ 짧은 것도 놓아 버려라// 하얀 것도 놓아 버리고/ 검은 것도 놓아 버려라// 바다는/ 천개의 강/ 만개의 하천을 다 받아들이고도/ 푸른 빛 그대로요/ 짠 맛 또한 그대로이다” 짧고 명료한 선과 시의 합일정신을 보여준다. 장자의 도 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원효대사는 불교시의 소재로도 등장했다.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은 고려는 물론 송나라 등에서도 글쓰기와 학자로 널리 인정받았다. 그는 불교를 비판하면서도 승려를 칭송하는 글을 많이 남겼는데, 특히 원효 스님 진영을 칭송한 ‘화쟁국사영찬’에서 “분명한 하나의 가르침은/ 분명하게 이야기하지만/ 근기에 따라 서로 다르게 들으니/ 크고 작은 깊고 옅은 이해의 차이가 없네// 내가 보기에는/ 서로 통하지 않음이 없네/ 백 개의 강이 모두 같은 바다로 가고/ 하나의 하늘이 만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네/ 크고도 넓어서/무어라 이름 붙일 수 없을 뿐이다”라고 노래했다.

유학자임에도 화쟁사상을 체계적으로 이해했고 원효대사의 덕을 칭송했다. 평소 원효 스님을 존경하고 원효사상을 계승하며 국왕에게 화쟁국사의 시호를 내리게 했던 대각국사 의천과 교류하며 불교매력에 심취했던 김부식은 특히 ‘금강삼매경론’에 크게 감동한 데서 그 인연이 깊어졌다.

‘금강삼매경론’은 원효대사의 독창적인 불교관을 이해하는 길잡이이자 명문장의 기록물이다.  심오한 불교사상을 간결하면서도 ‘법화경’ ‘반야심경’ ‘잡아함경’ ‘화엄경’ 등 수많은 경전을 모두 담아냈다. 불교 전반에 대한 깊은 지식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압축된 경전을 쉽게 익히도록 주석서를 통해 모든 교설과 회통케 했다. 서문에서 “합해서 말하면 일미관행(一味觀行)이 그 요(要)이고, 열어서 말하면 십중법문(十重法門)이 그 종(宗)이다”라고 역설, 대승불교의 신앙지침서이자 믿음과 참회의 차원을 직결시킨 신비한 위력서임을 강조했다.

박상건 동국대 겸임교수 pass386@hanmail.net

[1348호 / 2016년 6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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