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비오는 날의 추억
23. 비오는 날의 추억
  • 이미령
  • 승인 2016.06.21 1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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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이면 일탈 즐기던 소녀였죠

▲ 일러스트=강병호

스님, 안녕하세요. 꽃소식과 햇차 소식만 남쪽에서 올라오는 건 아닌가 봅니다. 장마 소식도 올라오고 있어요. 이젠 완연한 여름이 틀림없습니다. 여름은 비와 함께 시작하니까요.

세상 줄서기에 끼지 않는 대신
천천히 움직이며 세상과 공감
스님 삶의 속도는 어떤지요?

지난번 드린 편지에서는 한 청년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가득 실어 보내드렸지요. 그리고 그와 관련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계속 스님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스님의 답장을 받고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편지란 것은 본래 마음이 움직여서 자신도 모르게 두런두런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이어야 하지요.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서신을 나눈다는 약속 때문인지 스님의 편지에서 어딘가 모르게 힘겨움이 느껴졌습니다. 마치 편지배틀이라도 벌이는 듯…. 어쩌면 스님의 편지에서가 아니라 그 편지를 받고 부지런히 답장을 써야 하는 제 숙제가 힘에 부쳐서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비가 앞으로 이어질 것이란 일기예보도 저를 흔들어놓았습니다. “비오는 날엔, 비오는 날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었으면”이란 임지훈의 노래가사처럼 비가 올 것이란 일기예보는 제게 그냥 가만히 좀 있으라고 명령을 내리는 것만 같네요. 그래서 그냥 이번에는 살아오고 살아가는 제 이야기를 심드렁하게 드리고 싶어졌습니다. 괜찮겠지요?

어렸을 때부터 비를 좋아했지요. 습기를 먹어서 퉁퉁 불어버린 만화책을 펼쳐 읽는 재미가 여간 좋지 않았어요. 비가 오는 날이면 방에 틀어박혀서 동화책을 읽고 만화책을 읽어댔습니다. 빗소리를 들으며 책장을 넘기는 게 참 좋았지요.

비가 오는 날이면 창을 닫지 않았습니다. 비가 들이쳐서 창턱이 다 젖고 방안까지 흥건해져도 그게 좋았어요. 심지어는 일부러 머리를 창 아래에 두고 잠을 청하기도 했지요. 비를 맞으며 잠이 들고, 비에 젖어서 깨어나는 기분을 만끽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여고시절은 특히 더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은 조퇴하는 날이었거든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잠시 병을 앓았고, 그로 인해 친구들에 비해 조퇴하기가 쉬웠지요. 저는 제 나름의 특혜(?)를 비오는 날에 써먹었답니다.

친구들이 지루한 오후 수업에 갇혀 있을 때 우산으로 비를 받으며 텅 빈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을 나서는 게 그리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연히 집으로 가지 않았지요.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갔습니다. 광화문을 거쳐 덕수궁으로…. 교과서가 아닌 수필집 한 권을 꺼내들고 비를 피해 적당한 자리를 찾아가 천천히 읽어 갔더랬습니다. 아, 그 호젓함이란….

세상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살기로 마음먹은 것은 아마 그때부터였지 않나 싶어요. 모두가 같은 시각에 집을 나서고 같은 시각에 집으로 들어가고 똑같은 일과에 내몰리는 것이 어쩐지 맘에 들지 않았지요.

나는 저 줄서기에 끼어들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엉겁결에라도 말이지요. 그리고 그렇게 살았고, 지금까지 어느 정도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감수해야 할 것도 있었지요. 무척 외로울 수도 있고, 가난할 수도 있다는 사실!

안정적으로 살고 싶다면 어떤 조직에 자신을 가둬야 하고, 그곳에 일생의 중요한 시간을 묶어둬야만 노후의 안락함이 보장된다는 것을 몰랐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자유롭게 살고 싶었어요. 아니, 어쩌면 ‘자유’라는 고상한 가치는 그 당시 생각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남들이 사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싫었고,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겠다는 굉장히 오만하고 독선적인 꿈을 꾸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취직도 하지 않았습니다. 설령 취직을 해도 보수가 적은 대신 자유가 보장되는 곳을 택했지요. 그러니까 자발적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청춘 시절을 지냈다고 하면 되겠네요. 요즘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신음소리를 들을 때면 묘한 감정에 사로잡힙니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등 떠밀려서 그런 박한 처우를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비해 나는 차라리 마음 편한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고 싶었어요.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서 살고 싶었지요. 산다는 것을 피부로 느껴보고 싶었어요. 인생이란 시공간을 자박자박 내 두 발로 딛고 걸으면서 삶이란 것을 만끽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바람을 품은 채 여태껏 살아오다보니 제 삶의 속도는 매우 느려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하는 일들을 보고 너무 과로하는 건 아닌지 염려합니다. 그래서 종종 제게 이렇게 걱정스레 묻습니다.

“힘들지 않으세요?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해내며 지내나요?”

이렇게 걱정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몇 군데 글을 써야하고, 강의를 하러 다녀야 하고, 방송진행도 해야 하고, 게다가 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위해서는 거의 매일 책을 읽어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불교서적을 포함해서 일반서적들을 일주일에 너덧 권 이상은 읽어야 하지요.

처음에 사람들의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땐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다 저도 나름의 요령이 있어서 지금까지 헤쳐 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지요. 그 요령이란 것이 바로 ‘천천히, 느리게’였습니다.

천천히 하자!
느리게 하자!
나만의 속도를 유지하자!

그리고 또 하나의 다짐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세상과 나를 속이지 말자!”는 것입니다. 성공에 눈이 멀어서, 목표 달성에 쫓겨서 허겁지겁 눈속임을 하지는 말자는 것이지요. 이왕 세상의 줄서기에서 자발적으로 튕겨져 나온 인생인데 내가 무엇을 위해 위선을 떨 것이냐는 배짱일 수도 있겠습니다.

천천히 책을 읽을 때만이 가장 많은 책을 가장 깊이 읽을 수 있었고, 천천히 생각을 하고 생각을 모으고 생각을 손가락 끝으로 내려 보낼 때만이 가장 가지런히 정리된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천천히 말문을 열 때의 강의에서 대중과 깊이 공감하기도 했고요.

이쯤 해서는 또 부처님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도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천천히 당신의 길을 걸어가신 분이 아닐까 합니다. 서두르지 않고, 그렇다고 게으르지도 않게 자박자박 맨발로 80년이란 인간의 시간을, 억겁 윤회의 마지막 관문을 그렇게 지나가신 분이 아닐까 합니다.

스님의 삶의 속도는 어떠한지요. 늘 평안하시길, 비릿한 비 내음에 편지를 실어 띄웁니다. 합장.

이미령 북칼럼니스트 cittalmr@naver.com

[1348호 / 2016년 6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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