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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가 된 한센병 환자

한센병 앓으면서도 깨달음 성취
인종·성별·외형으로 차별은 잘못
소록도 인권유린 진실 밝혀져야

한센병은 미코박테리아 일종의 나균과 나종균에 의해 발생하는 감염병이다. 문둥병, 나병, 대풍, 대풍라 등으로 불렸던 이 병은 오늘날 간단한 방법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그러나 근대 이전까지 한센병은 두려움 자체였다. 과거 유대와 이스라엘에서는 한센병 환자를 사탄이 들린 자로 간주했으며, 그들은 찢겨진 옷에 머리를 산발하고 거리를 다닐 때마다 “부정한 자”라고 외쳐야 했다. 동양에서도 한센병은 하늘이 내린 형벌로 학대와 기피의 대상이었다.

불교문헌에도 한센병 환자가 종종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비참한 존재만은 아니다. 최상의 진리를 깨달아 아라한이나 일대종사가 되기도 한다. 초기경전 ‘우다나’의 숩파붓다(Suppabuddha)도 그 중의 한명이다. 부처님이 라자가하의 벨루 숲에서 대중들에게 법문을 할 때였다. 가난한 한센병 환자 숩파붓다는 행여 음식을 얻어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웃거렸다. 하지만 먹을거리가 없다는 것을 안 그는 부처님의 말씀을 들어보기로 했다. 부처님은 많은 대중들 가운데 숩파붓다가 있음을 보았고, 이제 그가 진리를 깨우칠 수 있음을 알았다.

부처님은 숩파붓다를 위해 보시, 계행, 감각적 쾌락의 욕망의 위험, 괴로움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이치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나갔다. 숩파붓다는 점점 법문에 몰입했다. 모든 것이 무상하고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음을 깊이 깨달았다. 그 순간 숩파붓다를 괴롭히던 모든 의혹은 사라졌다. 마침내 진리의 눈을 뜬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제석천은 숩파붓다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제석천은 공중에서 말했다. “숩파붓다여, 그대는 가장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이다. 그대가 나에게 부처님도 없고, 가르침도 없고, 수행자의 참모임도 필요 없다고 말하면 한량없는 재산을 주겠다.”

그러자 숩파붓다가 대답했다. “어리석고 눈 먼이여, 나는 가난하지도 비참하지도 않다. 나는 지극한 행복에 도달했으며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 믿음의 재산, 계행의 재산, 부끄러움을 아는 재산, 창피함을 아는 재산, 배움의 재산, 보시의 재산, 지혜의 재산이 바로 그것이다.”

잠시 후 숩파붓다는 부처님께 나아가 경배와 찬탄을 했다. 또 자신을 재가신자로 받아줄 것을 요청하고, 부처님도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이제 그 어떤 질병과 가난도 숩파붓다를 불행하게 만들 수 없게 된 것이다.

최근 서울고등법원 민사30부가 전남 고흥군 국립소록도병원에서 한센병 환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 특별재판을 열었다. 1960년대 이후 국가의 인권침해 여부를 가리는 자리였다. 이 가운데는 마취도 없이 강제로 낙태수술을 받아야 했던 여인도 있었다.

▲ 이재형 국장
모든 생명은 불성을 가진 고귀한 존재다. 인종, 성별, 출신, 직위, 종교, 재산, 외모, 성적 취향 등이 달라도 억압받지 않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센병 환자로 중국 선종의 3조가 된 승찬 스님은 ‘신심명’에서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음이요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니(至道無難 唯嫌揀擇), 미워하고 애착하지 않으면 통연히 명백하니라(但莫憎愛 洞然明白)’라고 했다. 분별과 차별에서 벗어나면 곧 진리의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이다.

수십 년 전 한센병 환자를 대상으로 자행된 인권유린의 진실은 지금이라도 밝혀져야 한다. 그것이 당사자들의 응어리진 한을 풀어주는 길이며, 어떤 경우라도 국가는 국민의 인권을 짓밟지 않겠다는 공개적인 선언이기도 하다.

이재형 mitra@beopbo.com
 

[1349호 / 2016년 6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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