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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인의 퇴임식

기자명 박동춘

어느 초 여름날 오후, 모 대학 교정에는 오랫동안 교유했던 지인의 정년 퇴임식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캠퍼스 한 모퉁이에 마련된 조출한 식장, 평소 지인과 안면이 있는 인사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고 행사 진행을 위한 준비 또한 차분하고도 진지해 보였다.

한동안 몸담았던 지인의 연구실 풍경, 그리고 답사지의 모습 등 교직을 수행하는 동안 학생들과 함께 했던 흔적들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잠시 후 식장의 술렁임도 점차 잦아들고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식장의 엄숙한 분위기는 자못 지는 저녁놀처럼이나 숙연하고 담담했다.

지인의 퇴임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각기 다른 느낌으로 이 정경을 바라봤을 것이다. 이미 퇴임한 분들은 자신의 퇴임식을 다시 회상하게 한 순간이었으며, 아직도 왕성히 활동할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겐 이 퇴임식이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퇴임식의 압권은 역시 지인의 퇴임사에 있었다. 조용히 지나온 시간들을 반추하는 그의 목소리는 겸손하고도 담담했으며 퇴임에 임하는 자신의 심경을 ‘아쉬움’이란 말로 함축했다. 분명 이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어떤 일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거나, 필요한 것이 모자라거나 없어서 안타깝고 서운한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전한 ‘아쉬움’이란 회한보다는 반추(反芻)에 무게 중심이 있는 듯했다. 아울러 자신과 인연 있는 모든 것에 대한 감사뿐 아니라 자신의 미흡함에서, 혹은 이해가 불충분함에서 오는 ‘아쉬움’을 드러내는 한편 너그러운 관용을 주문하였다. 실로 이는 각자에게 전하는 반성의 긍정이었으며 진정한 ‘아쉬움’을 고백하는 말이었던 셈이다. 그러기에 그의 말엔 힘이 있었고 함께 울려오는 공명도 컸다는 점에서 이 식에 참석한 모든 이들과 그 자신에게 던지는 화두일 것이라고 느낌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누구에게나 ‘아쉬움’은 있게 마련이다. 일생의 전부를 명성과 돈, 권력과 실리를 위해 고군분투한 이들에게도 늘 ‘아쉬움’은 있었을 것이며, 삶의 전반을 사람답게 살고자 노력했던 사람에게도 ‘아쉬움’은 남게 마련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의단(疑團)을 가슴에 품고 수행에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도 ‘아쉬움’은 있는 법이다. 하지만 이 ‘아쉬움’을 어떻게 반추하고 운영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천양지차로 벌어질 것이다. 또 군자나 신선이 되기를 기약하며 수신과 양생에 몰두하는 이들에게도 ‘아쉬움’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아쉬움’을 반추하여 승화하려는 의지는 인간이 지닌 긍정적인 힘이며 인간과 금수(禽獸)가 차별되는 연유이라 하겠다.

일찍이 공자께서도 흘러가는 물을 보고 ‘(냇물이)흘러감이 이와 같은 저.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구나(逝者如斯夫 不舍晝夜)’라고 하였다. 쉼 없이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며 느낀 공자의 생각은 분명치 않다. 다만 송대의 정자(程子)는 이 구절을 해석하여 도의 근본이라 하였고 천지의 운행이 쉼 없이 운행되는 이치와 같다고 말한 바가 있다. 그러므로 군자는 이처럼 자신을 탁마하는데 쉼 없이 자강불식(自强不息)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하지만 공자께서 천하를 주유할 때 흘러가는 강물을 보고 이렇게 탄식(?)했을 가능성은 없었던 것일까. 그가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며 자신의 처지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낸 것이라고 본다면 이는 다분히 불경스러운 일이며 심각한 오류를 드러내는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의 뉘앙스가 ‘아쉬움’으로 느껴지는 것은 필자의 느낌이며 역발상적인 해석일 뿐이다.

모처럼 지인의 퇴임식을 참석하면서 잊고 있었던 ‘아쉬움’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 되었다. 진정 우리에게 ‘아쉬움’은 회한일까. 아니면 긍정적인 반추일까. 이는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라는 생각이 든다.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dongasiacha@hanmail.net
 

[1349호 / 2016년 6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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