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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더위를 식히는 방법

기자명 최원형

에어컨으로 가는 손, 부채로 돌려보자

해 질 녘, 한낮에 오르던 기온이 한풀 꺾이고 바람도 제법 불던 시각이었다. 모임에 가려 버스를 탔다. 주말 이른 저녁이어서인지 사람도 별로 없는 버스에 오르자마자 나는 금세 한기를 느꼈다. 여름이면 필수품처럼 챙겨 다니는 카디건을 꺼내 입었다. 그러고 보니 기사는 마스크를 끼고 있었고 창문은 모조리 닫혀있었다. 차창 밖에는 일렁이며 가로수가 춤추고 있는데 그 선선한 바람을 닫힌 창이 가로막고 있고 버스 안은 꽁꽁 얼 것만 같은 에어컨이 가동 중에 있었다.

당장 시원해지고 싶은 욕망이
에너지 소비로 지구 덥게 해
부채로 땀 식히는 여유 필요

여름에 오히려 긴 팔을 필수로 챙겨야 한다는 이 불편한 진실까지 포함해 불현듯 ‘이게 정상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 기사에게 다가가서 에어컨을 끄고 창을 여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기사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나는  다시 한번 설득에 나섰다.  바깥에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있고 미세먼지도 없는데다, 해도 지고 있으니 일단 창을 열고 다니다가 사람들에게서 덥다는 말이 나오면 그때 켜도 되지 않겠냐고 했다. 끈질기게 설득을 하니 기사는 마지못해 에어컨을 껐다. 나는 내가 앉은 자리 앞뒤의 창을 열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기분 좋게 시원했다. 몇 정거장 더 가면서 사람들이 너덧 명 더 탔다. 채 오 분이 되었을까? 다시 윙 하며 에어컨 켜지는 소리가 들렸다. 덥다든가 에어컨을 켜달라든가 하는 소릴 내가 듣지 못했는지 없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에어컨은 켰으나 아무도 내 앞뒤로 열린 창을 닫지 않았다. 하긴 에어컨을 껐을 때도 아무도 창을 열지 않았다. 버스에 탄 사람들에게 버스 실내 온도는 남의 일인 것만 같았다. 창을 닫아야 하나 기사에게 가서 한마디를 더 해야 하나 아주 짧게 고민하다 창을 닫고 조용히 앉았다. 그다음 정거장에서 그리고 나는 내렸다.

순간 내 안에서 뭐라 표현키 어려운 감정이 일었다. 분노인 것도 같고 안타까움인 것도 같고, 아니면 그 둘이 섞여 있는 좀 미묘한 감정인 것도 같았다. 기사가 마스크를 끼고 있는 걸 보니 최근 잇달아 발생했던 미세먼지 영향이었던 것 같긴 했다. 온종일 길 위에 있어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마스크를 꼈을 테고, 미세먼지가 들어오니 창을 닫고 있는 그가 이해되었다. 좀 더 생각을 진전시켜보면 그 미세먼지는 결국 어디서 올까? 최근 고등어니, 삼겹살이니 하며 엉뚱한 데로 화살을 돌렸지만 결국 미세먼지의 가장 많은 공급처는 석탄화력발전소와 경유 차량이다. 서울 시내를 운행하는 버스들은 대부분 천연가스로 움직인다. 미세먼지 발생률이 다른 화석연료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긴 하나 여전히 미세먼지를 내뿜는다. 더구나 에어컨을 켜게 되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할 수밖에 없다. 도시의 더위는 녹지가 적은 데다 차량이며 건물 등의 에어컨에서 내뿜는 열기로 인해 더욱 덥다. 에어컨을 돌리기 위한 전기를 만드느라 화석연료를 태우다 보니 또 뜨거워지고 있다. 우리의 고통은 그 어느 누가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무지한 우리가 일상에서 만들어내고 힘들어하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 손에서 부채를 발견하는 일이 귀해졌다. 단오 때 부채를 선물하던 풍습은 너무 먼 과거의 일이라 접어두더라도, 예쁜 접선과 손수건이 여름철 핸드백 속 필수품인 풍경은 이제 박물관에서나 기억될까? 손수건으로 꾹꾹 눌러 땀을 닦고 부채로 열기를 식힐 궁리보다는 일단 선풍기나 에어컨 버튼으로 먼저 손이 간다. 오랜 시간 동안 전해지며 더위를 견디던 여러 방법은 이제 무용지물이 돼버린 것 같다. 세상이 편리해졌으니까 궁리 따윈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일까? 더운 날 바깥에서 실내로 들어오면 당연히 덥다. 그럴 땐 부채로 땀을 식히며 잠시 앉아 있다 보면 땀이 잦아들고 더위도 가시기 마련이다. 당장 시원해지고 싶고 편리하고 싶은 욕망, 그 욕망이 모여 에너지 소비는 증가하고 지구는 점점 뜨거워진다.

다섯 비구에게 최초 설법을 마친 붓다께서 마가다로 돌아오셔서 다시 천 명의 수행자를 이끌고 가야산에 올라 설법하셨던 그 말씀, ‘비구들이여, 일체는 타고 있다.’ 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격렬한 탐욕이다. 그것에서 고통이 비롯된다. 붓다는 그것을 확연히 보았고, 그것을 설했다. 오늘날 지구도 기실 그 욕망으로 인해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 내 안의 욕망을 거둬내는 일이야말로 붓다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일이다. 그게 절실한 시대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349호 / 2016년 6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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