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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김광섭의 ‘저녁에’

기자명 김형중

너와 나 만남은 기적에 가까운 일
중중무진 인연으로 상호연결 돼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우리 인간은 별에서 왔다. 별에서 떨어져 나온 별똥별이 식어서 바위가 되고 흙이 되고 물이 되고 불이 되고 바람이 되었다. 또 그것이 합쳐져서 미미한 생명체가 되고 진화 성장하여 인간이 되어 이 지구에서 머물고 있다. 그래서 인간들은 밤이 되면 별을 바라보며 전생의 동화 같은 윤회이야기를 찾아가는 것이다. 시인이 미쳐서 밤마다 별을 바라보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발광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별과 깊이 교감이 되어
의미 두고 이름 붙여줄 때
별도 ‘나의 별’이 되어 응답

너와 내가 만나는 인연은 거의 불가사의한 확률이고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불교경전에 겨자겁, 반석겁, 맹귀우목의 비유가 있다. 돌고 돌아 억겁을 돌아 다시 친구별을 찾아간다. 시인은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고 읊고 있다. 내 가족 내 친구이던 별이다.

밤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인간 가운데 인연이 있는 사람만이 다시 또 만난다. 인연이 있더라도 무정(無情)한 사람과는 만나도 스치고 지나갈 뿐이다. 정(의식)을 나누지 않으면 서로 인식되지 않았기 때문에 존재의 의미가 없다. 설령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인식 밖의 존재물이다. 내가 별과 교감이 되어 내가 그 별에 의미를 두고 이름을 붙여주었을 때 별 또한 ‘나의 별’이 되어 비로소 응답한다.

김광섭(1905~1977) 시인은 ‘성북동 비둘기’로 유명하다. ‘저녁에’는 1975년에 발표되었고, 2년 뒤에 뇌졸중에 시달리다 작고하였다. 시인은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고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며 인간은 별처럼 언젠가는 사라지는 존재임을 노래한다. 고독과 서글픈 인생의 단면이 나타나 있다.

마지막 3연에서는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고 갈무리하여, 생의 소멸의 슬픔을 승화시켜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고 희망하는 불교의 윤회사상을 펼치고 있다.

김환기 화가의 1970년 작품인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는 미술경매시장에서 우리나라 현대작가 가운데에서 최고가 49억원에 매매된 작품이다.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는 김환기의 작품에서 시사 받은 바가 있다고 유추할 수 있다.

가수 유심초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리’의 노랫말 가사가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이다. 세상에서 가장 내 마음을 매혹시킨 가사이다.

불가에서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고 인연이 다하면 만남도 사라진다는 ‘인연생 인연사’라는 말이 있다. 광대한 우주 속에서 모래알보다 많은 사람 가운데 우리는 만났다가 헤어지고, 또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생각할수록 불가사의한 기적이다. 중중무진한 인연으로 상호 연결되어 연기(緣起)하고 있다.

며칠 전 성남아트센터에서 전시하고 있는 한국화가 임효의 ‘연기(緣起)’ 작품을 감상하였다. 우주가 하나의 커다란 그물코요, 인간세계가 서로 관계 속에서 살고 있는 연기적 삶임을 표현한 작품이다. 장지 위에 한지를 이겨서 무수히 크고 작은 많은 공간(영역)을 만들어서 바르고 옻칠하고 말리고 또 바르기를 6개월 동안 작업하였다고 작가는 말한다.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한 은하세계가 엉키고 연결되어 하나의 장엄한 우주와 인간세계의 인드라망이 나타나 있었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349호 / 2016년 6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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