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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증편향이 부른 배달사고 해프닝

기자명 심원 스님

최근의 두 가지 사건은 ‘확증편향’과 ‘정견’을 생각하게 한다. 확증편향(確證偏向, confirmatory bias)이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인지적 편견을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증거는 선택적으로 수용하지만, 자신의 주장을 부정하거나 반대하는 증거는 애써 무시하거나 배척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일단 틀을 갖춘 신념은 선택된 증거에 의해 견고해지고, 견고해진 신념은 다시 또 더 확실한 증거를 찾아낸다. 이때 주어진 정보는 이미 객관성과는 상관없다.

첫 번째 사건은 저 유럽의 섬나라 영국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인 브렉시트(Brexit, Britain과 exit의 합성어,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다.

탈퇴결정이 전해지자 온 세계 경제가 요동치고 각 나라 정부에서는 비상대책을 논하고 있다. 내로라하는 사회·경제학자들이 머리를 맞대어 원인을 분석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견하고 있다. 한편 소셜미디어에선 EU 잔류를 원했던 영국의 젊은층을 중심으로 ‘EU 탈퇴 결정을 후회’하는 ‘리그렉시트(Regrexit, Regret와 Brexit의 합성어)’운동이 일어나고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내 이름은 빼줘’ 같은 해시태그까지 퍼져 나오고 있다. 브릭시트로 인해 야기될 후폭풍에 대해 세계가 명확한 증거를 들이대며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탈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무시했다. 오히려 그들 앞엔 영국이 EU에서 탈퇴하지 않으면 안 될 수백 가지의 이유가 펼쳐져 있었다. ‘악화되는 취업난, 난민 유입, 이슬람세력 확장, 공공복지의 난맥상, 지역 간 경제종속 심화’ 등등. 이러한 증거자료는 확증이 되어 세계의 경고를 무시하게 해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선택했고, 지금 투표 후 정신이 번쩍 든 영국인들에게 돌아온 것은 ‘크리스마스에 찬성하는 칠면조(잡아먹힐 걸 알면서도 크리스마스가 좋다는 칠면조)’라는 비아냥거림이다.

또 하나의 사건은 조계종 교구본사의 분담금공문 배달사고다. 조계종 ㄷ교구에서 해당교구의 말사로 분담금 납부고지서를 발송했는데, ‘도로명 주소 변환’ 착오로 인하여 공교롭게도 같은 지역에 있는 같은 이름의 선학원 분원으로 발송되었다. 선학원 이사회가 이렇게 기막힌 호재를 놓칠 리 없었다. 그간 이사회는 ‘대한불교조계종이 법인관리법을 제정하여 선학원 재단의 인사권 재산권 운영 관리권을 침해하면서 재단을 장악하고자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하여 득달같이, 선학원 이사장 명의로 ‘조계종 분담금 납부고지서 수령 시 재단 통보요청의 건’이라는 긴 제목의 공문을 각 분원으로 발송했다. 공문에는 위의 내용과 더불어, 말미에 “조계종단이 ‘선학원 현안문제 해결방안에 대한 동의서’에 서명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 동의서에 서명을 할 경우 종단으로부터 분담금 납부 고지서를 받을 수도 있으니 각별히 유의하라.”는 협박성 경고도 잊지 않았다. 선학원은 재단법인이므로 ‘조계종이 선학원 분원에 분담금을 부과하거나, 재산상의 침해를 할 수 있는 어떤 종법상 권리도 없고, 선학원 분원 또한 종단이 징수하는 분담금을 납부할 근거가 없다’는 것쯤은 이사회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런 공문을 발송했을까? 확증편향이다. 잘못 배달된 분담금공문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해 줄 명백한 증거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보이는 대로 본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보았다. 그리고 확대해석하였다. 앞으로도 이런 해프닝은 계속될 것이다.

두 사건의 바탕에는 확증편향이라는 강력한 사견(邪見)이 자리 잡고 있다. 초기불교 이래 가장 중요한 수행법으로 제시된 것이 팔정도인데, 첫 번째 덕목이 바로 정견(正見)이다. 바르게 본다는 것은 모든 수행의 기본이 된다. 선입견 없이, 삿된 욕심 없이, 바르게 볼 수 있다면, 갈등과 혼란을 증폭시키는 확증편향이란 사견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정견이 바로 선다면 확증편향은 발붙일 곳이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나를 돌아본다. 다른 이의 확증편향을 논하는 나는 얼마나 정견을 갖추었는가.

중앙승가대 강사 심원 스님 chsimwon@snu.ac.kr
 

 [1350호 / 2016년 7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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