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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사성제에 담아 보는 반야심경 ①

기자명 김정빈

멸성제·고성제 분별 않으면 혼란

‘반야심경’은 불교인들이 의식을 거행할 때마다 독송하는 매우 중요한 경전이지만 우리 불제자들에게 이 경전은 매우 어려운 경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반야심경’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이 경전에 나오는 공(空)·무(無)·불(不) 등의 부정사(不定詞)들이 보통 사람들로서는 도무지 부정할 수 없는 것들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반야심경’ 속 부정사는
초월적 멸성제 가리켜
경전 속 깨달음 경지는
생멸·정구·증감이 없어

먼저 ‘반야심경’은 보통 사람들로서는 도무지 부정할 수 없는 생멸(生滅)을 부정한다. 이어서 그 역시 보통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더러움(垢)과 깨끗함(淨), 늘어남(增)과 줄어듦(減)을 부정한다.  ‘반야심경’의 부정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경전은 초기불교의 교리까지도 부정한다. 맨 앞에서 오온(五蘊)을 부정한 ‘반야심경’은 생멸(生滅)·정구(淨垢)·증감(增減)을 부정하고 나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과 안계(眼界)에서 의계(意界)까지를 부정한다. 그런 다음 십이연기(十二緣起)를 순관(順觀)·역관(逆觀)으로 부정하며, 마지막으로 사성제(四聖諦)를 부정한다.

‘반야심경’의 부정은 초기불교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성제의 부정인 ‘무고집멸도(無苦集滅道)’에 이어지는 ‘무지역무득(無智亦無得)’은 대승불교 수행법의 부정이다. 반야(般若)는 산스크리트어 프라즈나(prajñā)의 음역(音譯)이고, 그 의역(意譯)이 지(智)이다. 따라서 ‘무지역무득’의 ‘지(智)’는 대승불교의 육바라밀을 대표하는 ‘반야바라밀’ 그것이며, 따라서 ‘반야심경’은 대승불교 수행법조차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이르러 초심 불제자들은 큰 혼란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반야심경’은 맨 처음에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했다”고 설하고 있는데, 이렇듯 앞에서 반야바라밀을 강조하던 ‘반야심경’이 이제 와서는 반야바라밀도 없고, 반야바라밀을 통한 얻음, 즉 깨달음도 없다고 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초심 불자들을 큰 혼란에 빠뜨린 것으로도 모자랐는지 ‘반야심경’은 앞에서는 ‘없다’고 부정했던 수행법과 깨달음을 ‘있다’며 긍정한다. 경전은 얻을 바가 ‘없기’ 때문에(以無所得故) 의지할 바가 ‘있으며’(依般若波羅蜜多故), 걸림 없음과 공포 없음과 전도몽상을 떠난 경지 및 깨달음의 경지가 ‘있다’고(心無罫碍 無罫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결정적인 깨달음을 얻음이 ‘있다’(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고 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보통 사람들로서는 얻을 바가 있다는 것인지 없다는 것인지, 의지할 바가 있다는 것인지 없다는 것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 필자는 ‘반야심경’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초심 불자들이 느끼게 되는 혼란스러움에 대해 말했다. 그렇다면 이 경전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 자체가 그렇듯 혼란스러운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면, 이 혼란스러움은 이 경전을 ‘틀로서의 사성제’에 담아 이해함으로써 쉽게 해소할 수 있다.

사성제에서 멸성제는 부처님께서 도달하신 경지, 즉 깨달음·해탈·열반의 경지를 의미하며, 이 경지는 경험자인 부처님만이 아실 뿐 경험하지 못한 중생들에게는 설사 부처님일지라도 언어로써 전해줄 수 없는 경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이 경지를 말해야 할 때, 경전은 긍정사(肯定詞)를 사용하지 않고 부정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즉, “깨달음의 경지는 이러이러하다”라고 말하기보다는 “그 경지는 지금 그대가 생각하는 그러한 경지가 아니다”, 또는 “그 경지는 그대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생멸·정구·증감 등이 없는(초월한) 경지이다”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부처님의 초월적 경지의 반대편에 중생들이 사는 고성제(집성제·도성제)의 세계가 있고, 이 세계에서는 부정사보다는 긍정사가 사실을 더 잘 설명해준다. 따라서 우리는 ‘반야심경’을 멸성제의 입장에서 설해진 부정사의 부분과 그 상대편인 고성제의 입장에서 설해진 긍정사의 부분으로 분별해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다음 주에는 이에 입각하여 ‘반야심경’을 알기 쉽게 재정리 하겠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351호 / 2016년 7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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