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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우리 스님 잘 가셨을까요?

기자명 성원 스님

이제 비만 내리면 마음이 아플 것 같습니다

▲ 일러스트=강병호

장맛비가 멈출 줄 모르는 기세로 쏟아집니다. 제주에는 물이 고여 냇물이 되도록 흐르는 일이 좀처럼 없지만 오늘따라 자꾸 거칠게 내리는 빗줄기가 야속하게 느껴집니다. 수십 년을 보아온 장마이지만 오늘 마음의 정점이 흐트러지고 나니 속절없이 내리고 있는 비가 자꾸만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병환 중에도 매일 108배 수행
스스로에게 게으름 용납 안해

선방 안거 스님들에 대중공양
평소 원력대로 텅빈 통장 남겨

2년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은사스님께 갑자기 간암이 발견되어 절제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평소 워낙 책임감이 강하신 분인지라 수술한 지 고작 4일 만에 고집을 피우시면서 퇴원하시어 결국 약속한 대중법회에 나아가셔서 법문을 하시고 말았습니다.

수술 이후 저희들의 조마조마한 가슴앓이는 괘념치 않으시고 평소와 같이 일상을 이어 갔습니다. 정말 활동하기를 좋아하시고, 아니 좋아한다기보다 살아있는 한 대중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뭔가를 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너무나 투철하셨습니다. 대중을 향한 열정만이 아니었습니다. 병환 중에도 매일매일 108배를 하시면서 수행하지 않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혜인 스님하면 전국을 무대로 법문하시는 것만 기억하시겠지만 곁에서 바라보는 스님은 너무나도 철저히 자신의 수행에 온힘을 기울이시는 분이었습니다. 입적하시기 얼마 전이었습니다. “나는 참으로 복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을 선원에서 대중스님과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만 해도 너무너무 기쁘다. 나는 정말 복 많은 사람이다”라고 수차례 말씀하셨습니다.

장맛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스님의 마지막 길, 그 모습이 자꾸 어른거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혜인 스님께서는 약천사라는 큰절을 창건하시고 제10교구 은해사 조실이시니 물질적으로도 풍요로우셨을 것’이라 말들하곤 하는데 스님의 삶은 청빈 그 자체였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 한번은 “내가 죽은 후 통장에 1000만원 이상이 남아있다면 나는 인생을 잘못 살았고, 치욕으로 생각할 거다”라고 하셨는데 입적하시기 2일 전에 통장을 주시면서 “여기 내가 모아둔 돈이 있는데 하안거 시작할 때 대중들이 오시면 드릴 공양금으로 모아둔 것이니 찾아서 우리 기기암선원에서 공부하는 스님들께 대중공양으로 보시해라” 하시고는 통장의 잔액을 모두 찾도록 시켰습니다. 결국 정말 당신은 평소의 발원처럼 빈 통장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난생 처음 누군가를 곁에서 간병하면서 임종까지 지켜보았습니다. 어리석게도 그날그날 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마지막 유언이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임종하시기 얼마 전이었습니다.

갑자기 혜암 전 종정예하의 은사이신 인곡 스님 이야기를 하시면서 “인곡 스님께서는 임종하시기 1주일 전부터 곡기를 끊으셨는데, 왜 그러시냐고 여쭤봤더니 ‘보통 사람들이 1주일 음식을 먹지 않아야 몸속의 변이 모두 배출되어 깨끗해진다’라고 하셨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당시에는 그냥 옛 큰스님들의 일화를 전해주시는구나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스님께서 입적 7일 전에 갑자기 공양을 드시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입맛이 없으신가보다 하였는데 그 다음 공양도 드시지 않으시면서 “누구도 내게 밥을 먹으라고 절대 하지 말라”고 너무나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 몇 차례 제주 햇보리로 만든 미숫가루를 물같이 엷게 타 드시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입적 이틀 전에는 힘겹게 병원에 다녀오시면서 “다시는 병원에 가지 않는다” 하시며, “누구도 내 몸에 주사를 꽂지 말라”고 힘겹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큰절 은해사로 가면 대중들이 번거로울 것 같다. 결제중이니 선원대중들이 결제 정진하는 기기암선원으로 가자”고 하시면서 제 손을 잡으시고 부탁하시는 것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기기암에 올라와 얼마 되지 않아서는 “늙고 병든 몸으로 내가 이제 사바에 더 있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구나! 내가 어머님께 함께 가겠다고 약속했다”라고 말씀하시더니 얼마간 시간이 지나서 두 차례나 더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희들은 모두 황망해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한동안 더 이상 아무 말씀을 않으시고, 힘겹게 숨만 몰아쉬시고 계셔서 ‘병원으로 모실까요? 의사를 부를까요?’ 여쭈니 너무도 분명히 집게손가락 두 개를 교차하면서 절대하지 말라는 표현을 하였습니다.

마침 멀리서 신도 한분이 찾아와 힘겨워하시는 큰스님을 보시고 울기 시작하자 은사스님께서 갑자기, 큰소리로 너무나 단호하게 “울지 마! 누구도 내 곁에서 절대 울지 마!”라고 하셨습니다. 이후 덕숭총림 설정 방장스님께서 전화해 주시니 감탄사처럼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를 몇 차례 되뇌시다가 저희들과 함께 “나무아미타불”을 염창하시며 누우신 채 조용히 숨을 거두셨습니다.

깊은 밤 갑자기 입적하시니 장대 같은 비가 한없이 쏟아져 내리기만 할 뿐 한동안 누구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하지 못했습니다. 며칠 전 스님께서는 임종이 가까운 줄 아셨는지 직접 빈 종이에 임종게를 써서 남겨 주셨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 단 한사람이라도 마음 아프게 하지 마라, 그 누구도 미워하는 사람을 두지 마라. 이것을 실천하는 것이 불교의 자비이다.

나의 제자들아!

길 없는 곳에서 참 생명의 길을 만들어 내며 무시무종으로 이 법에서 지옥 천당을 건설하고 혹 쳐부수기도 하면서 당당히 대우주의 주인공이 되나니. 결코 마르지 않는 샘을 발견하지 못하면 여의주의 주인이 되지 못하리라.’

오늘 다시 창가에 기대어 한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니 문득 내가 스님을 너무 쉽게 보내드린 것만 같은 생각이 밀려들어 가슴이 메여옵니다. 어쩌면 좋을지 감정이 잘 정리가 되지 않네요. 갑자기 부처님의 또 다른 명호가 떠오릅니다.

선서(善逝). 잘 가시는 분.

저희들이 당황해 더 오래 머물러 달라고 애원하지 못하는 사이 당신은 우리들을 뒤로하시고 당신의 길을 홀연히 가 버렸습니다.

우리스님 혼자 잘 가셨을까요?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데 극락 가는 길에는 장마는 들지 않았겠지요. 이제 비만 내리면 자꾸 맘이 아플 것만 같아집니다. 어디에서 잠시 이 거친 비 피하시기나 하실까요?

원체 의욕이 넘치시는 분이시라 이 장맛비에도 쉬시지 않으시고 서둘러 아미타부처님께로 서두르시는 것은 아닐지 맘 조려집니다.

원왕생(願往生) 원왕생 나무아미타불!

마음 아프게 장맛비 쏟아지는 바닷가에서.

성원 스님 sw0808@yahoo.com

 [1351호 / 2016년 7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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