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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긴나라(緊那羅)

반인반조·반인반마 형상 묘사…음악으로 불·보살 공양

▲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의 긴나라와 긴나리. 1층 갤러리 내벽 조각. 하반신을 새의 날개로 표현했다.

힌두-불교 문화가 지나간 곳들 가운데 일부 지역은 특정 신들에 대한 각별한 애착과 함께 그에 대한 풍부한 조각이나 회화를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크메르는 나가와 비천에 대한 조각이 인상적이며 둔황의 경우는 비천의 벽화가 그렇다. 또한 인도네시아의 불교유적 속에는 그 어느 지역보다 상세하고 풍부한 긴나라의 표현이 인상적이다.

특유 목소리로 부처님 가르침
불국토 찬양하는 천상의 존재
팔부신중 하나로 불교 수호신장

힌두교와 불교 초기부터 기원과
의미 불확실해 진척된 연구 적어

‘자타카’의 중요 문학적 인물 등장
수다나와 마노하라의 이야기는
‘선녀와 나무꾼’ 원형 담고 있어

긴나라(緊那羅)는 산스크리트어 킴나라(Kiṃnarā)를 음사한 말이다. 한문으로 의역하여 비신(非神), 의신(疑神)으로 쓰기도 한다. 킴나라 또는 킴나리(Kiṃnarī; 타밀어 Kiṇṇarī)는 반인반조(半人半鳥) 또는 반인반마(半人半馬)의 형상으로 묘사되는 신화적 존재로서 음악으로 불보살을 공양하거나 특유의 목소리로 부처님의 가르침과 불국토를 찬양하는 천상의 존재로 그려진다. 더불어 긴나라는 팔부신중의 하나로 대표적인 불교의 수호신장으로 묘사되고 있다. 또한 부(富)와 재물의 신으로 꼽는 쿠베라(Kubera)의 수하로서 이들의 왕국은 히말라야 산중 어딘가로 그려지고 있다. 불교의 팔부신중에 해당하지만 그 존재의 의미와 특징에 대해서는 진척된 연구가 매우 적다. 아마도 이는 힌두교와 불교 초기부터 그 기원과 의미가 불확실했던 것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이름에서도 암시하듯이 산스크리트 킴나라(kiṃnara)는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를 뜻하는 말로 불확실한 정체를 가리키는 의문사가 곧 그들의 명칭이 된 것이다. 그만큼 이들의 정체는 당대에도 불확실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비교적 근자의 어떤 학자는 이 신화적 존재가 본래 옛날 인도의 히마찰 프라데시의 킨나우르(Kinnaur) 지역에 살던 옛 인도-티베트족의 일원을 지칭하던 말일 것이라는 추정도 하고 있다. 특히 이들 지역 사람들이 음악과 노래를 매우 좋아한다는 점과 대승불교에 경도되었다는 점을 들기도 한다.

유사한 의미를 갖는 단어로 킴푸루샤(Kiṃpuruṣa)가 있는데 이 의미도 역시 킴나라와 같이 의문사를 붙여 ‘(어떤) 사람인가’와 같은 뜻을 만든다. 의미는 같지만 이 명칭이 동일한 대상을 가리키는 단어였는지는 불확실하다. 이 단어는 베다 문헌에 일찍 등장하는 반면 킴나라는 훨씬 후대에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초기 운문형태의 ‘자타카’ 속에 등장하는 킴푸루샤가 후대에 산문 ‘자타카’로 옮겨지면서 킴나라로 옮겨지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대체로 킴나라와 킴푸루샤는 서로 혼동을 일으킨 것으로 후대에 혼용해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스코 파폴라(Asko Parpola)와 같은 저명한 인도학자는 최근 완전히 다른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이 단어가 본래 산스크리트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라 고대 드라비드어에서 기원한 것으로, 소리냄을 뜻하는 ‘kil’과 현악기를 뜻하는 ‘naram’의 합성어에서 파생했다고 주장한다. 곧 악사(樂士)를 지칭했던 일군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킴푸루샤는 고대 드라비드어 ‘킨나라’를 산스크리트어로 음사한 단어이며, 제사의 희생물로서 킴푸루샤를 제단 밑에 묻었던 단서를 토대로 이들 악사를 희생 제물로 사용했었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희생제의에 관한 부분을 제외하면, 최소한 긴나라가 악기나 악사를 의미했을 것이라는 주장은 파폴라가 아니라 오래전 마이어호퍼(Mayerhoper)가 제기한 바였다.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 볼 수 있다. 긴나라가 음악과 악기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은 거의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 보로부두르에 묘사된 설화 속의 긴나리 마노하라의 모습. 죽음의 위기를 넘기고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는 마노하라를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애매하고 불확실한 기원의 문제를 제외하면, 긴나라는 불교나 힌두교 모두에서 장식적이고 호법(護法)을 위한 신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이 신은 붓다의 과거 전생이야기를 전하는 ‘자타카’의 중요한 문학적 인물로 등장하는데, 마하방사(Mahāvaṃsa)와 아바다나(Divyāvadāna) 문헌의 여러 판본에 나타날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의 불교미술을 통해서도 이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미루어 과거의 그 대중적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보로부두르(Borobudur)는 여러 조각 패널을 이용해 이 이야기를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필자가 소개하고 싶은 긴나리(Kiṇṇarī)의 이야기는 마노하라에 관한 것이다. 마노하라 이야기는 미얀마와 태국,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의 자타카를 포함해 불교 문학 속에 광범위하게 등장한다. 후대의 세속 문학을 포함하고 있는 팔리어 장외(藏外) 문학을 흔히 ‘판냐사 자타카(Paññāsa Jātaka)’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에 긴나리 마노하라의 이야기가 전한다.

이 ‘자타카’ 속에는 수다나(Sudhana)와 마노하라(Manoharā) 사이의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수다나는 하스티나푸라 왕국을 이어받을 인간 세계의 왕자였다. 반면 마노하라는 히말라야 카일라사 산봉우리 어디쯤에 살고 있는 반신반조의 긴나라 공주였다. 마노하라는 긴나라 왕의 일곱 딸들 가운데 가장 어리고 아름답던 딸이었다. 어느 날 긴나리(긴나라의 여성형) 마노하라는 언니들과 함께 숲 속에 있는 호수에서 목욕을 하기 위해 지상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이때는 하스티나푸라 이웃 국가에서 희생제(犧牲祭)를 지내기 위해 사냥꾼을 시켜 히말라야의 동물들을 모두 포획하도록 했던 때였다. 긴나라와 긴나리를 잡지 못하자 마술을 쓸 수 있었던 다른 사냥꾼이 히말라야에 올라가 주문으로 목욕을 하던 긴나리 마노하라를 포획하여 잡아온다.

이웃 국가의 희생제에 초대받은 왕자 수다나는 희생제의 제물로 잡혀온 마노하라를 보고 한 눈에 사랑에 빠진다. 수다나는 이웃 나라 왕에게 불법을 설하고 그녀를 죽이지 말고 살려달라 부탁하고는 곧 그녀를 자신의 왕궁으로 데려오게 된다. 둘은 결혼하여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왕의 사제는 왕자가 왕이 되면 자신이 왕의 사제로 남지 못할 것을 걱정한 나머지 계략을 꾸민다. 왕자가 변방의 반란을 다스리게 해야 한다며 위험한 변방으로 보낼 것을 왕에게 간언한 것이다. 수다나 왕자는 왕의 명에 따라 변방으로 가서 반란을 다스리는데, 약차의 도움을 받아 죽지 않고 전쟁에서 승리한다.

수다나 왕자가 전쟁에서 돌아오기 전, 그의 부왕은 이상한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해몽을 자신의 사제에게 묻자 다시 거짓으로 해명하기를, 왕자가 위험에 처했기 때문에 그를 구하기 위해서는 지금 궁에 남아있는 긴나리 공주 마노하라를 제물로 바쳐 제사를 올려야한다고 왕에게 거짓말을 한다. 왕이 그의 말에 따라 마노하라를 희생물로 바칠 것을 결정하자 왕비는 마노하라를 구하기 위해 본래 그녀의 소유물이었던 옷과 보물을 돌려준다. 그 옷과 보물을 착용하면 다시 마노하라가 새로 변신하여 하늘을 날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왕궁으로 돌아온 수다나는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마노하라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듣게 된다. 그리고 곧 다시 왕궁을 떠나 사랑하는 부인을 찾기 위해 천지를 헤맨다. 긴 여행 끝에 수다나는 긴나라들의 왕국을 찾아가 마노하라와 재회하게 되고 다시 왕국에 돌아와 왕위를 계승하고 마노하라와 해로하게 된다.

▲ 통일신라 8세기경 창림사지 석면의 긴나라 조각. 경주국립박물관. 얼굴 양쪽으로 말머리 형상이 새겨졌다.

이미 독자들도 눈치 챘겠지만 이 이야기는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의 원형을 담고 있다. 동아시아뿐 아니라 이 이야기는 동남아시아 전역에 걸쳐 널리 퍼져 있으며 긴나라와 관련된 여러 형태의 문화(조각, 회화, 춤)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면, 태국의 전통극인 로타센(Rothasen)은 팔리장경 이외의 외경(外經)에 해당하는 ‘판냐사 자타카(Paññāsa Jātaka)’를 기초로 만들어진 것이며 이 이야기 중 대표적인 마노하라(또는 마노라 Manora) 이야기가 공연의 주요 소재가 되고 있다.

당연히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에서 이 이야기가 널리 퍼질 수 있었던 것은 불교의 설화 덕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서 여러 불교 유적 속에 조각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아마도 인도네시아의 불교 사원에서 긴나라를 자주 접할 수 있는 것은 이 ‘자타카’의 이야기가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한 이 이야기가 한역되어 ‘육도집경(六度集經)’ 속에 유사한 버전이 들어와 있는 것을 보면 비교적 일찍 동아시아에 유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내에서 긴나라의 모습은 거의 대부분 석탑에 새겨진 팔부신중상을 통해 보거나 또는 일부 괘불탱 속에 그려지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어떤 때는 새의 두상을 한 모습을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인간의 형상 그대로 나타날 때가 있다. 고정된 도상 의궤를 갖추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반면 동남아시아에서 긴나라 또는 긴나리는 마치 한국의 가릉빈가(迦陵頻伽)를 보는 것처럼 인간의 두형과 새의 체형이 강조되고 있다. 두텁고 불룩한 새의 가슴과 큰 날개, 그리고 긴 새의 꽁지가 두드러지게 표현된다. 또한 앞서 말한 바처럼 남성 긴나라보다는 여성 긴나리가 조각과 무용에서 더 강조되고 있다.  

심재관 상지대 교양과 외래교수 phaidrus@empas.com

 

 [1351호 / 2016년 7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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