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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푸티상사의 지상법문] 40. 마음으로 부처님을 공양하라

기자명 법보신문
  • 법공양
  • 입력 2016.07.12 14:43
  • 수정 2016.07.12 14:44
  • 댓글 0

부처님은 우리의 탐욕을 채워주는 도구가 아니다

 
중국에 사는 제자 부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실직한 뒤로 생활이 몹시 어려워졌습니다. 그들은 부처님 사진을 집안에 모셔놓고 부러진 초와 한 가닥의 향 그리고 두세 개의 짓무른 사과를 주어서 공양물로 올렸습니다. 그들의 경제사정은 짓무른 사과조차도 사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부에게 유일한 희망은 바로 하나뿐인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합격하는 것이 그들의 바람이었으나, 부모의 바람과는 다르게 아들은 일부러 비뚤어진 생활을 하며 부모의 속을 썩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위해 매일 부처님께 기도하고, 보살님께 기도했습니다.

‘우리 아들을 어쩌면 좋을까요? 이제 곧 대학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실력도 많이 부족하고 공부에 흥미를 갖지 못하고 밖으로만 돌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부처님!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그들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정성을 다해서 부처님 전에 공양을 올리며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거짓말처럼 공부에 흥미를 보이며 학업에 열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덧 시간이 흘러 아들은 대학 입시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시험을 보고 온 아들은 모든 답을 다 쓰고 나왔다며 자신 있게 대학에 합격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니, 시험을 보는 내내 마치 공원을 산책하는 것처럼 제 마음이 가벼웠어요. 성적이 저보다 좋은 친구들조차 너무 긴장한 나머지 제대로 문제를 풀 수가 없었대요. 하지만 저는 긴장은커녕 오히려 마음이 아주 편안했어요. 그리고 어쩐 일인지 시험문제도 전부 제가 알고 있는 문제였기 때문에 자신 있게 답을 쓸 수 있었어요. 저는 대학에 합격할 것 같은 확실한 느낌이 들어요!”

아들의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반신반의하며 초조하게 합격자 발표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아들은 호언장담했던 것처럼 당당하게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부모는 아들의 합격소식에 큰 기쁨과 위로를 느꼈습니다.

그 후, 부부는 부처님은 짓무른 사과를 좋아한다며 가는 곳마다 여러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공양물과는 상관없이 부부의 진실한 정성과 끊임없는 기도가 하늘을 감동시켰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부처님을 공양하는 마음 하나가 천만 백만을 얻는다’라는 말을 반드시 기억하길 바랍니다. 정성과 마음을 다해 기도를 했을 때에 천만 배로 돌아오는 보상은 정말로 불가사의한 것입니다. 저 역시 실제로 경험하고 깨달은 이치입니다.

예를 들어 부처님 전에 등불을 공양하면 어떤 이로움을 얻는지 알고 있습니까?

첫 번째는 마음의 광명을 얻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등불을 켜면 주위가 밝고 환해져서 장엄하고 자비로운 부처님의 얼굴이 아름답게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여러분이 밝힌 등불에 비춰진 부처님께 모두 절하고 기도하니, 이로 인해 여러분은 앞으로 다가올 인생의 갈림길에서 길을 선택할 때에나 장애와 번뇌를 만났을 때에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확실한 답안을 가지고 앞으로 헤쳐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두 번째는 지혜가 늘어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잘 하지 못하는 일도 여러분은 아주 능숙하게 할 수 있게 됩니다. 직장에서 굉장히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회사에서 감원을 할 때에는 일처리 능력의 여부에 따라 그 대상을 결정하는데, 감원에서 벗어나 한 단계 더 나아가서 회사의 사장까지도 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마장, 마귀의 방해를 없앨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부처님 전에 등불을 공양하면 부처님은 나쁜 기운이 여러분에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여러분을 보호합니다. 저의 몇몇 제자들은 부처님 전에 관상(觀想)을 통해 공양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이 관상으로 공양을 올리는 것은 말 그대로 실제로 등불을 켜지 않고 마음속의 상상으로 등불을 올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관상으로 부처님께 아름다운 옷 한 벌을 드리고 부처님께서 입고 난 다음에 아주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이것으로 어떠한 이로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부처님은 아주 정감 있는 생활을 하게하여 사랑과 우정을 얻게 합니다.

또한 세상에서 가장 좋고 아름다운 음식을 부처님께 바친다고 관상으로 상상하고, 그리고 그것들을 부처님께서 즐겁게 향유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공양은 우리와 우리의 후세들 모두에게 되돌아와 밥을 먹게 할 것이며, 최소한 일생 동안 배고픈 고통을 받지 않게 해줄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시의 좋은 점을 이해하지 못해서 용감하게 보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그런 용기 없는 사람들은 우선 관상으로 보시하기를 시작하십시오. 관상으로 하는 것이므로 실질적인 경제적 부담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니 먼저 마음으로 얼마간의 공양을 올려 보십시오. 이런 마음의 공양이 쌓이고 시간이 흘러 실제 공양을 올리게 되므로, 관상의 보시도 실질적으로 보시하는데 있어서 아주 좋은 시작이 될 것입니다.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은 자신은 조금 덜 먹고 덜 입는 등 생활이 약간 부족해도 부처님 전에 바치는 장명등은 절대 끄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은 신선한 과일을 차마 사먹지 못해도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은 부처님 전에 신선한 과일을 올립니다. 그러나 부처님 전에 공양하는 사람은 수천만 배의 공덕과 부귀를 되돌려 받게 될 것이니, 이것만큼 좋은 투자가 이 세상에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요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매일 좋은 투자처를 찾아다니며 투자수익률을 연구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투자한 돈을 손해 볼까 항상 전전긍긍합니다. 하지만 부처님 전에 진심으로 공양하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불가사의한 복을 되돌려 받을 수 있으니, 절대 손해 볼 일은 없습니다. 대가를 바라는 마음 없이 보시하십시오.

한창 바쁘던 어느 날, 제자 하나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상사님, 자동차 사고가 났습니다.”
“그래?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어떠한가? 자네는 어디 다치지는 않았는가?”
“예. 만약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면 제가 어떻게 이렇게 전화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모두 병원 가서 검사를 받아 보는 것이 좋겠구나. 그런데 경찰에 신고는 했는가?”
“예, 사고 직후 바로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이제 곧 도착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의 말투에 뭔가 석연치 않음을 느끼고 다시 물었습니다.

“내가 가서 뭔가 도울 일이라도 있는가?”
“아닙니다. 다만 스승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스승님을 모시고 있는데 어떻게 제게 교통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겁니까?”
“그것은…….”

제자의 갑작스런 질문에 저는 선뜻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게 와서 공부하고 수련했으므로 자동차 사고 따위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 순간 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단지 ‘사고는 운전한 사람에게 책임이 있거늘, 이 사람은 나에게 책임을 돌리려고 하는군’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자, 먼저 마음을 가라앉혀라! 우선 지금은 사고를 수습하고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그리고 사람이 무사한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곧 경찰이 와서 사고를 처리해 줄 것이니 너는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다리고 있어라.”

며칠 후에 제자는 다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스승님, 저번에 제가 전화로 여쭈어봤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으니 스승님께서 속 시원히 설명해 주시길 바랍니다.”

“우선 검사 결과는 어떠한가? 아픈 곳은 없는가?”
“모두 아무 이상 없었습니다.”
“그래, 아무 일 없다니 정말 다행이구나.”

“비록 저와 동행한 사람들은 별 일 없었지만 자동차는 폐차되었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저는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는 성심을 다해 스승님을 공양해 왔습니다. 그런 제게 오히려 교통사고가 나다니요, 하필 왜 저에게, 어떻게 교통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지, 저는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이 자동차는 얼마 전에 새로 산 새 차란 말입니다.”

“그 차가 새 차였구나.”
“네, 새 차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고로 폐차되었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해 보거라. 비록 차는 폐차되었지만 사람들은 모두 목숨을 구하지 않았느냐. 차가 폐차될 정도라면 제법 큰 사고였을 텐데, 털끝만큼도 다친 데가 없다니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리고 그 사고는 다행스럽게 네가 겪을 한 겁(劫)의 고비를 넘긴 것이고, 그러면서도 전혀 다치지 않고 목숨을 유지하고 있으니 모든 것을 가진 것과 같다.”

“그래도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차를 사기위해 제가 얼마나 절약하며 돈을 모았는지 아십니까? 저는 맥도날드에 가서 햄버거를 사먹는 것조차 아까워서 끼니를 굶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돈을 모아 그 자동차를 구입한 겁니다.”

“그래, 네 마음은 알겠다. 하지만 다친 사람이 없으니 다행이지 않느냐, 돈이야 사지가 멀쩡하니 앞으로 얼마든지 벌 수 있을 거다. 그러니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말거라. 맥도날드에서 먹을 수 있는 기회는 많고, 내가 매일 사줄 수도 있단다. 가장 중요한 건 생명이다. 모두가 무사하다면 그걸로 된 거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스승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저에게 어떻게 이런 사고가 생길 수 있단 말입니까!”

제자의 말에 저는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천천히 그에게 말했습니다.

“다시 너에게 말하겠다. 네게 일어난 차 사고는 오히려 다행스럽게 네가 겪을 한 겁의 어려운 고비를 넘기게 한 거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너는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았다. 바로 이 점이 부처님을, 그리고 나를 공경한 결과인 거다. 이제는 이해하겠는가?”

그와 그렇게 통화를 마치고서는, 며칠 후에 그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시 그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스승인 나를 모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냐?”
“그건, 몸이 건강하여 병에 걸리지 않고, 재앙을 막기 위함입니다.”
“네가 바라던 것은 모두 실현되었다. 네가 스승인 나를 공양하면서 스승인 나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절대 자동차사고 따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는가?”
“아닙니다.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 바로 이것이다.”

이렇게 해서 비로소 저는 그의 질문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어떠한 이로움을 바라는 마음이 없어야 우리는 비로소 즐겁게 선을 행할 수 있으며, 오히려 더 많은 공적을 빠르게 쌓을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떠한 이로움을 바라고 행한다면 그것이 실현되지 않았을 때에 우리는 더욱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부처님께 이렇게 기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지금 부처님께 1000원을 공양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는 로또 복권을 살 생각인데, 부처님께서 보우하사 1등에 당첨되게 해주십시오.’

하지만 이런 기도는 올바르지 않고 해서도 안 됩니다. 여러분의 탐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성심과 존경심으로 부처님께 공양해야 합니다. 사람과 부처님, 사람과 하느님 사이에는 서로 계산하는 마음이 있을 수 없고, 정성껏 공양하고 진심으로 받드는 마음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보시하고 공양하는 이유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보시와 공양이라는 한 줌의 선업과 공덕을 쌓는 것으로 행복하고 아름답고 충만한 운명을 갖게 해주는 복된 보답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이점을 마음속에 꼭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운명의 수레바퀴는 염불과 공양을 통해서 서서히 움직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여러분의 운명을 바꿀 수 있습니다. 또한 그걸로 말미암아 되돌아오는 보답은 불가사의하여 계산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오직 정성스런 마음으로 보시하고 즐겁게 선을 행하며, 어떠한 보답도 바라지 않아야 진정으로 선업을 쌓을 수 있고, 나아가 운명을 바꿀 수 있습니다.

진푸티상사 저서 “깨달은 눈으로 본인생’중에서 (번역:권중달)
보리선수 약사선원 T.1661-0803

 [1351호 / 2016년 7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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