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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사성제에 담아 보는 반야심경 ②

기자명 김정빈

무아는 참나를 부정하는 용어

지난주에 설명한 내용을 이어받아 ‘반야심경’을 ‘틀로서의 사성제’에 담아 보다 알기 쉽게 풀어보기로 하겠다. 단, 이 풀이는 필자의 해석에 의한 것으로서 이 풀이만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의미가 아님은 물론이다.

일체고액은 고성제에 있고
걸림없음은 멸성제로 표현

모든 문제는 자아로 시작
‘나’ 있는 한 문제도 남아

 
고성제:문제

대승불교에서 보살은 겉으로는 중생이지만 실제로는 부처님인 권현보살(權現菩薩)과, 실제로나 겉으로나 아직은 중생인, 그러나 매우 높은 경지의 성인인 지상보살(地上菩薩)로 분별된다. 여러 경전에서 관자재보살은 권현보살로 등장하지만 이 경전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관자재보살은 지상보살 시절의 관자재보살이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관자재보살에게는 ‘고통(일체고액)’이라는 ‘문제’가 있었는데, 이 문제가 ‘반야심경’의 고성제이다.

멸성제:해결

경전에서 ‘고액’의 ‘건넘(도)’, 즉 문제의 ‘해결’은 ‘부처님(삼세제불)’의 경우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 ‘보살(보리살타)’의 경우 ‘구경열반’으로 설해지며, 이것이 ‘반야심경’의 멸성제이다.

멸성제는 언어로써는 묘사하기 어려운 특별한 차원이다. 그러나 경전이 설해진다는 것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이고, 따라서 둘은 모순된다. 이 모순을 백 퍼센트 해결하는 방법은 없다. 그러나 다소 완화하는 방법은 있는데, 그것은 부정 어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반야심경’은 수많은 불(不)자와 무(無)를 사용하여 “중생들이 당연히 그러하다고 여기고 있는 생각들은 모두 틀렸다”라고 말하는 방식으로 고액이 해결된 공의 경지, 열반의 경지를 설한다. 그런 한편 ‘반야심경’은 멸성제를 ‘마음에 걸림이 없음(심무가애)’ ‘두려움 없음(무유공포)’이라는 긍정어법으로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집성제:원인

그렇다면 수행자를 ‘고액’에 빠뜨리는 ‘원인’은 무엇인가. ‘반야심경’은 ‘고액’의 원인을 ‘뒤집힌 꿈같은 생각(전도몽상)’이라고, 이를 ‘멀리 떠나면(원리)’ ‘구경열반’에 이르게 된다고 설하고 있다. 그렇다면 ‘뒤집힌 꿈같은 생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오온이 공함을 모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왜 오온이 공함을 모르는 것이 ‘모든 고통(일체고액)’의 원인일까.

이는 ‘무아’ 교설과 관련이 있다. ‘무아’는 세계 철학사상 오직 부처님만이 설하신 교설이다. 그렇긴 하지만 세계의 모든 철학자가 무아의 방향으로 자신의 사상을 전개해 왔다고도 말할 수 있다. 모든 철학자는 겸손과 보시를 찬양하는데, 겸손은 자신을 낮추고 덜어내는(비워내는) 태도이고, 보시는 자신의 소유를 덜어내어 베푸는 행위라는 점에서 ‘무아’로 나아가는 덕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왜 모든 철학자는 자아를 덜어내는 것을 찬양하는 것일까. 그것은 삶의 모든 문제가 자아라는 기초 위에 얹혀 있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는 ‘나(자아)’의 문제이며, 따라서 ‘나’가 사라지지 않는 한 문제는 있다. 그러므로 모든 철학자와 종교가들이 ‘어떻게 하면 나를 없앨 수 있는가’라는 방향으로 탐구를 밀고 나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 결과 기독교는 신 앞에서의 ‘자기 부인’을, 노자는 ‘비움(虛)’을, 공자는 ‘겸(謙)’으로서의 ‘예(禮)’를 설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사상들은 무아의 방향으로 나아가기는 했으나 부처님처럼 끝까지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그들에게 자아는 덜어내기는 하되 끝내 존재했던 데 비해 부처님의 자아는 온전하고도 철저하게 사라졌던 것이다.

‘반야심경’의 공(空)은 무아를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불교에서는 ‘무아(공)는 곧 참나(眞我)’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무아(공)는 참나가 아니다. 무아로 번역된 팔리어는 안­아따(anatta-, 산스크리트어로는 atman)이며, 안­아따는 ‘아따가 없음(아님)’을 의미하고, 아따는 브라만교(힌두교)의 참나이다. 무아는 브라만교의 참나를 부정하기 위해 설해진 불교 용어인 것이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352호 / 2016년 7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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