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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키워드 만들기와 스토리텔링 ①

설법 첫 단추는 중생과 함께 하려는 맑은 마음

이제 설법의 키워드를 만들고 키워드로 스토리를 엮어가는 과정을 알아보자. 이번 테마의 키워드는 ‘마음’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노하거나 서러워하지 말라/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마음은 미래에 살고/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모든 것은 한순간 사라지지만/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 푸시킨의 명시이다. 이 가운데 ‘마음은 미래에 살고’ ‘모든 것은 한순간 사라지지만’라는 문장은 지극히 불교적이다.

불확실성의 시대 신뢰가 생명
중생아픔 헤아려 등불 밝혀야

자유주의자 푸시킨은 “양식 있는 인간이란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가를 신속하게 판단하는 능력을 가진 자”라고 말했다. ‘양식 있는 사람’이라 함은 ‘깨달은 사람’이다. ‘종교’라는 단어는 산스크리트어 ‘싯단타 데사나(Siddhanta Desana)’를 한역한 불교용어다. ‘능가경’에서는 ‘근본이 되는 가르침’이라고 해석했다. 신심(信心), 불심(佛心)의 바탕은 마음이다. 그 마음은 초월적 대상, 삼라만상의 궁극적 진실과 만나고자 한다. 그런 신앙인들은 만남을 통해 불심과 인연이 깊어간다.

마틴 부버는 “모든 실제적인 삶은 만남에서 시작된다”고 설했다. 그런 만남 속에서 이뤄지는 설법은 깨침을 주는 글이다. 깨달음의 설법만이 진리를 온전히 가슴에 적신다. 설법은 고단한 삶을 사는 사람, 교리를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얼기설기 마음의 실타래를 풀어주는 일이다. 불확실성의 시대일수록 신뢰감을 주는 메시지가 생명력이다. 나와 우리의 공동체 문화를 다지는, 그런 아름다운 동행만이 실제적이고 지속이 가능하다.

설법의 첫 단추는 중생과 어깨동무하는 맑은 마음, 배려와 포용력에 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중생의 고통과 아픔이 어디에 있는가를 깊이 헤아려 등불을 밝혀야 한다. 설법은 함께 치유하고 극복하는 지혜의 공유를 통해 비로소 소통한다. 진정성과 실천적 설득의 메시지는 그렇게 타인의 정서를 넓게 보듬고 낮은 자세로 헤아릴 때에 비롯된다. 일방적으로 교리를 주입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불교지식은 홀로 얻을 수도, 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혜는 체험과 수양에서 발원한다. 불공평한 자본주의 사회와 경쟁 지상주의에 갇힌 독단적이고 이기적인 세상에서, 커뮤니케이션은 광기와 우월적 인상을 강하게 내비치면 작동하지 않는다.

처음 예배당에 나간 사람이 신자에게 “하느님이 어디있냐?”고 물을 때 “무조건 믿으면 돼요”, 처음 절에 온 사람이 “불교는 왜 이리 어려워요?”라고 반문할 때 “불심이 깊으면 보여요”라는 반응은 자기중심적 배타적 사고방식이나 행동거지와 다를 바 없다. 처음 교회나 절에 나갔다가 가장 언짢게 발길을 돌린 경우가 “거기 가지 마세요” “거기 나오세요” “그것 하지 마세요”라는 한 마디 때문인 경우가 많다. “함께 같이” “함께 가치”가 없는 중교문화는 속빈강정에 불과하다.

시인 에머슨은 “교육의 비결은 학생을 존중하는데 있다”고 말했다. 설법의 시작은 한 가닥의 마음에서 샘솟고 소통의 물줄기는 아주 소소한 일에서 시작된다. 사람의 첫 인상은 3초 안에 결정된다. 설법하는 사람의 이미지와 스피치 방식은 그 첫걸음이자 첫 인연으로서 매우 유의할 대목이다. 배우는 일은 하얀 백지 위에 스스로의 내일을 그려가고 희망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굶주린 영혼에게는 영혼을 살찌게 하고, 고독한 영혼에게는 친구와 가족 같은 자비로운 울타리가 되어줘야 한다. 그런 배려와 위안의 메시지는 종교적 의미뿐 아니라, 갈수록 각지고 갈등과 대립의 늪에 빠진 우리사회와 구성원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대화품격과 공론의 장 역할로서도 매우 중요하다.

‘대반열반경’에서 “부처님 대비(大慈)는 사람의 필요에 따라 일어나고 이 대비에 접하여 신심이 생기고, 신심에 의해 깨달음을 얻게 된다”고 했다. 부처님 자비는 지대한 관심, 믿음에 대한 확신과 열정, 성취적 깨달음이 3박자를 이룰 때 가능하다. 그 자비로움은 사람의 필요에 따라 일어나야 한다. 결국 중생을 어여삐 여겨 구제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무엇이든 구제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자비의 실천이다. ‘진실불허(眞實不虛)’는 ‘반야심경’의 핵심 키워드다. 자연의 지극한 정성은 쉼이 없고 현인(賢人)의 지극한 정성은 헛된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니 자연스레 반야의 진실불허, 즉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이다.

박상건 동국대 겸임교수 pass386@hanmail.net

[1352호 / 2016년 7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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